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환경, 생활습관 등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정밀의료가 각광받고 있다. 세계 정밀의료 시장 규모는 2015년 290억달러(약 35조원) 규모에서 연평균 11.2% 성장해 2025년에는 1126억달러(약 13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밀의료 발전을 위해서는 코호트(cohort)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한 정부·병원·기업 간 협업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정밀의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등 여러 국가에서도 코호트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코호트에 대해 "어떤 특성을 공유하고 있어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2002~2013년 표본코호트(100만명), 건강검진 코호트(51만명), 노인 코호트(55만명) 등이 해당된다. 코호트가 구축되면 특성별로 추적 연구를 하거나 의미 있는 통계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밀의료'라는 용어는 2015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정밀의료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목 받았다. 유전체 분석 결과, 의료·임상 기록, 환경, 생활 습관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어떤 치료법과 예방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지 정밀하게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정밀의료는 환자 개개인에게 모두 다른 치료법을 개발하는 맞춤의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특정 질병이 있는 환자들의 유전체와 정상인 사람의 유전체를 비교·분석해 유전자에서 어떤 요인이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정확하고 빠른 진단이 가능해진다. 또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에게 필요한 예방 전략을 수립할 수도 있다. 즉 정밀의료는 포괄적으로 개개인에게 치료법을 제공한다는 개념 보다는 특정 유전체를 가진 범주에 있는 환자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치료와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밀의료의 꽃은 ‘코호트’

세계 많은 국가들은 코호트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과 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를 기반으로 100만명 이상의 코호트 구축 목표를 세웠다. 영국도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7만 5000여명의 유전체를 분석하고 있다. 

중국도 정밀의료 분야에 15년간 약 11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발표하고 100만명 코호트 구축에 나섰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체 해독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정밀의료 관련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각광받는 국가 중 하나다.

프랑스는 '게노믹 메디슨 프랑스 2025'를 발표하고 2020년까지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12개 유전체 해독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게놈의료실현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게놈의료 실용화를 결정했다. 2005~2014년까지 10만명 코호트를 구축했고 이후 2025년까지는 추적 연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정밀의료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2025년까지 세계 정밀의료 시장의 7%를 점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소 10만명의 유전정보, 진료정보, 생활환경 및 습관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축적하는 '정밀의료 코호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 외에도 정밀의료 인프라와 생태계 구축을 진행한다.

▲ 출처=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데이터 확보 및 플랫폼 구축 '필수'

정밀의료를 발전시킬 핵심 기술로는 유전체 시퀀싱, 유전자 진단, 빅데이터, 스마트 헬스 기기, 표적치료제 등이 꼽힌다. 정밀의료는 단순히 '의료'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IT 등 다양한 산업군이 융합되며 성장한다. 따라서 정부·병원·기업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이 중에서도 데이터 구축이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 

정밀의료의 핵심은 ‘개인의 유전체와 생활 정보를 어떻게 모아서 분석할 것인가’다.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유전체 분석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도록 해주는 플랫폼,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서비스 기업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구글,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도 유전체 데이터를 포함해 각종 의료 정보를 수집·저장·분석·공유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며 미국 정부의 정밀의료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 정밀의료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두각을 보이려면 무엇보다 데이터 확보와 플랫폼 구축이 필수다.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 질은 높은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국립암센터가 정밀의료 연구 전담 조직을 설립해 연구를 수행 중이며 마이크로젠과 같은 기업과 협력해 암환자 대상 유전체 정보 기반 정밀의료 공동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유전체연구소는 암 환자의 유전체 분석으로 80여 가지 암에 관여하는 유전자 변이를 검사하는 CancerSCAN™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의료원은 이 서비스를 환자에게 적용, 표적항암치료제를 선정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기업들도 정밀의료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이크로젠은 한국인 유전체 지도 초안을 완성했고 지난 2월부터는 향후 3년간 아시아인 10만명 유전체를 분석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분당 서울대병원, 고대 안암병원, 국립 암 센터 등과 협력해 질병 유전체 연구에도 협력하고 있다. 디엔에이링크는 2016년 질병 예방, 피부 건강, 헬스·뷰티 부문 개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출시했다. 랩지노믹스는 분자진단 서비스에 강점을 둔 기업으로 삼성서울병원과 협력해 암유전체 진단을 강화시킬 계획을 세웠다.

▲ 출처=한국투자증권

높은 국내 의료 서비스 질과 민간 기업의 기술을 기반으로 정밀의료 시장을 선도하려면 코호트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코호트에서 의미 있는 분석을 이끌어 내려면 개인의 유전체 정보부터 질병 상태, 건강 기록, 식습관, 거주 환경 등 수집해야 할 정보가 매우 방대하다. 따라서 코호트 구축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과 지역 및 기관들의 협력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 

또 정보 수집을 위해서는 연구 주체가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보 공유를 위한 데이터 플랫폼도 함께 구축돼야 한다. 여러 기관이 동일한 기준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관리해야 데이터 분석 시 소요되는 시간 및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유전체 분석과 임상 활용에 대한 적정 수준의 규제도 필요하다. 개인 정보가 활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보 수집 및 활용 주체의 적합성, 도구의 신뢰성, 개인 정보 보호 절차 등에 대한 합리적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일관된 정책지원이다. 미국, 중국,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장기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코호트 구축에만 3~4년의 기간을 소요할 것으로 보고 정책을 세우고 있다. 중국도 15년이라는 시간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가 이뤄질 것을 발표했다. 프랑스도 2006년부터 암환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유전자 검사를 제공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2020년까지 이어질 계획을 수립했다. 우리나라도 정책적 측면에서 장기간 일관된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KISTEP는 "국내 사정을 고려했을 때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규모 코호트 구축은 어려울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초기부터 코호트 규모, 범주, 목적을 명학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작은 규모 내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모든 질병과 건강정보 서비스를 목적으로 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차원에서 "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코호트 구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참여자 인식 개선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코호트 구축을 위해서는 개인 참여자에게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인센티브, 이익 공유 방안 등을 마련해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밀의료는 추후 의료산업을 이끌 차세대 동력으로 꼽힌다. 또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질병 치료와 예방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은 2000년 340억달러에서 연평균 9.1%씩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정밀의료를 통한 질병 치료 및 예방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 국내 의료 서비스 질이 높고 관련 기술 연구와 개발을 위해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나서고 있는 만큼 정부차원에서도 적절한 지원이 이뤄져 향후 글로벌 정밀의료 시장을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