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않은 기자생활을 하던 중 한 때 유아교육분야를 취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유아학교로의 정체성을 밟아가는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의 경우 상당히 복잡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모두 같은 어린이집으로 보이지만 사실 어린이집은 국공립, 민간, 가정, 직장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고 각각의 가이드라인이 모두 다릅니다. 물론 대부분 민간 어린이집이 절대 다수지만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민간 어린이집을 필두로 운영되는 어린이집 '연합'이 보육교사 처우개선 및 보육비 현실화 등을 목표로 정부와 날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제 눈에 이색적으로 보인 이유는, 이들 어린이집 연합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할 때 다른 업계와는 달리 유난히 '공익적 패러다임'을 강하게 제시하는 점이었습니다.

단순히 '어려우니 민생을 생각해 지원해라'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무너지면 아이들은 어쩌란 말이냐'라는 일갈이었어요. 여기에는 '정부가 반드시 해야하는 보육의 의무를 우리가 맡고 있는데 왜 우리를 버리는가'라는 의식이 깔려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어린이집은 분명 수익사업이고,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심 '정부에 너무 바라는 것이 많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사석에서 한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보육사업은 원래 국민교육의 일종이고, 이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하는 사업이지만 대한민국은 오래전 이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는 방향성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이어 그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당연히 규제도 많은 것 아닌가. 게다가 어린이집 연합의 주장에 가끔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결국 현재의 어린이집이 일종부분 공공 인프라의 민간 위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정리하자면, 국가가 해야할 일을 비용 및 다양한 이유로 민간에 위탁했기 때문에 정부는 지금의 충돌도 상생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카풀 서비스 불법 논란?
서두가 길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만, 결국 사회의 인프라와 인식이 발전할수록 공공의 영역도 덩달아 확장되거나 출렁인다는 점.

만약 전국의 어린이집을 정부가 100% 관리한다면 엄마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결국 공공의 인프라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 민간이 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일종의 파열음이 튈 수 있다는 겁니다.

2일 미묘한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카풀과 풀러스 등 교통 020 카풀 서비스에 대한 불법 논란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는 보도였습니다. 이미 국토부와 해당 서비스의 주 무대인 성남시에서 '위법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참고로 풀러스와 럭시는 성남시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종의 카풀을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입니다. 카풀 기반의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로 여겨지며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카풀 파트너를 매칭합니다.

이들 카풀 O2O 서비스는 아직 의미있는 수익 창출에는 다가가지 못했으나 최근 그 영역을 조금씩 넓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는 불법 논란이라니. 확인차 업계에 확인했습니다. 일단 "실체는 없다"는 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풀러스 관계자도 "아직 국토부에서 불법에 대한 통보 등을 받아보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다양한 논의를 하던 중 카풀 020 서비스가 불법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 것으로 알고있다"고 하더군요. 정리하자면, 불법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관계 부처에서 불법 여부를 타진하는 것은 일정정도 사실로 보입니다.

이러한 논란이 말 그대로 '의견' 중 하나라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만약 특정 계기를 바탕으로 논란이 시작되면 다소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고요? 이 문제는 단순히 카풀 O2O 서비스의 흥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좁게는 새로운 교통 혁명의 파괴력과, 넓게는 신기술에 대한 포괄적-사회적 합의의 범위를 따져야하기 때문입니다.

현 상황에서 카풀 O2O 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택시업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카풀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택시기사들의 불만은 커지니까요. 이건 심각한 난제입니다. 온디맨드 서비스인 우버가 택시업계의 반발에 직면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국내에서 전개하지 못했던 사례가 극적인 이유입니다.

지금은 서울을 쌩쌩 달리고 있는 콜버스도 한 때 이들 택시업계의 반발에 부딪쳐 좌초위기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택시는 택시업계를 '최고 존엄'의 반열에 올린 후에야 서비스를 안착시킬 수 있기도 했고요.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택시기사들은 정치적 집단의 의미도 가진데다 대부분 택시회사를 중심으로 일종의 촘촘한 이익집단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카풀 O2O 서비스 업체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에 따르면 ‘사업용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를 유상(자동차 운행에 필요한 경비를 포함한다)으로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하여서는 아니 되며, 누구든지 이를 알선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는 예외 규정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 이유로 지난 7월 13일 김지만 대표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당연히 풀러스는 합법”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법 조항의 예외조항인 '출퇴근 때'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모호한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출퇴근 시간을 국가에서 정하는 것도 아닌데, 만약 이 부분에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 대목을 집중적으로 질문했습니다.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는데, 가이드 라인이 모호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당시 김지만 대표는 “출퇴근 시간에만 실시되고 비용도 낮아서 기존 운수업자들이 반발할 이유는 없어요”라며, "어차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운수업자들의 영역과 겹치지 않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아가 "법적인 부분을 충분히 알아봤다"는 말로 제 질문을 일축했습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김지만 대표는 당시 제가 던진 질문의 요지에 충실한 답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던것 같습니다. 저는 "합법인 것은 알겠는데, 문제가 될 소지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를 거칠게 말하자면 "말을 할 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법이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데 너무 안일한 인식아닌가?"라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김지만 대표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의 정당성을 (순진하게) 믿으며 "법적으로 다 알아봤으며, 상생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장담한 셈입니다.

▲ 출처=풀러스

교통 혁명? 횃불이냐 고개숙인 촛농이냐
O2O는 방법론에 불과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아직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향하는, 그 중간에서 플랫폼 사업을 하며 '저렴하거나 편리한' 사용자 경험 정도만 제공하는 선에 그쳐 있습니다. 위험하다는 뜻이에요.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품을 팔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향하거나, 혹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역습하는 방향성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기술 기반 생태계'에 되치기를 당할 수 있는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꿉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O2O 하나만 믿고 세상을 바꿀수는 없습니다.

다만 교통 O2O는 다른 O2O에 비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카카오가 스마트 모빌리티와 생활 020를 나눈 배경에도 녹아있지만, 기본적으로 교통 O2O는 '재화의 이동이 곧 수익'이라는 동서고금의 기본적 비즈니스 모델을 충실히 따릅니다. 나아가 빅데이터의 수집에 유리하며 그 자체로 캐시카우가 될 여지도 커요. 마케팅 및 브랜드 가치 제고에 있어 교통 O2O가 가지는 강점은 대단합니다. 압도적이라는 표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위치기반서비스의 가능성을 살려 다른 영역보다 성공의 가능성이 다소 높은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이 지점에서 교통 O2O는 다른 O2O 시장의 잠재력을 능가할 수 있는 유라한 고지도 선점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스마트폰의 유력한 후보군으로 자율주행차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장사업을 위해 하만을 인수한 삼성전자가 추후 자율주행차 시대의 글로벌 하청업체를 자임해도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시대에요. 운영체제부터 하드웨어 수직 계열화의 마법 등 다양한 카드를 적절히 활용해 도래하는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도 많습니다.

특히 교통 O2O의 방법론에서 카셰어링이 일종의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마케팅적 고민에서 비롯된 공유경제 패러다임은 버리고 순수하게 카셰어링 그 자체에만 집중하면, 결국 자동차 소유의 시대는 끝나고 자율주행의 탄생으로 개인이 상황에 맞는 '프라이빗 교통 플랫폼'을 가지는 것이 모두의 꿈입니다.

▲ 출처=픽사베이

우버가 자율주행차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명심해야 합니다. 자율주행차는 사용자 경험의 확장적 측면에서 미래 플랫폼 시장의 메시아로 여겨지고 있으며, 자동차 쉐어링이 가장 극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쏘카 창업자에서 풀러스까지 창업한 이지만 연쇄창업마도 이 부분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92%의 차량이 주차장에 있고, 나홀로 차량이 86%에 달하는 상황에서 카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자는 것이 풀러스의 목표”라면서도 자율주행차의 비전까지 언급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고고한 뜻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현실의 문제는 현실에서 풀어야 합니다. 현재 우버는 운송사업자와 IT 플랫폼 기업의 사이에서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체성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질서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우버를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네, 맞습니다. 현실의 규제를 꼭 풀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카풀 O2O 서비스가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한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미묘한 정치의 시대잖아요? 올해 초 중고차 거래매매 애플리케이션(앱)인 헤이딜러 논란이 스칩니다. 원래 헤이딜러는 현행법으로 합법이었으나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으로 한때 영업을 중지했던 역사가 있거든요. 당시 개정안은 온라인 자동차 경매 업체도 오프라인 경매장(3300㎡ 이상 주차장, 200㎡ 이상 경매실)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였고, 헤이딜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헤이딜러는 폐업했고, 다시 부활하기까지 상당 시간을 공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교통 O2O 혁명의 불꽃은 카셰어링과 자율주행차 등의 비전이 맞아 떨어지며 사회의 합의를 거쳐야 완성됩니다. 여기에서 '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라고 지적하는 것도 사실 온당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현실의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잡을 것은 또 잡아야 합니다. 원론적이지만 융합이 필요합니다. 다른 말로는 '타협'이라고 하지요.

나아가 공공 인프라가 기술의 발전과 만나 중요한 진화의 문턱에 섰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키우려는 '담대한 전략'도 제안합니다. 공공의 인프라인 보육의 영역이 민간의 영역에서 발전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발전'을 요구한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