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뷰]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사물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가상 인터뷰 리뷰 코너입니다.

후지필름은 누가 뭐라 해도 80년 역사를 지닌 필름 명가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필름 카메라는 장롱 속 골동품이 돼버렸다. 후지필름은 코닥처럼 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 회사는 여전히 필름을 생산한다. 한편으로는 폴라로이드가 퇴장한 즉석 카메라 시장에서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인스탁스라는 잘 알려진 브랜드의 주인이 후지필름이다.

‘누가 요즘에도 그런 카메라 쓰니?’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는 질문이다. 특히 젊은층이 좋아한다. 인스탁스 시리즈는 한국에서만 매년 수십만대가 팔린다. 아직 수요가 분명한 셈이다.

인스탁스라는 이름이 즉석 카메라에만 붙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인스탁스라고 소개하는 의문의 기기가 이코노믹리뷰를 찾아왔다. 몸집은 그리 커보이지 않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 조재성 기자(조): 누구세요?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 보이진 않네요. 몸에 누를 버튼도 몇 개 없고. 정체를 밝히시죠.

인스탁스 쉐어 SP-2(탁): 쉐어2라고 불러주게나. 폴라로이드 카메라 아는가? 요즘 친구들은 인스탁스라고 얘기해야 더 잘 알겠지. 즉석 카메라 말일세. 감성 사진 왕창 뽑아주는 그 기계 말이야. 산이든 들이든 놀러갈 때 무조건 챙겨야 하는 물건이지. 연인들 집에 1대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난 인스탁스 카메라 친척쯤 된다네. 즉석 카메라 사진 그 느낌 그대로 어디서든 사진을 뽑아주지. 필름도 즉석 카메라와 같은 걸 사용한다네. 어떤 사진을 뽑아주는 거냐고? 당신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랑 날 연결해서 거기 있는 사진을 뽑아주는 거야. 사진만 놓고 보면 진짜 즉석 카메라로 찍은 거나 다름이 없지. 세상 많이 좋아지지 않았는가? 자, 보게나!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 조: 깜짝. 혀 내미는 줄 알았어요. 즉석 카메라랑 느낌이 비슷하긴 하네요. 아날로그 감성이 마음에 듭니다. 저도 하나 뽑아주시면 안 되나요? 어떻게 해야 하죠? 당신 옆통수에 그 버튼 꾹 누르면 됩니까?

탁: 그만 두라고! 나 꺼지는 꼴 보고 싶나? 위에 LED 표시등 보이지? 초록 불빛 말이야. 내가 켜진 상태라는 걸 알려주지. 사진을 뽑으려는 일단 2가지를 준비해야 해. 하나는 필름을 넣는 일이야. 10장이 한 세트지. 또 하나는 휴대폰에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야 한다네. 아이폰이군. 앱스토어에서 ‘instax share’라고 검색해서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네. 준비 다했으면 나랑 휴대폰을 연결해봐. 뭘 두리번 거리나? 요즘 같은 무선 시대에 누가 케이블로 연결을 하니? 와이파이로 연결하면 된다고. 휴대폰에서 와이파이 목록을 띄워보게나. 거기에 내 이름이 있을 거라네. 이에 접속하면 준비는 끝나는 거지. 이제 사진을 골라서 마음껏 뽑아보게나. 앱에 여러 스티커와 필터가 있으니 예쁘게 꾸민 뒤 출력 버튼을 누르면 돼. 이 앱에서 직접 촬영해서 바로 출력하는 것도 가능하지. 사진은 대체로 밝게 출력되는 편이니 감안하시게나.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 조: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랑 이름이 비슷한 물건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능력도 다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고 같은 분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그를 사칭하고 다니시는 건 아닙니까?

탁: 인스탁스 쉐어 SP-1 얘기하는 거지? 우리 형일세. 나랑 같은 능력을 가졌어. 세상에 먼저 태어났는데 애석하게도 나보다 잘하는 게 없는 형이야. 일단 사진 출력 화소가 너무 낮았지. 사람들이 불만을 가졌어. 사진이 너무 뿌옇게 나온다고. 즉석 카메라 느낌을 내려고 흉내낸 거겠지만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어. 난 320DPI 해상도로 선명한 사진을 뽑아낼 수가 있다네. 대형 프린터랑 비교하면 밀리겠지만 필름 자체가 작으니까 품질은 만족스러울 거야. 그리고 겉모습만 봐도 내가 더 낫지 않은가? 체형도 슬림하고 말이야. 실제로 형보다 3g 더 가벼워. 출력 속도도 내가 빠르지. 형은 16초나 걸리는 일을 난 10초면 끝낸다네. 포토프린터 중에 나보다 빠른 프린터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또 형은 잘 팔지도 않는 CR2 배터리를 주식으로 삼았지. 난 일반 휴대폰처럼 내장 배터리 품고 있어서 USB로 간단한 충전이 가능하다고.

# 조: 당신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보니까 20만원이 조금 넘더군요. 당신을 나의 프린터로 들이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냥 즉석 카메라를 사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인스탁스 미니 시리즈 중에는 10만원 이하 제품도 많던데요.

탁: 무슨 소리인가. 사용해봤겠지만 즉석 카메라로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긴 쉽지가 않다네. 사진이 출력되고 상이 전부 맺히기까지 마음 졸였던 기억 있지 않은가. 사진이 너무 밝거나 어두워서 실망해본 경험도 분명 있을 테고. 난 다르지. 이미 찍은 사진을 출력해주는 식이니까 일정 수준 이상 품질을 보장한다네. 아까 얘기한 대로 앱으로 사진을 예쁘게 꾸밀 수도 있고 말이야. 사실 필름 가격이 만만치않다네. 1장에 1000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야. 그런데 즉석 카메라로 찍어서 만족스러운 결과물 얻어내지 못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인형뽑기도 아니고.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 조: 사실 휴대용 포토프린터가 시중에 당신뿐인 건 아니잖아요. 당신 형 말고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다는 거 이미 잘 알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L사 제품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소비자는 왜 굳이 당신과 함께해야 하는 거죠?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탁: 출력된 사진을 다시 한 번 보게나. 자네가 기억하는 즉석 카메라 시진의 모습 그대로 아닌가? 실제로 필름도 같은 것을 사용하니까 느낌이 제대로 살지. 이런 필름에 출력해주는 포토프린터가 또 있던가? 한번 말해보시게. 즉석 카메라 사진 특유의 감성을 그대로 살리는 프린터는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 요즘 사람들은 폰에 사진을 넣고 다니지? 자네도 마찬가지일 테고. 뽑아서 하나하나 기억을 간직해보게나. 내 능력을 발휘해 무형의 데이터에 소장가치를 더해줄 테니까. 자네가 포착한 추억의 순간은 영원에 가까워질 거야.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 조: 마음이 조금 흔들리긴 하네요. 그런데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필름 값이 1000원이 넘는다고요? 시대 착오적인 가격 아닌가요? 폰 카메라로는 아무리 많이 찍어도 비용이 들지 않잖아요.

탁: 소장가치가 있는 사진만 골라서 뽑아내면 될 것 아닌가. 흥분하지 마시게나. 자네 추억의 값어치가 1000원 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예전처럼 흰색 프레임인 필름만 있는 건 아니야. 검정색이나 하늘색 프레임은 어떤가? 달마시안 무늬 필름은? 캐릭터로 꾸며진 귀여운 녀석들도 있으니 기억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