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선택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루 일과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5분을 더 잘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고, 점심메뉴를 선택할 때도 식당의 결정, 메뉴의 결정을 하는 등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사로운 결정 말고도 주택의 취득이나 주택을 선택하는 제반 조건들을 검토하는 등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일반적으로 주택을 구입해서 입주를 하고 나면 다음 주거이동을 결정하기 전까지 주택에 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택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인 만큼 물리적인 안전을 확보해야 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건축물도 인간처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낡아간다. 건물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주택의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선택과 실행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다만 건물이라는 특성상 그 기능을 다하게 되면 재건축이 가능한데, 이 또한 비용을 들여 보수를 하고 계속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낡은 건물에 많은 유지관리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재건축이 효율적인지 판단해 선택할 필요가 생긴다.

우리는 아파트 재건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사업성’이라는 단어와 연관 짓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건축이 추진되는 경우 기본적으로 사업성이 있다는 의미이며 노후한 아파트의 몸값이 상승하는 요인이다.

용적률의 여유가 많아서 사업성이 우수했던 수많은 저층 단지들은 이미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될 정도의 초고층 주택으로 변모했다. 아파트가 점점 고층화, 고밀화되는 현실에서 앞으로도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질까? 1, 2기 신도시를 비롯한 고층 아파트의 노후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일찍이 시작되었고 재건축의 대안으로 여러 정책들을 모색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를 투자처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에서 고층 아파트의 재건축에 대한 행방이 궁금하다.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았다. 일본에서 맨션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구분소유법에 관한 법률(구분소유법)’의 규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구분소유법은 맨션의 관리조합을 설립하고 규약과 집회를 통해 관리를 해야 한다는 골자가 담긴 법으로 재건축에 관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재건축을 위해서는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의 각 5분의 4 이상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데 구분소유자에게 재건축을 필요로 하는 이유, 재건축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건물의 유지 보수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 등에 대한 내용을 사전에 알려야 한다. 전적으로 소유자들의 자율에 의해 결정할 사항이고 다른 제도적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국토교통성에서는 맨션 재건축 사업이 완료된 건수를 2014년 4월 현재 199건(약 1만6000호)으로 집계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발생 후 붕괴한 맨션의 재건축 109건과 비교해보면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더구나 2013년 주택 센서스에 의하면 맨션의 재고 590만호 중에서 1981년에 도입된 새로운 내진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맨션은 약 106만호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안전에 민감한 일본인들의 대부분이 재건축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중에서 두 가지 정도만 이야기한다면 첫 번째는 역시 비용 부담을 들 수 있다. 일본은 대단지 개발 형식이 아니라 평균 100세대 미만의 소규모 맨션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도심 거주라는 편리성을 배경으로 가지기 때문에 용적률의 여유가 없고 사업성이 떨어진다. 결국 소유자의 비용 부담에 의해 재건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법에서 정한 의결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다. 재건축을 설득하기 위해 재건축을 하지 않았을 경우 소요되는 유지보수 비용이 재건축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현저하게 많다는 입증을 해야 하지만 쉽지 않고, 노후 맨션의 거주자 중에는 맨션과 함께 나이를 먹은 고령 세대들이 많기 때문에 당장의 주거를 옮겨야 한다는 부담 등으로 재건축을 꺼리는 경향이 만연하다.

국토교통성에서 실시하는 주생활종합조사에서 고령자들이 자녀에게 주택자산을 상속하지 않겠다는 세대가 43.4%로 높은 점도 주택을 자산가치 증식의 수단이 아닌 거주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재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국토교통성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건축 후 30년이 넘은 맨션의 관리조합이 응답한 맨션의 현안문제 중에서 배관과 급수설비의 노후화, 지진에 대한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맨션 관리에 관심이 있는 소유자라면 통상 11~15년마다 대규모 수선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대규모 수선 또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대규모 수선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이 나을지 노후 맨션의 소유자들은 고민이 크다. 노후화한 맨션에서 장기간 재건축 논의를 하다가 유지관리의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많아 정부에서도 향후 많은 맨션에서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이렇듯 재건축이 필요한 맨션에서 합의 형성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재건축의 추진이 힘들다는 점 때문에 국토교통성에서는 맨션에서 재건축 사업을 실시하고자 할 때 원활한 의사결정을 도모하기 위해 2002년 ‘맨션의 재건축 등의 원활화에 관한 법률’ 등 법령체계를 마련한 바가 있다. 2015년에는 내진성이 부족한 맨션의 경우 용적률 완화의 특례 조항이 마련되었다.

언뜻 보기에 맨션의 재건축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 같지만 어디까지나 사업을 원활하기 추진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규정한 것으로 노후 맨션의 재생 방법으로 재건축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맨션의 재건축과 수선을 판단하기 위한 매뉴얼’

건축 후 30년 이상 경과한 맨션을 이른바 고경년(高經年) 맨션으로 분류하고 맨션 관리조합에서 맨션의 노후도를 판정하는 기준, 비용대비 개선효과에 비추어 맨션의 재생 방법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매뉴얼을 통해서 재건축이나 대규모 수선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각 방식에 대한 추가적인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재건축을 결정한 맨션의 경우 다음 스텝인 의사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매뉴얼, 재건축 사업에 있어서의 실무 매뉴얼을, 대규모 수선을 선택한 단지에서는 개수에 의한 맨션의 재생수법에 관한 매뉴얼, 맨션의 내진화 매뉴얼을 마련해 각각 참조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재건축이든 대규모 수선이든 맨션의 안전을 위해 구분소유자가 어떠한 액션을 취해줄 것을 바라는 입장에서 주거환경을 고려해 선택 가능한, 균형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본다.

주택에서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공동주택에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어떻게 유지관리를 하고 공동체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공동주택 생활이 의미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주거환경을 바라본다면 건축물의 안전 여부를 판단하는 안전진단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현수막을 거는 괴이한 행태들은 사라질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