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만우절에도 어김없이 군복을 꺼내 입고 극장을 찾았다. 만우절 이벤트 ’CGV를 속여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군복을 입고 극장을 방문하면 군인과 똑같은 금액으로 할인을 받아 영화를 볼 수 있는 이벤트다. 여자 친구인 T 씨는 교복을 입고 나왔다. 역시 학생 금액으로 영화티켓을 끊었다. 할인되는 금액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즐겁기만 하다.

‘컬처플렉스(Cultureplex)’란 개념이 등장하면서 극장 마케팅 활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객들에게 영화가 아닌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CGV에서 진행한 대표적인 컬처플렉스 이벤트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다.

1. <도전, 영퀴왕>은 일반인들이 영화에 대한 지식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이벤트다. 처음에는 단순히 온라인을 통해 영화 퀴즈를 풀어보는 행사로 시작했는데, 해가 더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져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했다. 특히 2016년 행사는 퀴즈를 풀며 영화관을 서바이벌 방식으로 탈출하는 체험형 행사를 더해 재미를 배가시켰다. 본선 진출자들은 한 극장에서 모여 제한시간 내에 몇 가지의 영화 퀴즈를 모두 풀어야 하고, 완성한 사람만이 방을 나갈 수 있게 했다. 영화관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방 곳곳에 숨겨놓은 단서들을 잘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몇 개의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최종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몇 명만이 영퀴왕의 영예를 얻을 수 있다.

2. 할로윈 데이를 맞아 일부 극장을 찾은 고객들은 깜짝 놀랄 경험을 한다. 극장을 수놓은 온갖 괴기스러운 장식들, 거기에다 극장 직원들은 할로윈 코스튬으로 갈아입고 고객을 맞이한다. CGV 일부 극장들이 모여 진행하는 ‘할로윈 페스티벌’이다. 고객들이 맘껏 축제에 빠져들 수 있도록 로비에 거미줄, 호박등, 해골 등 갖가지 할로윈 소품을 활용해 꾸미고, 별도의 포토존도 마련한다. 이와는 별개로 공포영화가 개봉될 때면 극장 퇴장로에 어김없이 극장 속 괴물로 분장한 직원들을 만날 수 있다.

3. 6월 초면 대구 동성로를 찾는 시민들은 즐거움에 둘러싸인다. 초여름 더위를 말끔히 식혀줄 초특급 이벤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동성로 지역에 있는 몇 개의 CGV 극장들이 연합해 ‘동성로 CGV TOWN CULTURE FESTIVAL’을 개최한다. 이 기간 동성로 야외무대와 주변에서 축제 분위기를 달구는 다양한 공연들이 펼쳐진다. 뮤지컬 갈라쇼, 버스킹 공연, 젊은이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자유발언대, 댄스파티 등이 잇따라 열린다. 동성로 거리에 설치되는 CGV 컬처플렉스 부스에서는 각종 이벤트와 사진 행사 등이 열린다. 영화 할인 혜택은 덤이다.

4. CGV여의도에는 낮잠 시간이 있다? 바로 ‘시에스타’ 이벤트 얘기다. 여의도라는 지역적 특성상 이 극장의 점심시간은 늘 직장인들로 북적댄다. 점심 식사 후 극장을 돌며 산책을 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극장 벤치나 소파에 앉아 졸기도 한다. 끝없이 피곤한 직장인의 비애랄까? 이에 착안해 CGV여의도에서는 소파형 극장인 ‘프리미엄관’에서 낮잠 시간을 도입했다. 아로마 향과 잔잔한 음악이 깔리며 담요와 슬리퍼, 허브차가 제공된다. 성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고 ‘커플존’도 운영한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전날 심한 음주로 피곤함에 찌든 직장인들은 달콤한 낮잠 휴식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본사 차원에서 이런 문화 이벤트들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각 지역 극장들이 더욱 적극적이다. 개별 극장 단위에서 자신들의 고객을 분석하고 맞춤형 문화 상품을 만들어낸다. 물론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선행활동이 있었다. CGV는 컬처플렉스 개념을 도입하면서 극장의 책임자의 호칭을 ‘점장’ 대신 ‘CM’으로 변경한 바 있다. CM은 ‘Culture Mediator’의 준말로, ‘문화의 매개자’란 의미를 담고 있다. 예전 점장들이 극장의 고객을 관리하는 관리자적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의 CM들은 문화 CEO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고객들에게 더욱 큰 기쁨을 안겨주겠다는 마인드의 변화와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극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에 집중한다. 단지 호칭 하나 변경된 것뿐이라고 하기엔 CM들이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가 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