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호텔에서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주재원을 태워 여기 온 적이 있죠. 말쑥하게 입은 잘 살아 뵈는 양반이 여기 어머니 사신다고 하길래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들어보니 수년 전에 여기 ‘딱지(입주권)’를 2000만원 주고 샀대요. 참.”

구룡마을로 가는 길, 택시기사는 구룡마을의 가짜 입주민이 된 투기꾼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 최고의 부촌이라는 서울 강남 한복판, 그것도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타워팰리스를 지척에 두고 무허가 판잣집 2000여개가 마을을 이루고 산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567-1번지 일원의 구룡마을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거의 30년 만에 서울시와 강남구는 구룡마을 일대 26만6304㎡를 공공 주도로 개발·정비하기로 했다. 구룡마을은 2020년까지 2600가구의 최고 35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서울시는 2018년 부지 철거 시작 2019년 부지 분양 2023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시행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맡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 예정지로 손꼽히면서 2000년 초반 부동산 경기 호조로 구룡마을은 자주 투자자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2000년대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서 이 무허가 마을에도 주민등록과 전입이 가능해지자 마을에는 재개발을 노린 부동산 ‘보상꾼’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2011년 서울시가 개발 방침을 발표했지만 서울시가 환지방식 일부 도입 의사를 밝히자 강남구가 토지주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2014년 8월 도시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됐지만, 같은 해 11월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다시금 개발에 대한 필요가 논의됐다. 강남 개발로 집이 없어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판자촌 구룡마을에는 열악한 환경으로 최근까지도 잇따른 대형 화재와 홍수 피해가 발생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해 말 시가 강남구의 전면 수용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재개발을 하기로 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구룡마을 개발은 원주민과 개발 이후 유입되는 주민들이 위화감 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소셜믹스’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당초 서울시와 강남구는 구룡마을을 분양단지 3곳·임대단지 3곳으로 구분해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공사가 직접 건설하는 4개 단지의 각 동 내에 공공임대가구와 공공분양가구를 함께 배치하도록 했다. 나머지 2개 단지는 민간에 택지를 매각하는 방식을 취할 예정이다. SH공사는 이를 위해 앞서 구룡마을 1107가구에 대해 가구별 연령, 소득수준, 주거비 등을 전수조사하기도 했다.

과거 2002~2003년경 토지 보상을 노리고 거짓 입주권인 딱지 거래가 성행했다. 현재 통계치 1207세대, 주민 추정치 1000여 세대 안팎인 구룡마을은 당시 3000세대가 넘는 주민이 거주했다. 이영만 구룡마을자치회장은 “현재도 100세대 이상이 ‘유령세대’다. 실제 주민 말고 다른 세력이 있다고 안다”고 전했다.

이 자치회장은 “임대료 10만원대 수준의 국민임대 아파트를 제안했고 임대료, 이주비, 보상비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협의 전이다”면서 “주민 일거리 창출이라든지 자력을 키울 수 있는 과제들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시는 원하는 가구부터 신청을 받아 개발을 담당하는 서울 전역의 임대아파트에 임시로 살 수 있는 입주권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나 거주민 중 임대료 문제로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구룡마을 주민 보상에 대해 특혜 시비도 나온다. 시‧구 공유지는 물론 개인의 사유지까지 불법으로 점거해온 이들에게 임대주택 혜택을 주는 것도 과하다는 것이다.

강남구 M 공인중개업체 대표는 “구룡마을이 기초생활 수급자와 노인이 많은 가난한 판자촌이지만 입지는 훌륭하다. 뒤로 구룡산을 끼고 있고 경부고속도로로 통하는 양재IC 등 교통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현재 건설 중인 ‘래미안 블레스티지’ 등 고급 아파트촌이 바로 길 건너 있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시 관계자도 현재 거주민의 재정착 유도, 개발이익 공공 환수를 목적으로 주민들과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투기 수요 예방 등을 위해서도 다양한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