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의 성과연봉제 관련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성과연봉제의 긍정 혹은 부정적인 부분을 떠나 그 도입 배경을 보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깔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노조의 동의 규정이 없는 일본에서 판단 기준을 필요로 해 사용됐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법률은 동의를 받아 절차적 정당성을 준수하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왜 기업은행은 일본의 법을 따르려는 것인지 의문이다. 아울러 기업은행은 정부와 민간의 중간적 위치에 있어 여타 시중은행들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지난 10월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성과연봉제 관련 무효 확인 소송 및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와 관련, 소송 선고 기일은 오는 23일로 예정돼 있다.

성과연봉제랑 말 그대로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전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공존한다.

전자의 경우, 대표적으로 ‘무임승차’ 직원들에 대한 압박이 가해질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른바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기업 직원들 중 대충 일하고 고액연봉을 챙기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과연봉제 도입은 ‘실력’ 중심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성과를 통해 판단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직급 혹은 연차에 상관없이 높은 성과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저성과자에 대한 퇴출을 정당화한다는 점이 꼽힌다. 금융노동조합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퇴 촉구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정책을 최순실 씨 등이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이 임 위원장의 지시에 즉각 이사회를 개최하고 성과연봉제를 의결했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향후에는 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이 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성과연봉제, 일반해고 지침과의 만남은 무슨 의미?

성과연봉제는 사실상 필요한 제도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이지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 요건, 당위성을 결정한 권한은 전적으로 사측에 귀속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직원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측의 권한을 높이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는 것이다.

또 국내 기업들의 조직체계가 수직적인 것도 문제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팀에서 직급이 낮은 사원이 업무를 훌륭히 수행했다면 관리자 직급은 단연 우수한 성과를 평가받기 마련이다. 이는 직급을 막론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직급 내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 된다.

즉, 일선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관리 직급에 속한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것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직급을 막론하고 성과에 따라 그 격차가 좁혀지거나 혹은 커지는 것이라 하기 어렵다.

‘노동계혁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험성과 대응방안’(김철) 제목의 보고서는 성과연봉제에 대해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인사 지침은 일반해고 지침이라는 표현이 올바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성과평가를 거쳐 성과가 낮은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조직에서 방출하려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일반해고(통상해고)란 사용자와 노동자사이 근로계약을 불성실하게 이행했을 경우 사용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징계수단이다.

현재는 노동자를 기업에서 통상해고로 방출하기 위해서는 당해 노동자가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당해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있다.

▲ 출처:‘노동계혁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험성과 대응방안’(김철)

논문은 주요국가 15개국의 경제지표를 통해 노동유연성의 지표가 낮은 경우 해고가 쉬우며 반대로 수치가 높을 경우 해고의 경직성이 강해 조직에서 방출이 쉽지 않다는 점을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국가에 비해 사회보장시스템이 덜 발달돼 있다. 즉, 해고 이후 실업급여 등의 국가후생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 대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미국, 영국, 일본 등은 노동유연성이 높게 나타나 우리나라보다 ‘해고의 자유’가 높다. 이에 논문은 “왜 우리나라는 노동유연성을 높여 해고의 자유를 넓히려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공정인사 및 취업규칙 지침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청년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자리 시장의 2중 구조를 해소”한다며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도모하고자 정년 60세 고용나침반 역할인 취업규칙 지침, 부당해고 방지의 안전판 역할인 공정인사 지침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취업규칙 지침은 ‘고용나침반 역할’로서 청년일자리창출,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정년 60세 연장의 고용안전을 위한 것이며 일반해고 지침은 ‘고용안전판 역할’로서 부당해고 방지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부당해고 방지를 위해 일반해고 지침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일반해고 지침이 고용안전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 관행 따르는 금융당국

가까운 일본과 우리나라의 법률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은 노조의 ‘동의’ 규정이 없고 우리나라는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경우 당해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했고 최고재판소는 그러한 판단기준으로 1968년부터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판례로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취업규칙 지침이라는 것은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법리인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고용나침반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나 우리나라 법률은 ‘동의’를 받아 절차적 정당성을 준수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자체가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 성과주의를 통해 저성과자가 도출되면 일반해고 지침에 따라 조직에서 방출해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은 ‘봉사단체’가 아니며 이익 창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므로 성과를 통한 연봉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일본의 판례를 따라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기업은행, 민간의 돈으로 왜 일본법을 따르나

성과연봉제 도입은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다. 금융업 관련 공기업으로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이 꼽힌다.

이중, 기업은행은 일반인들의 예금이 가능하고 중소기업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등 일반 시중은행에 가깝다. 물론 기업은행은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그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와 민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은행으로서 노동개혁 변화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조 측이 주장한 기업은행의 단체협약 위반 등은 국내법 상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타 민간은행들은 지난 12일 일제히 긴급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를 도입을 의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은행이 정부와 민간의 사이에 서 있는 만큼 기업은행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일반 민간은행들의 향후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의 기준이 명확하고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 또한 확실하다면 효율성 측면에서 상당히 좋다고 볼 수 있지만 ‘왜 국민의 돈으로 일본법을 따르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부분은 인정한다”면서도 “노조 측과 협상을 진행하려 했지만 진전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른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가처분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이에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부분을 언급하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사측에서 협상조차 시도한 적도 없고 이사회 의결 등 모든 것을 불법적으로 강행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법에 정해 놓은 기준이 있는데 왜 이를 어기면서 강제로 시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