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2016년 화웨이 유럽 생태계 대회를 열어 통신사와 개발자를 위한 공생 생태계 조성을 천명한 바 있다. 각 플레이어를 위한 클라우드 및 생태계 플랫폼을 만들며 이를 위해 2020년까지 9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프랑스 정보데이터전문공회(Syntec Numerique) 부주석인 도카포스트(Docapost) CEO 뮈렐 버나우드(Muriel Barneoud)까지 참석해 화웨이와의 협조를 다짐해 눈길을 끌었다. 화웨이 서유럽부문 펑보(彭博) 총재는 “다양한 꽃이 같이 피어야 완연한 봄이 오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개방과 협력을 위한 아름다운 다짐이다.

다양한 아젠다가 등장한 가운데 화웨이의 ‘옥토 계획’이 눈에 들어온다. 2020년 이전 유럽에 약 930억5000만원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영국, 독일, 이탈리아 3개 오픈랩을 조성하는 한편 최대 10만 명의 개발자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통신사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방대한 클라우드 전략을 공표해 총체적 생태계 전략을 상생의 방향에서 풀어나간다고 밝히기도 했다.

▲ 출처=화웨이

스마트폰과 장비, 그리고 화웨이

국내에서 화웨이는 대중적 관점에서 스마트폰 회사로 알려졌지만, 사실 네트워크 인프라에 기반을 둔 B2B 경쟁력이 핵심이다. 물론 지난해 말 B2C 사업을 맡는 컨슈머그룹에 성장 동력을 집중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엔터프라이즈그룹을 중심으로 사업이 전개된 바 있다. 이는 국내 통신사와의 거래를 통해서도 잘 확인되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화웨이가 국내 통신사의 ‘긴장적 대립관계’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는 행보가 보여 눈길을 끈다. 먼저 사물인터넷(IoT) 분야다. 국내 스마트홈 사업의 경우 삼성전자 및 LG전자와 같은 제조사들이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상 통신사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구축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SK텔레콤이 로라(LoRa)를 내세우며 시장 주도권 잡기에 나서자 KT와 LG유플러스가 전격적 동맹을 선언하는 등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지난 11월 3일 KT 사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1분기를 목표로 협대역 사물인터넷 표준기술 NB-IoT(NarrowBand-Internet of Things) 상용화를 공동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김준근 KT 기가 IoT 사업단장은 "양사의 협력은 경쟁이 나닌 협력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라며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물인터넷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화웨이가 등장한다. 화웨이 셀룰러 IoT 제품 라인 주청(Zhu Cheng) 사장은 11월 21일 LG유플러스 서울 상암사옥에서 “LG유플러스와 화웨이는 전부터 긴밀한 협력관계였다”며 “앞으로 화웨이는 LG유플러스가 IoT 시장 선두가 되도록 항상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결고리는 NB-IoT다.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는 NB-IoT를 선택했으나 사실상 후발주자에 가깝다. 이 대목에서 국내 통신사 중 LG유플러스와 연합해 나름의 동력을 창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양사는 이번 협력을 통해 ▲칩셋, 모듈 등 10만여개의 IoT 핵심 제품 지원 ▲국내외 ICT 업체에 기술 및 장비 개발 지원을 위한 오픈랩 공동 구축 ▲제조‧서비스업체의 글로벌 진출 지원 등을 주요 핵심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화웨이가 NB-IoT 동맹군인 KT와 LG유플러스 중 LG유플러스와 유일하게 손을 잡은 지점이다. 칩셋, 모듈 등 10만여개의 IoT 핵심 제품을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조치다. LG유플러스 입장에서는 KT와의 협력으로 NB-IoT 상용화에 집중하면서 화웨이와 오픈랩을 기점으로 단말기 및 솔루션, 시스템 통합업체 육성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화웨이가 LG유플러스 단독으로 손을 잡은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현재 사물인터넷 시장, 특히 스마트홈에 있어 국내 통신3사 중 가장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는 쪽이 LG유플러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의 홈 IoT 가입자는 50만 가구를 돌파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속속 내고 있다.

13일에는 스마트 욕실 사업 진출 소식도 알렸다. 국내 욕실 인테리어 공급업체인 아이에스동서와 협력해 IoT 기반의 스마트 욕실 사업에 진출한다. 앞으로 양사는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 주거공간의 욕실에 IoT 기술을 적용해 전자기기, 비데, 환풍기 및 조명 등 다양한 기기를 하나로 연결하는 스마트 욕실환경을 구축하게 된다. LG유플러스 IoT서비스부분장 안성준 전무는 “IoT 솔루션과 욕실 인테리어 사업간의 협력은 사용자에게 새로운 공간 중심의 프리미엄 생활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며 “건설 부분과의 협업을 통해 주거 트렌드의 변화에도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스마트홈 부분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는 LG유플러스와 협력하는 편이 최소한 국내에서는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두 번째로는 LG유플러스와의 인연이다. LG유플러스는 화웨이의 첫 국내 출시 스마트폰인 X3 시리즈를 함께 런칭한 추억이 있다. 그 전부터 네트워크 장비적 측면에서 협조를 이어왔으며 2013년 갖은 논란을 감수하며 화웨이 기지국을 도입하기도 했다. 사사로운 인연이 아닌, 기업과 기업의 관점에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는 뜻이다.

특히 스마트폰적 측면에서 국내 통신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막강한 브랜드 파워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대형 제조사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통신사 입장에서 LG유플러스는 LG전자라는 든든한 우군을 바탕으로 나름의 배팅에 나설 수 있으며, 시장 3위라는 지위는 잃을 것이 없다. 화웨이라는 선택지를 스스럼없이 체화할 수 있는 배경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최근 SK텔레콤이 화웨이 기지국을 도입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LG유플러스와 다르게 SK텔레콤은 국내 통신시장 1위 사업자며, 만약 화웨이 기지국을 도입한다면 국내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은 상당한 후폭풍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아바타’라는 점을 필요이상으로 지적하며 “사드 배치 및 한일군사정보협약 체결 등으로 중국에서 소위 ‘한한령’까지 내려진 판국에, SK텔레콤이 화웨이 기지국을 도입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다소 감정적인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SK텔레콤 입장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데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화웨이의 매력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는 네트워크 장비적 측면을 벗어나 이동통신시장 전반에 미칠 삼성전자와의 협력관계도 간접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SK텔레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출처=화웨이

화웨이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유선 통신장비를 공급하기도 한다. 옌 리다(Yan Lida) 화웨이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그룹 대표는 13일 이희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 양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후원 협약을 체결했다. 유선 네트워크 장비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경기, 업무 및 데이터망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네트워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실시간 경기 데이터 전송, 광대역 인증 대회망 보안 모니터링 등 다양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같은 시각 KT는 5G 필드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는 한편 평창올림픽에서 구현할 실감 미디어 서비스도 공개했다. 오는 2026년까지 글로벌 5G 시장점유율 2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되는 상황에서 ‘5G 올림픽’이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참고로 화웨이도 5G에 관심이 많다. 최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글로벌 ICT 박람회 ‘ITU 텔레콤 월드 2016’에서 5G·가상현실을 비롯한 클라우드, 국가 광대역 네트워크, 무선 통신 및 스마트 디바이스 등 최신 기술 및 적용 사례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서 화웨이는 올 한 해 높은 관심을 얻은 초고속 VR 및 5G 무선 솔루션을 전시해 이목을 끌었다는 후문이다.

저우 즐레이(Zou Zhilei) 화웨이 캐리어 비즈니스 그룹 사장은 “데이터 센터와 광대역 네트워크는 국가 정보 인프라(NII)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화웨이는 보다 연결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비약적인 발전 기회를 모색중인 개발도상국은 정책을 비롯해 표준의 조정 및 인프라 확장을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하며 “화웨이는 전국 광대역 솔루션을 성공적으로 제공한 전문 경험을 보유한 기업으로써 국가의 광대역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 출처=화웨이

화웨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화웨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국내 시장에 들어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언론은 화웨이를 아직도 ‘중국=화웨이=하수’의 공식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최근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시각은 존재한다. 삼성전자의 인재가 화웨이로 가면 ‘유출’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난데없는 ‘공포’로 변하는 대목이다. 화웨이의 약진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며 국내 시장과도 많은 접점을 가지는 순간 ‘불편함’이 ‘공포’로 변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인재가 화웨이로 가면 ‘유출’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상황인식이 있다. “어? 언제 이렇게 컸지? 뭐야? 무섭잖아!” 과거 일본을 상대로 소위 ‘달빛관광’을 통해 무조건적인 기술흡수에 나섰던 우리의 본능이다. 하수로 저평가하면서 외면했지만, 이제 공포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단언하는데, 이러한 상황인식은 현실을 이해하고, 유리하게 끌어오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편함’이 ‘공포’로 전이되는 것은 아직도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불분명한 무언가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부정하고, 나중에는 공포에 질려 머리를 이불속으로 파묻는 법이다.

곳곳에서 실패하면서 때로는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을 거듭하며 이제는 생태계 전략까지 구사하기도 한다. 화웨이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시각 모두 버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