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충정로역 출구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걸어 나오면 중림동 거리가 나온다. 현재는 중구에 편입한 중림동은 이전에는 뜨내기손님의 객고를 풀어놓은 여관들이 즐비한 서울 역전 동네였고 더 이전에는 사대문 밖으로 순교자의 시체가 버려져 시구문(屍軀門)으로도 불린 서소문 바깥이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좁은 이차선로를 중간에 두고 소나무 가로수가 심어진 양쪽 길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중림로’ 또는 ‘중림동 로데오길’이라 불리는 그 길을 곧장 질러 가면 서울역 고가도로가 한창 공사 중이다. 가는 길에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있고 오래된 식당과 새로 간판을 단 가게들이 마구 섞여 있다.

약현성당을 가로질러서 나가면 1970년에 준공한 성요셉 아파트가 나온다. 야트막한 언덕에 한개 동으로 지어진 아파트에는 총 68세대가 살고 있다. 방 1개와 욕실 1개로 구성된 전용 47.27㎡의 매물은 1억5000만~1억8000만원에 거래된다. 대부분 주민이 이곳에서 수십년간 살아왔다.

한국경제신문 사옥 등 대형 빌딩들과 주상복합 아파트를 코앞에 둔 곳에 흑백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낡은 아파트와 상가, 그리고 난전에 생선을 벌여놓은 어(魚)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140여개의 상점이 밀집한 중림동 어시장은 조선시대 때 생긴 국내 최초의 어시장”이라며 “이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화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서울역 고가도로 보행공원을 야심차게 추진 중인 서울시는 서울역 북부역세권과 중림동 재개발(도시재생)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중림동을 서계동, 만리동, 회현동 등 서울역 일대의 낙후지역 가운데 최우선 재개발 지역으로 보고 있다. 고가도로 보행공원에 맞닿은 중림동을 전면 개발해야 관광객들의 유입이 더 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안을 내놓고 1970년 지은 서울역고가를 보행공원으로 바꿔 17개의 보행통로를 조성하고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이윤희기자

서울시는 서울역과 남대문, 약현성당, 손기정 체육공원, 100년 된 개미슈퍼 등의 역사적인 건물들은 역사 관광지로 조성하고 중림동 어시장을 현대화하면서 고급 카페거리 등으로 중림동을 개발할 방안을 갖고 추진 중이다. 중림로의 인도를 더 확대해 보행친화거리로 꾸미기로 했다. 서울시는 내년 4월 서울역 고가도로 보행공원 완공과 함께 중림동의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6층짜리 성요셉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상가들에 젊은 창업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근의 S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매물이 없는데도 문의는 계속 많다. 홍대나 경리단길에서 장사를 하던 젊은이들이 이주하려는 문의가 대다수다. 임대료가 싸고 고가도로 완공 시에 유입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상가에 위치한 ‘글래드 미용실’ 임은총 대표도 6개월 전에 이곳에 문을 열었다. 임 대표는 “동네의 빈티지한 느낌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이주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같은 상가에 위치한 카페 ‘커피방앗간’의 주재현 대표도 비슷한 이유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서울 시내에서 임대료가 가장 싼 동네였다. 2년 동안 비어 있던 점포라 권리금도 없었다”고 전했다. 성요셉 아파트 상가의 경우 점포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 상이하지만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월세 30만~80만원 수준이다.

젊은 상인들은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글래드 미용실은 65세 이상의 지역 노인들에게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펌을 시술해 주고 성요셉 아파트 상가의 다른 입주업체인 소프트웨어 개발사 ‘허밍비’는 연장자들의 연륜과 재능을 공유한다는 취재의 시니어 재능시장 ‘달달거래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주재현 커피방앗간 대표는 “아직 상인회는 없지만 도시재생센터를 통해 설명회 등에 참석하고 있다”면서 “서울시 관계자와 전문가, 다른 상인들과 함께 도시 재생 방향에 대해 고심 중”이라면서 “관(官)이 주도하는 개발보다 느리더라도 주민과 상인들이 주축이 되는 마을을 꿈꾼다”고 말했다.

중림동 R공인중개업체 대표는 “바비큐 하우스인 ‘풀그라운드’나 고깃집 ‘도마’ 등은 홍대에서 온 가게들이다. 상권은 충정로역에서 서울역 고가도로까지 가로지르는 중림로가 중심인데, 이미 권리금이 20평형 점포의 권리금이 4000만원에서 높게는 1억원까지 형성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충정로역에서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일부 지역은 시행사가 주상복합 건물을 지을 목적으로 사들이고 있어 유의해야 하며, ‘약현성당’ 성도들을 위해 계획한 성요셉 아파트는 민간에 팔렸지만 현재도 법적으로는 종교용지로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어렵다는 것도 유의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