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지속가능경영’이라는 단어가 제법 친숙해졌다. 수년 전만 해도 교수나 전문가들만 사용되는 용어, 기업 홍보물에 간혹 등장하는 생경한 말이었다.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대중매체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일상어가 됐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지속가능경영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다. 관련 사업이나 전담 인력 증가세가 눈에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내실은 어떨까.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해외 기업 대비 만족스럽지 않다는 혹평은 여전하다.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마저 뜨겁게 일고 있다. 지속가능경영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김태영 교수를 찾았다.

 

최근 3년 지속가능경영 급성장

그는 지속가능경영 분야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조직사회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는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회에 외부위원으로 위촉돼 CSV분과를 담당하고 있다. 김태영 교수는 “(국내 지속가능경영 시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본인을 소개했다. “외국 사례와 비교하기보다는 국내 환경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반기업 정서가 강한 시장으로 손꼽힌다. 단점만 조명한다면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국내 지속가능경영 시장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최근 3~4년간 빠르게 성장해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공유가치창출(CSV)·사회공헌 등 명칭은 달라도 전담부서가 늘고 있다. 홍보부나 마케팅부에서 곁방살이를 하다 단일부서로 독립을 이뤄낸 것. 한번 만들어진 부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일선 직원들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인력 재배치, 대외평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과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도 여성 경력 단절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유능한 여성 인력이 가정에 묶여 있다. 이는 기업·사회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는 개인 역량 문제가 아니다. 각 기업 경영진 성비만 봐도 알 수 있다. 화장품, 의류 등 여성이 애용하는 제품군을 취급하는 회사마저 임원진 태반이 남성이다. 육아·난임 휴직 등 여성을 중심으로 인적자원(HR) 관리 시스템이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곳에서 개편됐다. 이 같은 변화는 정부 주도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업이 직접 나서서 내부 문화를 바꿔야 한다. 당장 비용이 투자되고 내부 반발도 예상된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다. 유능한 인재를 유지할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훌륭한 지속가능경영 모델이다.”

올해 지속가능경영 분야 전망은 어둡다. 국내외 시장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내수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정책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 정책 불확실성도 높아졌다. 트럼프 경제·외교 정책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위한 기업 투자가 위축될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김 교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때 투자비용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단계를 떠올려보자. 기획, 조직설립·성장 등을 통해 아이템이 실현되면 그 가치를 알리는 작업까지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한다. 지속가능경영에도 이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적은 자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면서 (다른 부서처럼) 기업 내부에서도 입지를 다져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지속가능경영은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해결해야 될 사회문제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의 틀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 신기술에 집중하고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무조건 CSV, 최선은 아니다”

CSV가 글로벌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CSR은 규범과 윤리를 준수하고 지역공동체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CSV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경제적 이익을 함께 추구한다. 사회문제에서 니즈를 포착하는 신개념 수익사업 모델인 셈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는 파트너십, 평가제도 등에서 변화를 촉구했다.

“국내에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부문이 파트너십이다. 미국 사례를 보면 기업만 단독으로 추진한 경우가 없다. 비정부기구(NGO)나 정부와 함께 진행된 사업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과 보폭을 맞출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NGO나 비영리집단(NPO)이 부족하다. 정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기업) 토양과 다른 까닭에 (국내 기업들에게) 유사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인력 문제도 있다. 지속가능경영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는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필요하다. 경제·경영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뜻한다. 평가 시스템도 개선돼야 한다. 미슐랭 가이드처럼 역량에 따른 등급화가 필요하다. 현행 수상제도는 상을 받고 못 받고, 다시 말해 ‘0’ 또는 ‘1’로만 평가된다. 기업 간 차등화가 불가능해 동기부여가 부족하다. 더불어 피드백이 있다면 현직 담당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일각에서는 CSR를 버리고 하루 빨리 CSV로 갈아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CSR과 CSV로 진형이 나뉘어 파열음이 일기도 했다. 이에 김 교수는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CSR은 기업이 하는 모든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CSR과 CSV를 계단식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경영을 실현하는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CSR과 CSV를 바라보고 있다. CSV는 전략적 방향성으로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구현할 때는 다양한 장애물이 있다. 예를 들어 인권문제는 지속가능경영 분야에서 중요한 이슈다. CSV로 다루기는 쉽지 않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CSR에서 CSV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안이 있고, 발전시킬 수 없는 사안인 있는 것. 또 준비가 부족해 CSV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기업도 있다. 그런 경우 자사에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