의식은 있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한 적 있나요? 잠을 자다 깨어나 주변이 보이고 소리도 들리지만(어떠한 형태를 보거나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억지로 소리를 내려고 해도 내지 못하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가위눌렸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의학적으로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전문용어로 ‘수면마비증’이라고 부릅니다. 수면에는 렘(REM)수면과 여러 단계의 비렘(NON-REM)수면이 있고, 그중 수면마비증은 주로 꿈을 꾸는 단계인 렘수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갑자기 뇌(의식)는 깨었으나 육체는 미처 깨지 않아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정신은 멀쩡하나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고, 몸 또한 움직일 수 없어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만 하고, 또한 삼킴장애로 인해 비위관(일명 콧줄, 코에서 위로 관을 삽입해 음식물과 약물을 공급하는 줄)에 의지해 영양공급을 받으며, 누워서 대‧소변을 보며 몸의 불편감(가려움, 허리통증)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해 해결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심지어 평생을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한다면 엄청난 고통임에 틀림없습니다.

수면마비는 수면 중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뇌질환으로 인해 초래된 전신마비 증상은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뇌에는 ‘뇌간’이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는 대뇌에서 시작된 모든 신경이 지나가는 곳으로 생명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이 부위에 뇌출혈 또는 뇌경색이 발생하거나, 전해질 이상으로 인해 뇌간 손상이 발생하면 의식은 있지만 전신마비로 인해 외부자극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야기합니다. 환자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없고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칫 혼수(Coma) 상태로 잘못 판단될 수 있지만, 감금증후군은 단지 사지의 운동기능만 차단되어 있을 뿐 의식은 깨어있고 눈동자도 움직일 수 있으므로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의사표현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60대의 한 환자는 10년 전, 4년 전 두 차례의 뇌경색이 발병했습니다. 뇌경색으로 인해 우측마비와 보행장애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일상생활은 가능했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외래를 방문하며 뇌경색약물을 잘 복용한 까닭에 다른 후유증이나 재발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중 이유 없이 1년간 치료를 중단했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땐 뇌간에 뇌경색이 재발해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합병증으로 발생한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치료하기 위해 기관절개술을 시행했고 그로 인해 의사전달이 힘든 상태에 있습니다. 현재 사지마지로 인해 24시간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어 평상시 있었던 허리통증이 더욱 심해졌으나 의사표현이 힘들어 환자도, 옆에서 간병하는 보호자도 많이 힘들어하는 상태입니다.

지금까지의 의학으로는 이미 손상된 뇌를 다시 회복시켜 이전처럼 건강한 육체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현대의학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합병증을 예방하며 환자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왔지만, 이 환자처럼 이렇게 정신은 멀쩡한데 자신의 육체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를 볼 때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의사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자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차 예방이 중요합니다. 즉 뇌출혈이나 뇌경색 위험요인들 중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은 조기발견 및 치료를 해야 하고, 흡연, 비만, 과도한 음주 등의 나쁜 생활습관은 스스로 고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과거 뇌졸중의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규칙적인 약물복용 및 정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