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진에어·에어서울·제주항공·에어부산 항공기 / 출처 = 각 사

항공기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한층 가까워졌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처음 비행기를 타봤다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얘기는 이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들은 매년 늘고 있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수요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늘길이 붐빈다고 해서 항공사들의 사정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항공 여객 증가와 업계 경쟁 심화,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있었다.

LCC 전성시대

바야흐로 LCC 전성시대다.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은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넓히며 대형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선은 이미 절반 이상을 LCC가 책임지고 있다. 2016년 10월 기준 LCC의 국내선 점유율은 56.8%에 이른다. 2012년 41.4%였던 분담률이 2012년 43.8%, 2013년 48.2%, 2014년 50.7%, 2015년 54.7%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제선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4.3%에 불과했던 분담률이 2012년 7.5%, 2013년 9.6%, 2014년 11.5%, 2015년 14.6%로 뛰었다. 2016년 10월에는 21%까지 올랐다.

LCC들이 저렴한 가격의 항공권을 경쟁적으로 선보인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가격 거품을 빼겠다는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이용자들의 소비 패턴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포털 사이트나 여행사 홈페이지에서는 항공권을 가격 순으로 정렬해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장소로 향하는 가장 저렴한 표를 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비싼 항공권을 택할 소비자는 없다. 업체 간에는 10원이라도 값을 인하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펼쳐진다.

이 경쟁이 진화한 형태가 바로 ‘특가 항공권’이다. 진에어의 ‘슬림한 진’, 티웨이항공의 ‘얼리버드 특가’처럼 소량의 티켓을 획기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이벤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장사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효과적이며 안정적인 탑승률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벤트 참여 인원이 많아질수록 홈페지이·앱 가입자가 많아져 잠재 고객을 다수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포화 상태’ 돌파구가 필요하다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LCC의 ‘가격 만능주의’도 서서히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쟁사와 취항지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LCC들은 단거리 노선을 통해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노선 등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진에어가 하와이에 비행기를 띄우고 있긴 하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지리적 특성상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쪽으로 드넓은 태평양이 자리 잡고 있고 북쪽으로는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다. 서쪽 역시 중국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수익성이 보장되는 노선을 찾기 힘들다.

LCC들의 항공기 숫자와 취항 횟수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노선을 일정한 것이다. 같은 도시에 많은 업체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를 통해 자칫 탑승률이 떨어질 경우 ‘박리다매’식 영업을 하는 LCC들은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티켓 가격에 거품이 다 빠졌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는 항공 여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인데다 유가도 저렴하다. 노선을 늘리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객 수요가 포화 상태에 이르고 유가가 오른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익성에 문제가 생기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일본항공이 경영난에 허덕였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자도 지난 11월 제주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다양한 항공사의 운임을 살폈으나 시간대에 따라 대동소이했다. 결국 한 LCC를 선택해 왕복 항공권을 구입했다. 1인 기준 6만원 남짓. 상당히 만족스러운 금액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을 향하는 KTX 편도 티켓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계점에 가까워지며 일각에서 서서히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합리적인 항공권 제공을 통해 소비자와 ‘윈-윈’ 한다는 대의명분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살펴보면 2012년부터 2016년 1분기까지 항공여객 관련 소비자 피해는 해마다 약 30%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396건이었던 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2015년에 900건까지 늘었다.

특히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소비자 불만 내용을 분석한 결과 LCC에 대한 문의가 전체(446건)의 60.3%(269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외국적 LCC에 대한 피해는 137건으로 30%가 넘었다.

▲ 비엣젯항공 항공기 / 출처 = 비엣젯항공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베트남 국적의 신생 LCC 비엣젯항공의 경우 국내에서 티켓 판매에 열중하고 있지만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개월째 홈페이지의 한글화 작업 등 기본적인 투자도 하지 않고 있다. ‘싼 표를 제공하니, 서비스 질 개선을 바라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많은 고객들이 불편함에 노출되는 사례도 있다. 수익 창출을 위해 좌석을 수십개 더 놓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항공기는 A·B 할 것 없이 좌석이 모듈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를 임의로 조절해 간격을 조금씩 줄이면 더 많은 좌석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간격을 조절해 사람을 더 태우고 싶다는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저렴한 운임에 항공권을 제공하니 일정 수준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항공사의 논리에는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다만 좌석을 수십개 더 들이겠다고 무릎 공간을 줄이는 것은 명백히 승객을 속이는 행위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비엣젯 항공의 경우 200석짜리 비행기에 좌석을 240여개까지 만드는 것을 본 적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8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92%가 LCC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로 ‘저렴한 요금’을 꼽았다. (운항 스케줄 4.9%, 운항 노선 3.1%)

가격을 통한 시장 경쟁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기자의 한 지인은 최근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항공사의 표를 예매했는데,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약 24시간 가량 출발이 지연된 것이다. 평생 단 한 번뿐인 신혼여행. 그것도 첫날을 꼬박 날린 그 부부는 다시는 해당 항공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고 있다.

고객과 신뢰를 쌓는 일은 힘든 일이다. 사람을 무작정 끌어 모으는 작업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수백번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해도 안전에 대한 심각한 결함 등 한 차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시장이다.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LCC들이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를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객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항공사들에게는 그 길이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