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매년 수없이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더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고 끊임없이 재해석되면서 오히려 원작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물론 이는 콘텐츠를 가공하는 방법들이 발전함에 따른 결과일수도 있지만 그 근원에는 당대에 원작이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었던 아이디어 즉, 탄탄한 세계관이 받치고 있다. 현실이 아닌 현실로 잘 짜여진 콘텐츠의 세계관은 어떤 방법으로 해석돼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필수요소다. 이번에는 지난 시간의 ‘마블 유니버스’와 ‘서유기’에 이어 ‘DC 유니버스’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출처= 네이버 영화

DC “마블 이전에 우리가 있었다” 

미국에는 슈퍼히어로들을 소재로 한 콘텐츠 브랜드의 양대 산맥이 있다. 바로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MARVEL)과 ‘저스티스 리그’로 대표되는 DC다. 각 브랜드를 응원하는 팬들의 신경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열하다. 마블의 팬덤들은 DC에게 “히어로들이 왜 하나같이 어둡냐”고 지적하면, DC의 팬덤들은 마블에게 “아무리 히어로물이지만 너무 유치한 것 아니냐”는 등으로 반박하는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로 소개된 작품들이 많은 마블의 대중적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배트맨’, ‘슈퍼맨’이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보유한 DC 마니아들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DC 코믹스는 미국의 출판사다. 주간지 타임(TIME)을 출간하는 ‘타임워너’가 소유한 워너 브라더스의 자회사 DC 엔터테인먼트의 출판사업 부문으로 보면 된다.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스(National Allied Publications)라는 이름으로 1934년 처음 설립돼 1939년 설립된 마블코믹스보다 그 시작이 5년 정도 빠르다. 현재의 브랜드 네임인 DC는 이 시기에 출간된 만화 단행본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에서 유래됐다.

개별 히어로들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은 마블보다 DC가 빨랐다. 1960년 DC의 작가 가드너 폭스(Gardner Fox)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슈퍼히어로들을 한데 모아 팀으로 활동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이 팀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범죄도시 '고담 시'를 메인 배경으로 설정하고 고담 시로 쳐들어 온 강력한 악당들에 대항해 다수의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맞선다는 발상이다. 이 때의 아이디어는 3년 뒤 마블이 ‘어벤져스’를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 출처= 네이버 영화

개별 히어로 영화 콘텐츠의 성공도 마블보다는 DC가 빨랐다. ‘환상 영화’의 대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 배트맨 리턴즈(1992)는 흥행에 성공함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히어로 영화의 한계를 넘어선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까지 평가받기도 했다. 또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3연작(비긴즈-다크나이트-다크나이트 라이즈)’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트맨의 고뇌에 대한 철학적 접근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2008년 ‘아이언맨1’을 시작으로 통합 세계관의 영화화를 먼저 추진한 마블에게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DC 팬들에게는 큰 아쉬움을 선사했다. DC는 뒤늦게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으로 DC 유니버스를 표방한 영화들을 공개했지만, 오히려 원작의 가치를 훼손한 작품성 논란에 휘말리는 등으로 수난을 겪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콘텐츠를 가공하는 방법 측면에서 마블에 뒤처지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지만, 히어로들을 한 곳에 모아보자는 발상으로 시작한 통합 세계관의 구성은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는 DC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 “현실과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

지난 8월 세계 도서판매량 분석업체 ‘닐슨북스캔’은 작가별로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 판매액과 TV와 영화 개봉에 따른 수입 순위를 발표했다. 이 순위에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1900만 달러(한화 약 223억 원)로 3위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세익스피어, 애거사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 등과 더불어 그녀를 영국이 낳은 대문호(大文豪)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줄거리는 마법사의 피를 이어받은 소년 해리 포터가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마법사의 세계에서 성장해 나가며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악당 ‘볼드모트’를 물리치는 과정을 담은 성장 스토리다.

▲ 10년동안 총 8편의 영화로 제작된 해리포터 시리즈. 출처= 네이버 영화

해리포터가 단순한 판타지 서사물을 지향했다면, 아마 전 세계 많은 어린이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해리 포터라는 캐릭터가 아닌,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뒤섞어 개연성을 부여한 마법사 세계관이다. 해리 포터 초반의 메인 배경은 영국 런던이다. 주인공들은 특수한 통로를 통해 마법세계와 인간들의 세계를 오고 간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마법세계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적 판타지’의 느낌을 전달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마법학교 ‘호그와트’는 엄격한 규정으로 통제되는 영국 사립학교의 실제 모습이 녹아있으며, 그 외로 등장하는 마법, 빗자루, 요정, 난장이, 드래곤 등은 유럽의 구전 문학이나 전설들에서 차용한 콘셉트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리포터 세계관을 가장 매력적으로 구현한 콘텐츠는 영화였다. 환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발상은 영상 기술을 만나 ‘호그와트’를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수많은 어린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2001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시작해 2011년 제8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로 시리즈가 완결될 때까지 해리포터가 영화로만 벌어들인 수익은  77억2715만 달러(한화 약 9조523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최근 해리포터 세계관의 다른 관점(스핀오프)을 영화화한 ‘신비한 동물사전’이 개봉돼 전 세게적으로 흥행하면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해리 포터 테마파크 '위저딩 월드 오브 해리 포터'. 출처= 유니버결 스튜디오 재팬 홈페이지

해리 포터 세계관은 영화뿐만 아니라 테마파크의 소재로도 사용됐다. 미국과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해리포터 테마파크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꼭 한번쯤 가고 싶어 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뿐만 아니라 비디오게임, 장난감 등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OSMU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아동용 작품은 잘 안팔려요”라며 출판사들로부터 수없이 퇴짜를 맞은 한 여성이 만든 마법 세계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의 원소스가 되면서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부가가치 산업, 마케팅과 홍보 전략의 교과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