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는 “내가 낸 연금을 노후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틀린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구조는 A라는 사람이 받고 있는 국민연금은 A가 과거 낸 보험료의 절반, 그리고 현 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에서 절반을 각각 받는 형태다. 이에 국민연금이 후세에 부담을 주는 제도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또, 인구증가율이 감소추세에 있어 향후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왜 이렇게 설계된 것일까. 현재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사람들은 1950년대 초 이전에 태어난 세대다. 주지하다시피 이 세대들은 농업사회에 태어나 국내 산업발전의 변화를 모두 경험했으며 한국 경제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발전’에만 노력을 기울인 탓인지 노후준비는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경제의 구조적 변화 탓도 있지만 ‘부양’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이 달라진 점도 있다. 이들 세대의 경우 부모를 반드시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자신들의 노후자금을 부모를 부양하는 데 소진했다. 하지만 다음 세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인식이 점차 약해지면서 현재 노후세대는 곤경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노후 준비를 철저히 하는 성향은 점차 강해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노후세대다.

국민연금의 본질 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바로 이 부분이다. 즉, 구조적 변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탄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처음부터 젊은 세대들이 노인세대에게 자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 시 수정적립방식을 채택했고 이를 통해 돈을 쌓아둘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투자수익금을 올릴 수 있었으며 그만큼 후세대들의 부담을 줄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후세대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국민연금이 단순 부과방식으로 시작했을 경우에나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수익률을 높이면 기금이 고갈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국민연금의 출발이 ‘구조적 변화의 공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구조적 변화의 공백을 막고 고갈 시기를 연장하는 것뿐이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완전부과방식이 가능한 시점까지 끌고 간다면 국민연금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국민연금이 매년 막대한 수익률을 올린다면 공적연금 역할의 확대는 물론 ‘고갈’이라는 단어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운용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완전부과방식의 전환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는 인구증가율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노인 1인당 후세대들의 부담이 커지고, 반대의 경우 작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제도가 후세대들의 부담을 줄이면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출산율 증가에 따른 인구증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미래의 인구증가가 보장되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기금투자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투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단연 수익률이라 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의 급속한 고갈과 구조적 공백을 막기 위해서는 투자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를 들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혹은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단순 수익률에 머물다 보면 일반 자산운용사의 펀드와 다를 것이 없다. 사회적 그리고 세대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이 필요했다면 국민연금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금을 이용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구성원의 필요조건… 역할을 알고 본질을 깨달아라

최근 국민연금이 지난해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찬성한 것에 대해 질타가 쏟아졌다. 특히 국민들은 “내 피 같은 돈을 마음대로 남용했다”며 분노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피 같은 돈을 맘대로 남용해 후세대들에게 더욱 큰 부담을 주게 됐다”는 표현이 옳다.

그만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에 대해 좀 더 깊게,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연금임은 물론 자칫 잘못 사용하면 후세대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주체는 국민연금의 역사와 그 역할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수익률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이를 주목표로 삼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주체들은 국민연금에 독(毒)이 될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이유는 삼성물산 합병, 강면욱 기금운용 본부장 선임 과정 의구심 등에 대해 국민연금이 구차한 변명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그 설립의 목적을 중심에 뒀다면 오히려 이슈는 확대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다. 그러나 그 변명들이 결국 국민연금 본연의 취지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국민연금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사기업들도 정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공적기관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뿐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미덥지 않다. 따라서 기금운용의 목적은 더욱 확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출처:한국개발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총표준소득대체율은 50% 정도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공적연금 평균소득대체율인 41.3%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하지만 2014년 기준 실질대체율은 25.6%로 지난 2010년 유럽연합(EU) 27개국의 평균실질대체율 48%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은 탓인데 우리나라는 평균가입기간이 16년, EU 27개국은 36년이다.

또 시장소득 기준 빈곤가구가 공적연금을 보유했을 경우에는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빈곤을 탈출할 확률이 44.6%에 달하는 데 반해 공적연금을 보유하지 못했을 경우 9.8%에 불과하다. 이는 연금성숙에 따라 재분배가 강화되는 공통적 흐름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됐으나 광범위한 사각지대로 인해 그 폭이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취약층의 연금보험료 지원, 가입회피자에 대한 제재 강화 등도 필요하지만 기금운용 측면에서는 건강한 고령자가 근로를 계속하는 데 장애가 되는 노동시장 차별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투자에 있어서 단순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노동환경의 개선을 위해 투자하고 이에 따른 연금수급연령 및 연금액 조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