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독재> 윌리엄 이스털리 지음, 김홍식 옮김, 열린책들 펴냄

인문사회 분야 학자는 복잡한 인간 세상사를 나름의 틀로 정리하여 어떤 ‘원리’를 찾아내는 것을 업(業)의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곁에서 지켜보니, 강단에 선 멋진 외양과 달리 ‘법칙’이나 ‘원리’ ‘규칙’은커녕 개별사안에 대한 번듯한 논문조차 내기 힘들다. 고생 끝에 일반화할 만한 이론을 내놓더라도 학문시장에서 무수한 공격을 받고 스러져 가기가 일쑤다. 과욕을 부려 범세계적 현상에 손을 대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 책에도 적잖은 무리가 보인다. 국가 경제발전 분야의 저명학자인 저자의 글 속에는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늘리거나 잘라 죽였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 류의 아전인수가 여럿 드러난다.

저자는 중국 싱가포르 한국의 경제성장이 덩샤오핑 리콴유 박정희 덕분은 아니며, 오히려 그들이 개인의 자유를 억제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장기간으로 살펴보면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 국가의 성장실적이 더 뛰어나다고 역설한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도 독재시절보다는 민주화되고 있는 요즘 경제성장이 더 잘 이뤄지고 있고, 최근에 일어난 저성장의 대부분이 북한 김일성과 세습 후계자들, 리비아의 카다피 등 독재자들의 집권기에 일어났다는 점을 내세운다. 독재체제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근거로써 현대자동차의 정주영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물론 덩샤오핑 리콴유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체제가 ‘세계화 이전’의 국가 성장을 견인한 객관적 사실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저자는 이들 국가가 독재체제 이후 더 질적 성장을 보이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그것도 과거 독재자들이 효율적으로 성장기반을 구축해놓았기에 가능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 과거 독재자들의 전폭적인 정책적‧물적 지원 없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재체제와 경제성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할 기회를 준다. 저자는 발전은 개인의 권리가 자유롭게 행사될 때 일어나는데, 현실에서 수많은 국가의 개인들이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면서 독재자에게 자문을 해주는 전문가들을 겨냥한다. 게이츠 재단과 세계은행 등의 전문가 집단이 독재 정부에 자문을 하고 부족한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독재 권력의 횡포에 동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두 가지 발전방식을 설명한다. ‘자유로운 발전’은 정부와 전문가 대신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함으로써 발전을 성취해 나가는 방식이다. 반면 독재 권력과 전문가들은 ‘권위주의적 발전’을 선호한다. 정부가 중앙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지명하고, 이 전문가들이 대표자가 되어 무엇이 문제이고 시행해야 할 해결책은 무엇인지 정부에 알려줌으로써 발전을 성취해 나가는 메커니즘이다.

미국 영국 등 서양의 부국에서는 자유로운 발전이 득세했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던 탓에 권위주의적 접근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 밖의 세계에서는 권위주의적 노선이 발전의 원리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이해 때문이었다. 20세기 중반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식민지적 특권을 누리고 있던 영국과 미국의 정부와 전문가들은 피지배 국가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발전을 내세웠다. 자신들이 보유한 앞선 기술력으로 사회를 번영시켜 주겠다며 피지배 지역에 대한 정치적 강압을 물질적 발전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피지배 국가에서 권력을 모으던 독재자에게도 아주 솔깃한 것이었다.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데 아주 유용한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개인의 자유가 점점 확대될수록 세계 빈자들의 안녕과 복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거라고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세계도 그 변화만큼 발전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독재자와 그들을 돕는 전문가의 발전 횡포가 계속되고 있다며 우려한다.

저자는 발전을 위해 빈국에 대한 물적 원조가 아니라, 가난한 개인들의 인권과 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올바른 국가적 행동은 무엇인지 묻지 말고, 어떠한 정치·경제적 권리 체계를 갖춰야 다수의 개인들이 그들 자신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인지를 자문하라고 말한다. 일독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