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이 결국 기준금리를 올렸다. 우리는 이를 ‘미국발 악재’로 여겨 내년에 닥쳐올지 모를 ‘제2의 IMF 위기’를 걱정하기도 한다. 경기부양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저금리·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끝나면 금리인상과 더불어 긴축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긴축’이란 단어에 IMF 위기를 겪어본 세대는 소름이 돋는다. 고금리와 재정긴축이 동반된 그 시기에 부동산은 급전직하했으며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다. 기업 도산과 ‘빅딜’ 등 강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실직자가 넘쳤고, 가장들의 자살로 숱한 가정이 파탄났다. 그 때는 프로골퍼의 우승 장면에서 위로를 얻을 정도로 모두가 한없이 취약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긴축이 살 길’이란 정부 정책을 믿고 앞다퉈 금반지를 장롱에서 꺼내 맡겼다.

수년전부터 일각에서 제기되는 국가부채-복지 망국론은 이제 긴축의 시그널처럼 들린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 대비 60%대에서 200%대로 급증하는 계기가 된 1990년대 일본 경제 불황과 지금의 한국 상황이 사뭇 닮아 있긴 하다. 그 당시 일본의 국가부채는 불황과 인구요인에 의한 세입감소가 겹쳐 왔다. 한국의 경우 수출 주력 산업들의 무력화로 무역이 위축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중심 경기활성화는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부작용만 잔뜩 남겨 놓았다. 아직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45% 안팎이라지만,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경제불황의 대책이 과연 재정긴축일까. 미 브라운대 마크 블라이스 교수의 저서 <긴축>을 보면, 유럽에서 재정 위기가 터진 국가들도 한국과 유사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주력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금융 상품으로 떠받쳐진 부동산과 금융 시장이 문제를 일으켰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때부터 케인스주의가 부활했는데, 유럽 재정위기의 대책으로도 그 기조는 이어졌다. 그러나 2010년 들어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중단 움직임이 대두됐다. 지난 2010년 토론토 G20 회의에서 채택된 성명서의 핵심도 ‘성장친화적 재정건실화’였다. 이후 그리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이 치솟으며 국가부채 위기가 터졌고, 곧바로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는 ‘긴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크 블라이스 교수는 긴축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지만, 원인분석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재정운용이 방만한 탓으로 진단돼왔지만 실상은 2008년 흔들렸던 은행들을 구제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당시 은행들은 유로화와 유럽중앙은행의 도입으로 신용도가 올라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국채를 마구 사들였다. 그러던 중 그리스에서 문제가 터지자 국채 투자자들은 서둘러 자산을 매각했고, 그때에 가서야 국채를 발행한 피그스 국가들의 약점이 부각되어 국채 이자율이 폭등한 것이다.

긴축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하위 소득 계층에 집중된다. 사회는 더욱 더 양극화되고 분열된다. 계층 간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긴축은 국가부채를 줄이고는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늘어났다. 긴축은 나아가 한 국가의 내상(內傷)을 키운다. 공중보건 전문가 데이비드 스터클러와 산제이 바수의 공저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까치글방 펴냄)를 보니, 재정 긴축 정책을 선택했던 국가의 국민들은 실업의 증가, 자살, HIV 감염, 여러 전염병들의 확산과 같은 끔찍한 재앙을 겪었다고 한다.

우리가 목도했듯이 동아시아 경제위기 당시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 고강도의 긴축정책을 펼쳐야 했던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의 국민들은 심대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독자노선을 택해 큰 고통 없이 경제 회복을 이뤘다. 긴축정책을 밀어붙인 그리스는 경제회복은커녕 자살자의 증가 등 국민 전체가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아이슬란드는 국민들은 단합하여 경제 위기를 극복했고 보건 지표도 향상됐다.

시간이 별로 없다. 미 연준 금리인상의 쓰나미가 닥치기 전에 긴축에 대한 정부 입장부터 정리해야 한다. 선입견을 버리고 재정확대와 적정한 금리 유지, 증세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