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 쪽 사드 배치에서 시작됐다고들 이야기하는 한‧중 관계 경색이 국방, 외교, 경제, 문화 전반에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문화에서 한류는 혐한을 넘어 금한으로 치닫고 있다. 사드 배치란 나비의 날갯짓이 결국 우리나라의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한 달 남짓 남은 2016년 내에 새로운 배터리 모범 규준을 리뷰한 후 2017년부터 새로운 배터리 모범 규준으로 시행할 계획을 잡고 있다.

비록 정해진 게 아직 없다 하더라도 LG화학, 삼성SDI, 그리고 SK이노베이션은 갑작스런(?) 중국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산업부 차관급 인사가 중국 정부와 접촉하여 산업통상과 외교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다.

소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세계 1위 국가인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들을 당혹스럽게 한 규준은 두 가지였다. 다음 차수 배터리 모범 규준 때는 중국 내 생산 설비를 연 8GWh를 상회해야 한다는 것(기존은 0.2GWh)과 2년 안에 중대한 배터리 안전사고가 없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터리 안전사고 부분은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의 생산 설비를 다 합친다 하더라도 맞추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12월 한 달 동안의 의견 재수렴 때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하나, 우리나라 국내 정세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사드부터 시작해 꼬여 있는 게 너무 많아 이번 배터리 모범 규준은 소소한 수준이라 볼 수도 있다. 사실, 이 이슈에 대해 민감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며 국외 언론 보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만 하더라도 이 이슈에 크게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올해가 리튬이온 이차전지 대형 제조사의 손 바뀜 이야기가 유독 많은 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는 무라타로 넘어가기로 되어 있고, LG화학과 중대형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 분야에서 수위 경쟁을 하는 배터리 제조사인 AESC의 닛산 51% 지분도 새 주인을 찾는다는 언론 보도가 일본 내에 보도된 적 있으나, 현재 부정되고 수면 아래 침잠한 상황이다. 이 파도는 현해탄을 건너 우리나라 내에서도 주요 리튬이온 이차전지 제조사 중 하나가 새 주인을 찾는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 판세 재편은 사실상 예고되어 있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일본, 한국의 주요 업체의 피인수설은 아직도 답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흉흉한 상황이고 각 제조사 자체로 구조조정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던 차에 중국에서 핵폭탄급 사건이 터져 외부 환경마저 극악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 3사 중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내놓은 새 모범규준을 당장 맞출 수 있는 곳은 없다. 극악한 외부 환경으로 인한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터리 전기차의 시대가 전 세계를 뒤덮을 듯이 설레발을 치는 상황임에도, 하필이면 중국 정책에 우리나라 배터리 전기차용 리튬이온 이차전지 제조사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국이 배터리 전기차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IEA의 Global EV Outlook 2016과 기타 자료를 보더라도 2015년에 새로 등록된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과 미국이다. 중국이 연간 신규 등록 대수 기준으로 약 20만대이고, 미국은 10만대를 조금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더해, 중국 배터리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가장 가파를 것이라는 데엔 복수의 시장 예측 기관들이 동조하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 모범 규준은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파나소닉이 진작에 미국의 테슬라 모터스와 원통형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생산할 기가팩토리를 미국에 함께 지을 정도로 차분히 준비하고 있고, 중국 시장 쪽은 아직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AESC의 닛산 지분 51%는 루머가 돌던 때에 유력한 인수 후보로 중국 쪽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 나올 정도였다. 닛산은 LG화학 등 다른 공급원에게서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AESC 쪽을 포기하고자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ESC의 앞날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데, 우리나라의 배터리 전기차용 리튬이온 이차전지 사업도 어떨지 걱정스럽다.

모바일 IT 산업 때도 그랬지만, ‘기가 커스토머’를 잡지 못하는 배터리 제조사는 종국에는 소멸한다. 그래서, 배터리 전기차 분야의 기가 커스토머를 잡기 위한 경쟁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번 중국의 결정이 이런 불공정 경쟁의 일환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국가의 개입과 몇몇 제조사의 덤핑 수준 공급가 이슈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지만, 이번 사건으로 국가별 기가 커스토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지켜보도록 하자. 이 사건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쓰나미가 될지 예의주시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