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1만대 시대가 열렸습니다. 국내 시장에 보급된 순수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가 1만대를 돌파한 것인데요. 정부가 2011년 보급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여만입니다. 환경부는 최근 이를 기념한 행사도 진행했습니다.

분명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특정 숫자 따위에 의미를 두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환경 보존이라는 거대담론 아래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우리들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배출가스가 없는 자동차. 분명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전기차의 경쟁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주행 거리는 짧고, 충전 시간은 길지만 가격은 훨씬 비싸다는 게 핵심입니다. ‘가성비’가 최악인 셈입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가격입니다. 짧은 주행거리와 충전 시간에 대한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고객은 많을 것입니다.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완성차 업체들이 기술 개발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가격은 안됩니다. 아무리 환경을 사랑하고 후손을 생각한다 해도 비슷한 성능의 차량을 두 배 많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환경을 위해 전기차 보급을 서둘러야 하는데, 가격이 비싸다보니 차가 안 팔리니까요. 충전 인프라 확충 등 숙제 역시 우선 기본적으로 시장 규모가 커진 뒤에 풀리기 마련이죠.

전기차 보조금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전기차 구매자에게 일정 수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충전의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 것입니다.

▲ 자료사진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테슬라 모델 S에 정부 보조금을 줘야하는 지 여부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논란이 증폭됐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어떤 분야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우선 보조금을 골자로 한 정부 위주의 전기차 보급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매년 예산을 새롭게 책정하고, 그 숫자에 맞춰 차량을 판매하는 게 건전한 시장 경쟁 체재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제조사들은 자유로운 연구개발 대신 정부의 보조금 가이드라인에 맞는 차량 개발에만 몰두할 테고요. 궁극적으로 내연기관차와 겨루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논리 전개가 가능해 보입니다. 실제 테슬라 모델 S 90D는 지원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배터리 용량이 크다는 이유로요.

보조금을 한없이 지급할 수 없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무작정 보조금을 필두로 시장을 활성화 시키다 보면, 한계에 다다르기 마련이라는 얘기죠. 언젠가 보조금 혜택이 없어지게 되면 전기차 판매가 급감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보조금 없이 내연기관차와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주목하는 셈입니다.

보조금 정책에 강한 어조로 질타를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환경차 정책 전반에 대한 방향성을 바꿔야 한다는 일침입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주장이죠.

2016년 현재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90% 이상이 원자력·화력 발전소에서 생산됩니다. 엔진이 없어 가스 배출이 없다는 전기차의 장점이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눈앞에서는 가스가 안 나오지만 어딘가에서는 발전소가 펑펑 돌아가고 있을테니까요.

이런 상황에 국민의 세금을 전기차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해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혈세를 끌어다 자동차 제조사 배를 불리는 꼴이라는 얘기도 나오고요.

이를 둘러싼 논란은 테슬라 모델 S의 국내 도입 시기가 임박하며 더욱 커졌습니다. 테슬라 모델 S 90D의 경우 미국에서 약 9만달러에 팔리는 럭셔리 자동차입니다. 만일 이 차에 구매자에게 수천만원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서민들의 혈세를 모아 부자와 자동차 제조사에게 헌납하는 꼴이라는 지적이 가능해 보입니다. 심지어 전기차가 100% 친환경차도 아닌 형국에서요.

전기차 활성화는 필요하고, 보조금 없이는 정상적인 경쟁이 힘든 상황. 환경은 보호해야겠는데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까지.

환경부는 2017년 총 1만4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습니다. 전기차 보급 예산은 총 2642억7400만원. 2016년(1485억2400만원) 대비 크게 늘었습니다. 전기차 구매자들은 지자체 예산을 포함 평균 1900만원 가량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의 끝, 지구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앞에 너무 큰 미로가 놓여있습니다. 출구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단순한 숫자 따위에 집착한 ‘성과 만능주의’가 팽배하지는 않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