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당시,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맹공격했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트럼프의 존재 자체를 ‘끔찍한 악몽’에 빗대어 공격하며 “트럼프를 로켓에 묶어 날려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트럼프의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며 그와 뜨거운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애플은 공화당 컨벤션 후원을 중단했으며 실리콘밸리 일동은 공동 선언문을 통해 대립각을 세웠어요.

 

개인적으로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만약 당선되면 “어쩌려고 그러나...”

만약은 설마가 되었고, 설마는 미국의 엘리트들이 간파하지 못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확신이 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차기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됐으니까요.

당장 브렉시트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이 온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대선 당시 그가 보여준 극단적인 정책과 막말은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공포감은 대단했습니다. 페이팔 마피아 피터 틸을 제외하고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거물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에 세무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백인 블루컬러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IT 업계를 압박할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자의 등장으로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4일 미국 트럼프 타워에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모였습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와 아마존의 앨런 머스크,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IBM의 짐 로메티 등 13명이 피터 틸의 주선으로 트럼프 당선자와 회동을 가진 겁니다.

테크 서밋으로 명명된 본 회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꽤 부드럽고 건설적인 분위기로 알려졌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트럼프는 “언제나 나와, 내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혁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도 돕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고용창출 및 논란의 이민정책, 나아가 해외자산의 송환 등 굵직굵직한 아이템이 심도있게 오갔다는 말까지 들립니다.

네,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을 원하는 것 같지 않네요. 대선 정국에서는 날을 세우며 싸워도 뭔가 방향성이 잡히면 함께 나아가려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트럼프와 티격태격 싸우던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자문팀에 합류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완벽한 하모니로 보기는 어려워요. 트위터가 초대받지 못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한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트위터가 대선 정국에서 ‘#사기꾼 힐러리(#CrookedHillary)’라는 해시태그를 금지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잭 도시를 초대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게다가 개인적 취향일 수 있지만, 테크 서밋 사진을 보면 상당히 전형적이지 않나요?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죽 앉아서 사진을 찍는 모습.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는 비슷한 모음이 마치 스포츠 동아리 같았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 기념사진 같습니다.

그리고 15일,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는 사상 초유의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된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증언과 폭로가 쏟아지는 가운데 많은 국민들은 경악과 공포를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르 및 K 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기업들의 모금 활동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기업도 공범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상황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정부가 최순실 재단에 출연금을 내지 않으면 징벌적 세무조사를 시도하겠다는 협박이 있었던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세계일보는 2014년 소위 정윤회 문건을 보도할 당시 외압을 받았고, CJ는 정부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했다가 이미경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그 외 말을 듣지 않는 정치인과 관료, 경제인, 심지어 예술인들이 말 그대로 ‘찍혀서’ 나간 정황도 있어요. 전방위적 사찰 의혹도 불거집니다.

비판하고 날을 세워도 대의를 위한 방향타는 잡아내는 미국, 비판하고 날을 세우면 가차없이 쳐버리는 한국. 15일 청문회에서 공개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최순실 재단을 두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어쩌려고 그러나...” 맞습니다. 이건 한국에서만 통하는 것이네요. 오늘따라 유난히 그들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