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1300조원 시대다. 줄여야 한다지만, 계속 늘기만 한다. 경기침체로 자산디플레가 본격화하면 가계 폭탄으로 작용하리란 우려다. 갚을 방법이 다양치 않다. 대부분 돈 벌어서 갚겠다지만, 일자리는 줄고, 자영업 성공률은 낮다.

가계마다 빚 걱정인데, 가까운 친척,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온갖 유혹으로 빚 권하는 사회는,  빚 걱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분위기에 눌려 있다. 도전의 결과일 수 있는데 실패의 결과로만 낙인찍는다. 채무자는 빚 해결을 주저하다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다.

이래선 안된다. 빚은 돈 벌어서 갚을 수 있지만, 파산 절차로 면책 받아 해결할 수도 있다. 채권자와 협상해 크기를 줄일 수도 있다. 갚는 방법은 제한되어 있지만, 해결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빚을 대하는 사회의 새로운 태도다. 우선, 빚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도전의 결과일 수 있다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 빚은 당사자의 탓이 아니라, 그에게 찾아온 `운명의 장난질` 때문일 수 있다는 비(非)인과적 접근이다. 예를 들어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 부담은 청년의 잘못이 아니다. 셋째, 재취업, 재창업으로 경제 활동에 복귀해 사업자, 소비자, 납세자로 돌아오게 하자는 희망적 태도다.

 이제 빚 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때다. 그래야 어떤 경위로 개인이 많은 빚을 지게 됐는지.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고통을 견디고 있을까를 사회가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이 경제활동에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아내야 한다. 채무자 뿐 아니라 채권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없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빚은 해결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주]

40대 후반의 한 언론인은 덤덤하게 살아온 날들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의 빚 인생 30년 스토리는 처연한 한편의 드라마 그 자체였다.

 “저 원래 `금수저`로 태어났어요. 고등학생 시절이던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아마 한국의 상위 1%에 들 정도였을 걸요. 군 장성 출신인 아버지 친구들중 장관들이 수두룩했고, 제 집 드나들듯 놀러오셨죠. 어머니는 저희 2남1녀 남매들 앞으로 당시 최고가였던 40평형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한 채씩 마련해 두셨고요.  그러다가 고 2때 아버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시면서 가세가 기울더니, IMF 경제위기가 터지자 집안이 빚더미에 올라섰죠.”

 건축인테리어 사업으로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리던 형(兄) 회사가 부도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매형도 사업을 날렸다.

 “제가 해군 중위로 복무중이었는데, 형님이 제 인감도장을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대출 보증을 세웠다는 거예요. 형님은 종적을 감추고 매일같이 채권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고, 아파트를 팔아 빚을 갚아갔지만 턱없이 부족했죠. 매형 사업까지 망해 누님이 조카 둘을 데리고 오는 바람에 빚갚으랴, 애들 키우랴 정신없었습니다. 집안 막내로 부족한 것 모르고 자랐는데, 그때 힘들어서 참 많이 울었어요.”

 1년반 뒤, 형님은 홧김에 매일 술을 마시다 간경변으로 세상을 떴다. 그는 혼자서 뇌졸중 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의 딸, 그리고 누나와 조카 둘을 돌봐야 했다.

“운 좋게 언론사에 취직했는데, 채권자들은 회사로 툭하면 편지를 보내 빚 독촉을 해댔죠. 그들 눈엔 언론사 기자는 협박하기 좋았던 모양이에요. 회사에 양해를 구하며 월급의 일부로 매달매달 조금씩 빚을 갚아 나갔죠”

형님이 쌓아놓은 빚을 감당할 수가 없자, 사업으로 떼돈(?)을 벌어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유학을 갔었던 프랑스로 비행기 값만 들고 가서 프랑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거의 거지신세였죠. 한 6개월이 지나 미술사업 아이템을 잡아 한국에 있는 누님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죠. 제대로 터지는 듯했습니다. 아니 터졌고, 빚을 갚겠다 확신했죠”

 하지만, 누님은 딴 생각이었다. 형님이 물려준 집안 빚을 갚으려던 본인과 달리, 누나는 매형 빚을 갚는데 돈을 써버렸다. “수억원을 벌어서 재활 기반을 마련해 몇년 내 갚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누님이 돈을 다 빼돌린 거예요. 어머니랑 같이 살던 집 보증금도 월세를 미뤄 다 날렸더라구요. 누나와 엄청 싸웠어요.”

필자는 “그때 파산신청을 생각해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의 답은 간단했다.

 ”쪽 팔리잖아요. 쪽 팔려서 어떻게 신청합니까.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잘 몰랐고요. 지금 이라면 달랐겠지만“

“지금 상태는 어떠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프랑스 친구들과 연락하며 사업을 계속해 어느 정도 갚았어요. 어머님 집은 다시 찾았고요. 누나는 최근에 개인회생을 통해 정상으로 돌아왔죠. 지금까지 이자를 포함해 90억원 가량을 갚은 것 같습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또다른 고민을 털어놓았다. “최근 신용회복위원회에 가서 알아봤더니, 오래된 빚이라 이젠 채무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채무가 다 사라진 거겠죠. 하지만 제 신용등급이 엉망이 됐어요. 여자 친구랑 내년에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전세금 대출을 받을 방법이 없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와주세요.”

그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 기나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걸까. 죄라도 지은 것인가.

 “제 잘못요? 글쎄요. 인감도장을 형님에게 넘겨줬던 거 아닐까요? 누나에게 속은 거? 아니면, 모두 다 제 잘못인 거죠?” 고학력자 인데도,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잘못한 게 없다는 점이다. 죄를 지은 건 더더욱 아니다.  단지 사업하는 형님과 매형을 둔 것밖에는 다른 원인이랄 게 없다. 이처럼 과다 채무자나 지급 불능자중 상당수는  자신도 아닌, 가족, 지인들의 불행에 끌여들어간 경우다. 한마디로 운이 지독히 없을 뿐이다.

 하지만 이 케이스를 놓고 짚어볼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지금은 보증채무를 감면 또는 면책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대율의 안창현 대표변호사는 “이 케이스는 IMF위기 직후에 과다한 보증채무로 고통을 받은 경우인데, 지금이라면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진단했다.

안 변호사는 “이처럼 보증채무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08년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보증인이 금전적 이익 없이 보증을 제공한 경우, 보증 채무를 감면 또는 면책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이를 피하기 위해서 금융권에서 편법을 쓰고 있음도 귀띔해줬다.

그는 “이와는 다르지만, 형님이 경영하는 회사에 동생이 임원 등으로 재직하다 보증을 섰고 이후 퇴임했을 경우, 이는 어쩔 수 없이 보증을 선 것인 만큼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법원 판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자금 마련은 어떻게 할까.

지속가능한 가정경제연구소 박상훈 소장은 “정부 지원의 햇살론 등은 대출한도가 적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에서 판매하는 전세금 담보대출을 활용해보라”고 권했다.

담보대출이라 신용등급이 낮아도 대출이 가능하다. 전세보증금의 70~80%까지 대출한도가 나와 안정된 직장만 있다면 시도해볼 만하다는 설명했다. 박 소장은 “전세 보증금이 1억원이라면, 2천만~3천만원 정도 자기자금만 갖고 전세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다만 전세를 구할 집은 기존 대출이 끼어있지 않는 깨끗한 집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증 채무는 완전히 사라진 걸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류기훈 부채구조조정 전문가는 “이 경우는 채권 소멸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이지만, 신용회복위의 채무기록이 남아있지 않다해도 경계를 늦추면 안된다”며 “통상 채무기록이 누락되는 경우가 많아, 유동화 회사 등에서 채권이 떠돌아 다닐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언젠가 채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재산을 다시 모으고 있는데, 갑자기 자산압류가 들어오는 경우도 흔하다. 때문에 소멸시효(5년) 만료를 주장하는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해 못박아둘 필요가 있다.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류 전문가는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실질적인 금융거래가 이뤄지는 신용카드 사용이나 대출금 상환, 변제 실적 등을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적립 포인트나 적금, 예금 등은 자칫 은행담보물로 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개인회생 때는 변제계획을 완료한 후라도 신용등급이 곧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개인파산자가 면책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신용불량자를 특별관리하는 `특수코드1301` 리스트 때문이다. 이 리스트에서 삭제되려면 5년이 걸린다. 이 후에 비로소 신용등급이 5등급으로 새 출발하게 된다. 소득증빙을 할수 있다면 보다 빨리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적은 금액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변제계획 이행중이라도 개인회생자 전용대출(소액)을 이용할 수 있게 완화됐다.  연체가 발생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1~2등급까지 오를 수도 있다.

<빚으로 고통을 겪고 계신 분은 제보나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고민을 나누며 좋은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연락처: 이코노믹리뷰 편집국 회생,파산부 02-6321-3042, 3096
 

- 이메일: lawyang@econovill.com 또는 supermoon@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