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키 에어조던 1 : 브레드 밴드 (Air Jordan 1 : Bred Banned). 출처=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

지난 9월 3일 11시, 한 켤레의 농구화가 온라인과 SNS를 뜨겁게 달궜다. 이 신발을 ‘정가에’ 구입하려면 공식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 응모를 한 뒤 당첨 여부를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물량이 얼마나 풀리는지도 비공개인 한정판으로 판매됐던 이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수만명의 고객들이 구매 신청을 했다. 구매에 성공한 이들은 정가로 120달러(약 14만 원)인 이 신발을 최소 70만원에서 100만원이 넘어가는 금액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신발 마니아들 사이에서 ‘진리’로 불리는 이 신발이 바로 나이키 에어조던 1 : 브레드 밴드 (Air Jordan 1 : Bred Banned)다.

나이키 ‘에어조던 시리즈’는 리미티드(Limited, 한정판) 마케팅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제품마다 고유의 번호가 매겨지고 새 편의 드라마가 나오듯 시리즈가 이어진다. 거기다가 인기가 많은 제품은 꼭 한정수량으로 생산돼 마니아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이처럼 리미티드 마케팅은 고정 고객들을 계속해서 묶어 두면서 브랜드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특유의 희소성으로 ‘남과 다른 ’것을 원하는 수많은 소비자들의 소유 욕구를 자극시킨다.

한정판(Limited Edition)은 도서·출판업계에서 ‘일정량의 출판부수를 정해두고 한정적으로 간행하는 책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말이었다. 발간 이전에 구매자들로부터 예약을 받고 발행하는 출판물, 학술적 연구 등 특정 구독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발간하는 책자들을 한정판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념은 제품 마케팅으로 확대돼 이제는 식품, 의류, 액세서리, 전자기기까지 적용되며 브랜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경제학 논리에서 벗어난

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들이 ‘이윤 추구’라는 목적에 충실하다면 인기가 높아 많은 수익이 예상되는 제품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한정판 품목은 절대 원하는 이들이 모두 구매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는다.

기업의 한정판 발매는 일반 제품처럼 판매로 직접적 수익을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발매와 동시에 제품이 매진돼 사람들이 물건을 못 구해서 안달이 나면 그것으로 한정판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기업은 이를 ‘발매 O분만에 매진’이라는 등으로 소식을 증폭시킨다. 그러면 평소에 해당 제품을 모르고 있던 소비자라도 최소한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한다. 그래서 한정판은 당장의 수익과는 크게 관계가 없어도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30주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출처= 민음사 페이스북

한정판의 구분

학문이나 연구 영역을 통해 정확히 구분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한정판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간 한정’이다. 이 제품들은 특정 기간에만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이다. 이 제품들은 판매될 당시의 상황이나 특별한 이벤트에 따라 한시적으로 생산·판매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스타벅스(STARBUCKS)의 시즌 굿즈들이 있다. 스타벅스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한정판 텀블러를 출시한다. 이 제품들은 매년 다른 디자인이 적용되기 때문에 연도별로 제품을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해에 발매되는 기념주화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장소 한정’이다. 말 그대로 특정 장소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제품들을 의미한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자국의 수많은 콘텐츠 IP(지적재산권)들을 활용한 수많은 관련 상품들을 특정 장소와 연관 짓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쇼핑 레저지역인 오다이바(お台場)의 쇼핑몰 다이버시티(Diver City)의 앞에는 로봇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1979)’에 등장했던 실제 사이즈(18m) 건담 형상이 있다. 이 다이버시티에 있는 매장에서만 판매되는 건담 모형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의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 품목으로 알려져 있다.        

▲ 일본 다이버시티 앞 1:1 건담 형상과 그곳에서만 판매되는 한정판 프라모델. 출처=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세 번째는 ‘가격 한정’이다. 가격 한정은 고가(高價) 프리미엄 명품 한정과 할인 한정이 있는데 소위 명품 브랜드들이 이따금씩 초고가로 내놓는 제품들이며, 할인 한정은 기간에 맞춰 특별 할인가에 판매되는 제품들이다. 전자의 경우 명품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품격을 제시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사용돼왔다. 구찌, 샤넬, 프라다 등 럭셔리 브랜드의 핸드백이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만든 자동차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할인 한정은 마케팅 효과로써는 큰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재고 소비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양날의 검, 한정판 마케팅 

모든 것이 그렇듯 마케팅에도 왕도(王道)란 없다. 한정판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한정판 출시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도움 된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훨씬 더 크다. 한정판의 가장 큰 매력인 희소성이 떨어지면 기존의 충성도 높은 고객들도 등을 돌린다. 누가 봐도 뻔한 장삿속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한정판 출시에서 기업들은 판매물량의 희소성 가치를 어느정도로 높일 것인가, 발매의 시기는 적당한가, 소비자들이 콘셉트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은 없는가 등을 사전에 충분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를테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사치를 조장하는 고가의 한정판을 발매한다거나, 반일 감정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욱일승천기 디자인 한정판제품을 출시한다든가 하는 것은 오히려 안 만드는 것이 나은 한정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