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할 독재자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은 옳은 일일까?

과연 그가 용서를 구하면 신은 용서해주실까?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것 같은 자가 무릎을 꿇고 불안함에 떨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작아진 왜소한 몸에 침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하늘을 보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다. 그런데 정작 그가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은 신이 아닐 것이다.

Him, 2001. wax, human hair, suit, polyester resin and pigment. 39 3/4 x 17 x 25 in. ▲ Maurizio Cattelan, Him, 2001

이 작품은 이탈리아 출신의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elan, 1960~ )의 조각이다. 2016년 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00억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된 이 작품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전시했다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침공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바르샤바에 등장한 히틀러라니! 가장 용서받지 못할 곳에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며 끔찍한 고통을 상기시키는 존재로 유태인 단체의 거친 항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희대의 악마 히틀러를 천진난만한 소년의 몸으로 묘사하여 우스꽝스럽게 용서를 빌고 있는 모습은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또 다른 그의 작품 <La Nora Ora(아홉 번째 계시), 1999>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을 맞고 무기력하게 십자가를 쥐고 쓰러져 있는 실물 크기의 조각이다. 신이 계신 하늘에서 보낸 운석이 하필이면 교회로 날아들어와 그것도 교황을 덮치다니. 보호받아야 마땅할 가장 가까운 신의 제자가 어처구니 없이 운석에 깔려 쓰러진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이 작품 역시 전시에 출품하자마자 종교인들의 항의로 인해 철수되었다.

이것이 마우리치오 카텔란 식의 블랙코미디다. 정치, 종교, 역사, 문화 등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한 냉소적 유머, 그리고 기성 체제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그의 주된 작업재료다. 우스꽝스럽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결코 보이는 것만큼 재미만 있는 작품이 아니다. 작가 노희경의 표현처럼 ‘웃으며 칼 주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유머다. 카텔란은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역사적 이미지를 그의 방식대로 뒤집고 비틀어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렇게 뒤집어지고 비틀린 그의 작업은 보는 이에 따라서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입 안의 모래처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예술이란 것이 그런 존재일지 모른다. 너무나 당연히 흘러가는 삶 속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돌부리 역할을 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이 예술가의 시선이며, 사회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역할일 것이다.

체스를 두기 위해 작업을 그만둔 뒤샹의 뒤를 이으려는지, 인기의 정점에 있는 카텔란은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형 회고전 <All>을 마지막으로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그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발칙한 악동인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킬 만한 화두를 던질 것이다. 연일 믿기 힘든 뉴스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조차 힘든 부조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속 시원한 블랙코미디를 보여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