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써로게이트. 출처=공식 홈페이지

2009년 개봉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써로게이트>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현실에 존재하는 근미래의 유토피아가 배경입니다. 이제 맥클레인 형사가 누런 런닝구 하나 걸치고 빌딩에 기어 올라가 테러리스트와 싸우거나 '사이먼 가라사대'라는 짜증나는 목소리를 직접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와 연결된 또 하나의 '나(로봇)'가 현실을 대신 살아주니까요.

쉽게 말하면 내 아바타가 현실에서 직접 활동하는 겁니다. 외모와 체형 등 자신이 꿈꾸는 모든 것을 아바타에 구현할 수 있고요. 대단한 세상입니다. 저요? 저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그냥 소박하게 정우성 외모 정도에서 타협할게요.

영화 <써로게이트>가 흥미로웠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온라인에서나 가능하던 가상의 아바타가 실제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린든랩이 2003년 만들었던 비운의 게임, <세컨드라이프>보다 더욱 과감하고 자극적이에요.

 

아마존고, "대단한거야!"
아마존이 또 희한한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아마존고(Amazon Go)에요. 처음에는 증강현실 서비스인가 싶었는데 다릅니다. 컴퓨터 시각화와 인식센서, 딥러닝 기술 등을 융합한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Just Walk Out technology)'을 바탕으로 전자동 오프라인 사업장을 현실로 만들었어요.

아직 테스트 수준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제프 베조스가 원하는 우주만큼이나 넓고 방대합니다. 앱을 실행하고 아마존 계정을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매장에 들어서면 됩니다. 그리고 물건을 집어들고 그냥 나오면 끝.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거나 번거러운 절차가 대폭 줄어드는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부여가 가능할까요? 긍정, 혹은 부정적인 의미가 모두 있어 보입니다. 일단 아마존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인 요소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약간 다른 말이지만 중국의 텐센트가, 아니 중국의 O2O(Online to Offline)가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면서 결제의 요소를 초기부터 담아냈기에 가능한 겁니다. 여기에는 국내처럼 신용카드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던 특유의 풍토도 큰 역할을 했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좋았다는 말인가? 텐센트의 위챗은 O2O를 전개하며 초반부터 결제단을 붙였고, 성공시킴에 따라 유의미한 소비자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거든요. '수익'을 올려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O2O를 통해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도, 결국은 '돈'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리하자면 소위 빅데이터의 가치는 돈이 움직이는 소비자의 패턴을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부분이 진성 데이터로 분류되니다. 위챗은 여기에서 재미를 본 거에요. 그러니까 O2O도 힘있게 추진될 수 있었던겁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존고도 비슷합니다. 아마존고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왜? 편리하니까! '저렴하다'의 차원을 넘어 이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오프라인의 수고로움을 덜어낸다는 겁니다. 이는 유인효과가 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결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어요.

나아가 아마존 중심 생태계 구축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중국에서 고전하는 아마존이 프라임 회원으로 승부를 본다고 합니다. '프라임=돈=시장 장악력'이기도 해요. 전자상거래는 물론 파이어폰, 심지어 AWS의 인공지능 플랫폼에서도 아마존은 자사 중심의 생태계 전략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마존고는 매력적인 미끼이자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창구, 또 자사 중심 생태계 확충과 '돈'도 됩니다. 꽃놀이패!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좋아요. 너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대목도 있어요. USA 투데이가 밝힌 아마존고의 비결 중 하나에는 아마존이 지난 2014년 미국 특허상표청에 출원한 물품 재배치 특허(US20150012396)가 있습니다. 소비자가 최초 매장에 들어가며 아마존 앱 활성화에 들어가면 매장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고객을 면밀히 따라가는 기술인데요, 약간 나간 해석이기는 하지만 이 기술은 사생활 침해 요소도 있어 보입니다. 특히 소비자의 손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매장의 카메라. 물론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겠지만 의도하지 못했던 사고는 언제나 있는 법이니까요. 참고로 해당 기술은 소비자의 피부색까지 가려낸다고 합니다. 저만 무섭나요?

업계 입장에서는 사실 아마존고가 재앙입니다. 일자리 창출은 커녕 일자리가 사라지니까요! 계산원과 매장 경비원 등 기존 인력들이 대거 사라질 겁니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항상 논해지는 이야기인데, 이건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버와 택시기사의 분쟁에서도 쉽게 보여지는 파열음인데, 아직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마존고가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이미 있는 기술이다'라는 시각도 보입니다. 맞습니다. 특히 비콘업계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RFID 등 근거리 기반 위치확인기술 등을 보유한 상태에서 아마존고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진실이 뭘까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먼저 '아마존이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 아마존고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전제. 안타깝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아마존고는 나름 생명력을 가집니다. 존재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제 오프라인에 특별한 사용자 경험을 실어주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대단하니까요. 단말기에 소프트웨어 사용자 경험을 실어 장사하는 애플이 제일 잘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말이 쉽지, 이건 정말 어려운 겁니다.

또 하나의 전제는 '아마존고의 기술력은 새롭다'는 부분입니다. 최소한 비콘과의 비교에서 가능한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전제가 성립되냐고요? 물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마존고는 비콘 등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아마존고가 보여주는 치밀한 상황 제어 능력은 현재의 비콘이 가지는 개념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훌륭한 기술이지만, 영역의 차이는 있지요.

▲ 출처=아마존

아마존고 진짜 의미, <써로게이트> 패러다임
그러나 아마존고의 최대, 아니 진짜 의미는 바로 영화 <써로게이트>의 패러다임이라고 단언합니다. 오프라인을 온라인처럼 만들어 버리려는 발칙항 야망이거든요.

생각합시다. 아마존고의 프로세스는 어디서 많이 보던 것 아닌가요? '스마트폰이나 PC앞에 앉아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들어간 후 물건을 고르고 결제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결제를 기다린다거나 계산원을 만나지 않죠. 맞습니다. 아마존고는 온라인의 사용자 경험을 그대로 오프라인에 옮겨왔습니다. 온라인에서 경험을 축적한 아마존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최근 유통가의 화두인 쇼루밍과 역쇼루밍의 측면에서 살펴봅시다. 쇼루밍은 오프라인에서 상품을 보고 실제 상품은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저렴한 가격이라는 사용자 경험을 담아낸거죠.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대목은 있습니다. 바로 전자상거래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 오프라인 거래를 대체하지 못했다는 엄연한 팩트.

HSBC의 경제학자 프란줄 반다리와 프리스비라즈 스리니바스에 따르면 2008년 중국 전체 소비 규모 대비 전자상거래 비율은 약 1.7%, 2015년 13.6% 수준입니다. '위대한 아마존, 알리바바님이 다 해주실거야'라고 하지만 아직 규모의 경제는 오프라인에 더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마윈과 제프 베조스는 위대하지만 이들이 모든 상거래를 정복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마존 시가총액이 월마트를 뛰어넘고 오프라인 백화점이 속속 문을 닫고 있지만 현재의 대세는 일단 오프라인이라는 겁니다.

물론 언젠가 뒤집히겠죠.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데다 기존 오프라인의 반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쇼루밍에 대비해 옴니채널이라는 강점을 품어내는 기존 유통계의 강자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신세계는 하남 스타필드라는 거대한 오프라인 창고를 품어내어 이른바 옴니채널, 나아가 역쇼루밍을 끌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오프라인 사업자가 ICT 경쟁력을 듬뿍 담아내어 전자상거래 업체에 반격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월마트의 제트닷컴 인수도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요. 누가 이길까요? 전자상거래에서 출발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는 온라인? 아니면 업에 대한 충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쇼루밍 카드를 던진 오프라인?

답은 모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지점은 아마존의 방식이에요. 아마존은 역쇼루밍의 반격에 '오프라인의 온라인 변신'을 추구하거든요. 아마존 서점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바다 건너 미국에 있기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마존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책 진열도 표지가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죠?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마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인 내가 영화 <써로게이트>처럼 온라인처럼 꾸며진 오프라인에 진입하는 방식입니다. 온라인 사용자 경험을 그대로 오프라인에서 이어가는 장면은 결국 온라인 중심의 패러다임을 지키려는 아마존의 야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역쇼루밍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중심 축이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따지고 보면 아마존의 대시, 알렉사도 마찬가지에요. 모두 온라인에서 하던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끌고 온 모델입니다. 인공지능 생태계, 나아가 스마트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마존은 오프라인 상점을 중심으로 식료품까지 디테일하게 건들고 있습니다.

▲ 출처=아마존

최근 아마존은 아마존고 2000개 신규매장 계획에 대해 부정했지만 사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실험 중, 즉 간보는 중이니까요. 하지만 만약 상용화가 된다면? 알렉사나 대시 등과 연결되어 그 자체로 대단위 플랫폼 전략이 탄생한다면? 통신사 중심 스마트홈 생태계를 이제 '슬슬' 구축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맞서기는 커녕 쓸모있는 일꾼이나 될 수 있을까요? 또 마지막 질문. 누가 이길까? 이건 흥미진진하게 팝콘먹으며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