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무실에 한국 최고의 가상현실(VR) 데모룸이 있어요. 서울 올라가면 놀러오세요.”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게임쇼 지스타 2016에서 만난 이용덕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의 말이다. 기자는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VR 산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정작 VR 체험 경험이 많진 않았다. 삼성 기어 VR이나 구글 카드보드 같은 모바일 VR만 접해봤다.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 위치한 엔비디아 코리아를 지난 5일 정말로 찾아갔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국내 최고 시설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헛된 기대였나. 일반 세미나실 뒤쪽에 자리한 작은 방이 말로만 듣던 곳이었다. 컴퓨터와 스크린, 그리고 VR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장비가 하나씩이라서 오직 1명만 체험이 가능했다.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최고의 VR 데모룸이 맞는지. 제가 속은 건가요.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김선욱 엔비디아 코리아 기술마케팅 이사가 입을 열었다. “여기 준비된 컴퓨터는 CPU(중앙처리장치)든 GPU(그래픽처리장치)든 가장 최신 사양입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면 수시로 맞춰서 세팅을 다시 하고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어느 측면으로 보나 최신의 최적화된 VR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같은 콘텐츠라고 해도 다른 데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를 거고요. 가끔은 상용화되지 않은 콘텐츠를 시연하기도 합니다.”

설명을 들고 생각이 달라졌다. 이용덕 지사장은 데모룸 겉모습이 번지르르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최고의 VR 경험을 제공한다는 뜻이었다. 이 작은 방에 놓인 장비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일단 가장 뛰어난 VR 경험을 제공한다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 HTC 바이브가 보였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HMD 양대산맥인 제품이다. 플레이스테이션 VR보다 하드웨어 성능이 뛰어나다. HTC는 올해 지스타 현장에서 바이브 한국 출시 소식을 전했다. 가격은 125만원에 달한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김선욱 이사는 컴퓨터 본체를 가리켰다. 투명한 본체 속엔 ‘GTX 1080’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현존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카드 지포스 GTX 1080이다. VR 경험에 최적화된 파스칼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이 컴퓨터에는 GTX 1080이 2장이나 꽂혀 있었다. 하나는 물리효과 연산을 담당하고 하나는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주면서 최상의 VR 경험을 구현해낸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공간이 엔비디아가 내부적으로 VR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데는 아니다. 외부에서 VR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했다. 앞서 언급한 세미나실은 외부에 대여해주기도 하는데 VR 데모룸도 함께 이용이 가능하다. “지스타가 열리기 한 달 전에는 대학생들이 여기에 와서 VR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고 데모룸에서 직접 체험도 해보고 갔습니다.” 항상 오픈된 공간은 아니지만 사전에 엔비디아 코리아와 약속을 잡으면 얼마든지 이용이 가능하다고 김선욱 이사는 말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몸이 알아서 날아드는 그릇을 피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이브를 착용했다. 양손에는 전용 컨트롤러를 쥐었다. 가장 먼저 체험한 콘텐츠는 ‘VR 펀하우스’다. 지스타 2016 엔비디아 부스에서 체험 가능한 콘텐츠였다. 당시 인파가 몰려 체험을 포기했다. 엔비디아의 라이트스피드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VR 게임이다. 모두 10가지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차세대 물리 효과가 총망라된 게임들이다. 이 오픈소스 게임은 VR 콘텐츠 개발자에게 어떤 효과가 구현 가능한지 알려주면서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작됐다.

갑자기 서커스장 같은 곳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단은 양손을 들어올려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봤다. 컨트롤러에 달린 방아쇠 같은 버튼을 누르면 가상의 손이 쥐어지는 모습을 확인 가능했다. 앞을 보니 테이블에 농구공과 야구공이 보였다. 전방에는 다양한 그릇이 진열된 모습이었다. 야구공을 들어 실제로 팔을 휘둘러 냅다 던졌다. 공에 맞은 그릇은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진짜 같았다.

▲ 출처=엔비디아

이후 여러 미니 게임이 이어졌다. 농구공을 던져 골대에 넣었다. 뽕망치 게임을 즐겼다. 물감이 든 물총을 사방에 난사했다. 기자에게로 날아오는 그릇을 총으로 쏴서 깨버리는 게임도 했다. 깨지지 않은 그릇이 날아들 때는 몸을 움직여 그릇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기자의 뇌가 이를 실제 상황으로 여겼다는 증거다.

다음으로는 ‘로우데이터’라는 게임을 체험했다. 인공지능 로봇들과 전투를 벌이는 박진감 넘치는 게임이다. 사방에서 공격하는 로봇을 권총으로 싸죽이면 된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기자는 진땀을 흘리며 몸을 웅크리고 구조물에 몸을 숨기며 생존을 위한 필사의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총소리 사이로 동행한 사진기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혼자 너무 진지해서 그 모습이 웃겼다고 한다.

HMD를 벗어 사진기자한테 넘겨줬다. 그는 가볍게 ‘VR 펀하우스’를 즐긴 뒤 가상의 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틸트브러쉬’를 체험했다. 그 다음은 바닷속에서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고래를 볼 수 있는 콘텐츠였다. 갑자기 거대 고래가 나타나자 그는 탄성을 내질렀다. 두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고래를 만져보려고 했다. 손에 컨트롤러를 쥐고 있지 않았는데도. 옆에 있던 김선욱 이사는 VR 교육 콘텐츠의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최상의 VR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들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두 기자는 어르신들이 가끔 하는 말을 해버렸다.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그렇다면 왜 엔비디아는 VR 체험공간을 운영할까. VR 산업이 글로벌 비주얼 컴퓨팅 강자인 엔비디아에겐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VR 콘텐츠는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요구한다. 특히 실제를 방불케 하는 가상의 모습을 구현해야 하는 탓에 그래픽이 중요하다. ‘그래픽’ 하면 엔비디아 아닌가.

파스칼 아키텍처 기반 GPU나 VR 펀하우스 같은 오픈소스 콘텐츠 말고도 엔비디아는 여러 측면에서 VR 대중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10여년에 걸쳐 3차원 물리 효과를 구현하는 기술인 피직스(PhysX)를 개발했다. VR 환경에서 그래픽 효과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연산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 탑재된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VR 웍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엔비디아의 역할은 그래픽카드가 어느 정도 모델 이상이면 최대한의 VR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CPU와는 다르게 GPU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1~2년이 지나면 같은 가격대에 성능은 2~3배 뛰어난 GPU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엔비디아는 강력한 하드웨어를 통해 VR 대중화를 지원할 수 있겠죠.” 김선욱 이사가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VR 대중화 시대를 얘기했다. “저는 VR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체험을 해봤어요. 올해 초에는 사람들이 VR 자체를 경험해보는 수준이었습니다. 모바일 VR은 어지럽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올해 말에는 가능성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조금 더 완성된 형태의 VR 콘텐츠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어요. 내년에는 휠씬 완성도 있는 콘텐츠가 많이 나올 겁니다. 내후년에는 VR 대중화 시대에 더욱 가까워질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