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간 목수로 일해왔다. 성실하고 손재주가 좋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더할 나위 없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한 게 그의 매력이었다. 심장병을 앓기 전까지는 말이다. 질병으로 직장을 잃고 그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기계적이고 탈인간적인 관료시스템에 막혀 실업급여조차 신청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모든 절차가 컴퓨터 작업에서 시작되는 시대가 돼버렸다. 연필 시대를 살아온 그에게 디지털 시대 방법은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1967년 데뷔작을 시작으로 50년간 영화를 만들어온 거장이다. 이번 영화로 두 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켄 로치는 “‘가난함은 너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영화관을 대변해주는 한 마디다.

우리 일상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올해 금융권의 대표 키워드는 단연 ‘핀테크’다. 각 은행장들은 연초 디지털경영‧원년 등을 선포했다. 모바일 플랫폼이나 무인창구 같은 비대면 채널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바일‧온라인 가입 시 우대 금리를 주는 상품은 늘고 있다. 은행 창구에서 가입할 수 없는 상품도 적지 않다. 대부분 일반 상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핀테크 활성화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최근 금융시장을 보고 있으면 다니엘 블레이크의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시중은행들은 ‘IT 숙련도가 낮은 너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리하지 못한 전략이다. 특정 고객층을 배제한 하이테크 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는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증명이 됐다. 선두 기술을 따라잡는 데 요구되는 시간은 단축되고 있다. IT시장의 화두는 최신 기술 레이스에서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로 넘어온 지 오래다. 현재 핀테크 시장에서는 이 같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고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주고 있을 뿐이다.

다양한 고객이 핀테크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 모바일 플랫폼 사용법 교육을 진행하거나 다양한 기능 대신 직관성에 초점을 맞춘 사용자경험(UX)을 채택할 수 있다. 젊은 고객층보다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높은 중장년 고객층까지 포용한다면 한층 내실 있는 경영전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