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마스터>는 성탄절 주말(24~25일) 이틀 동안 약 18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스크린을 장악했다. 이에 그간 흥행가도를 달리며 3주 동안 약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판도라>는 잠시 숨을 고르는 단계에 들어가며 박스오피스 3위에 위치했다. 

최근 각종 정치적 이슈들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어느 때보다 성수기를 누려야 할 영화업계는 전에 없던 침체기에 들어섰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개봉한 <베테랑>,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로 시작해 올해 <부산행>, <판도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들을 반영한 이른바 ‘현실적 판타지’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내부자들>, 어떤 것이 영화고 어떤 것이 현실인가?

내부자들은 웹툰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대기업 총수, 정치인 그리고 권력화된 언론으로 구성된 ‘이너 서클(Inner Circle)’에서 시작되는 각종 비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첫 개봉 당시에는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난해 11월 내부자들 개봉 이후, 정부의 인사가 연관돼있는 권력형 비리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하면서 내부자들은 점점 다른 관점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2월 말 본 개봉판에서 삭제됐던 장면들이 복원된 러닝타임 3시간짜리 감독판 <디 오리지널>로 재개봉되기도 했다. 내부자들은 지난 7월 나향욱 교육부 정책 기획관이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우리나라도 신분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며 내부자들 곳 대사를 인용한 발언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다. 당시 이 발언은 일파만파 커지면서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썩은 인식들이 파헤쳐졌고, 이는 곧 우리 역사에 수치로 남을 그 이름, 비선실세 ‘최순실’을 법의 심판대 끄집어내는 계기가 됐다.   

재난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정부의 모습 <부산행>, <판도라> 

아직도 많은 의혹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논란이 되고 있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은 국가가 재난에 대해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여기서의 모티브는 이후 개봉되는 재난 영화에도 일부 반영되면서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25일을 기준으로 올해 유일하게 1000만 관객을 돌파(1156만5479명)한 영화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국민들이 좀비로 변해 서로를 추격하고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슬픈 가족애를 이야기했다. 영화 속에서 정부는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을 전혀 막아내지 못하며 매우 무기력한 모습으로 마지막 마지노선인 ‘부산’까지 밀려난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판도라>도 이와 비슷한 관점이다. 사상 유례가 없었던 강진(强震)으로, 우리나라 한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하며 방사능 피폭 사건이 발생한다. 판도라에서의 정부도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방사능 피폭이라는 재난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해충 취급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와중에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관계와 삶은 완벽하게 파괴된다.      

 

나쁜 놈들에 대한 시원한 ‘한 방’ <베테랑>, <마스터> 

이 사회에서 ‘힘 있는 나쁜 놈’들에게 이 나라의 법은 한없이 관대할 때가 있다. 돈이라는 것은 늘 그렇게 작용해왔다. 즉, 유전무죄 무전유죄(無錢有罪 有錢無罪)다. 그러나 법의 절대 원칙은 그 앞에서 누구든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에 약한 자들이 그간 당하고 살았던 설움을 한 방에 날리는 ‘사이다’ 같은 영화들이 있었다. 

영화 <베테랑>은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재벌 2세가 자신의 부를 이용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다가 그를 추적하던 열혈 형사에게 모든 것이 발각되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영화다. 베테랑에서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장면들이 있었다. 지난 2010년 SK그룹 계열 물류업체 M&M 전 대표 최철원 씨는 1인 시위를 하던 화물연대 노동자를 불러다가 폭행하고 ‘맷값’을 제시했다. 이는 극중 재벌 2세 유아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시위를 하는 한 운송 노동자를 폭행한 후 돈을 던지는 장면으로 나왔다. 

▲ 영화 <베테랑>과 <마스터>의 악역 배우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마스터>도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이야기는 지난 2004년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 전국에 10여 개 피라미드 업체를 차리고 투자자 3만여 명의 돈 4조원을 빼돌린 국내 최대 규모의 사기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다. 

국내 영화배급업체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이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 속에 늘 갑(甲)들에게 당해오면서 쌓였던 울분, 슬픔 등을 반영한 영화들이 지난해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며 “관객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共感)의 코드 혹은 나쁜 놈들에게 ‘한 방’을 날리는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영화들은 앞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