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생의 무협지에 빗대어 보면, 트럼프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펼치는 초식(招式)은 邪派(사파)의 殺手(살수)에 가깝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수차에 걸쳐 미국 기업들의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해줄 것과 미국 공장의 해외 이전 방지를 촉구해왔다. 이를 위해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완화를 약속했다. 백인 노동자들의 몰표는 이런 공약에서 기인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 기업의 해외 공장을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위해 세제 혜택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오바마의 방식은 오로지 이익 추구에만 목숨 거는 무림의 세계에는 도통 먹히지 않는 순진한 正派(정파)식 해법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오바마의 요청에 대해 “중국이 인건비도 싸고, 숙련된 노동자도 많고, 운송비와 생산량 조절도 훨씬 유연하다”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기업 입장에서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애플의 경우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면 생산 원가가 상승해 아이폰 가격이 평균 50달러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포화로 실적이 하향세인 애플의 가격인상은 치명적인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자신이 정치가나 관료가 아닌 글로벌 기업 총수다. 무림의 고수다. 당근만으로는 약발이 통하지 않으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한 손에 채찍을 들고 나왔다. 트럼프의 수단은 두 가지다.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복귀시키면 세금 혜택과 규제완화 등 인센티브를 주되 만약 거부하면 향후 미국으로 들여올 그들 기업의 제품에도 고율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아예 퇴로를 막아놓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형국이다.

트럼프는 가장 주목받는 미국 대기업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바로 애플이다. 그는 유세에서 “애플은 생산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옮겨와야 한다. 애플은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며 압박해왔다. 애플의 해외보유 현금을 미국으로 들여올 경우 세금을 기존 35%에서 10%로 감면해주겠다는 회유책도 제시하면서 동시에 여차하면 자신부터 애플의 아이폰 대신에 삼성 갤럭시폰을 쓰겠다며 위협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정적 힐러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던 애플 CEO 팀 쿡은 노동력과 원재료 등의 이슈를 언급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아뿔싸, 대권은 트럼프에게 넘어갔다. 뒤늦게 전해진 바,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의 폭스콘과 페가트론은 지난 6월 아이폰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자칫 트럼프가 애플을 비애국적 기업으로 매도할 경우 관세장벽 이외에도 미국 소비자들의 이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대선 직후 팀 쿡도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이폰 생산 공장의 미국 이전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는 팀 쿡과의 통화 내용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가 “애플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 다른 지역으로 가는 대신에 미국에 큰 공장을 건립한다면 나를 위해 진정한 업적이 될 것임을 알지 않느냐”라고 말했더니 팀 쿡이 “이해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게 쐐기를 박으려는 심산이다. 애플은 현재 7개 해외 공장에서 아이폰을 비롯한 주력 제품을 생산한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는 멕시코로 공장 이전 방침을 밝힌 에어컨 제조업체 캐리어와 협상을 벌여 미국 내 일자리 1000여개를 그대로 두기로 합의했다. 당초 캐리어가 멕시코로 공장을 옮겼을 경우 2000명의 인력이 멕시코로 함께 이동하기로 돼 있었다. NBC, CNN 등은 연초에 캐리어 임원이 직원들을 불러놓고 멕시코 이전 계획을 통보하고, 직원들이 낙담하며 탄식하는 동영상을 반복해 틀며 트럼프의 ‘상징적 승리’라며 환영하고 있다.

트럼프는 캐리어 측에 각종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등을 제시했다고 한다. 물론 “만약 캐리어가 직원들을 해고하고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해 에어컨을 만든 뒤 그 제품을 미국에 다시 팔겠다고 하면 막대한 세금을 물릴 것”이란 경고를 미리 해둔 상태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기업 포드가 켄터키 주의 ‘링컨MKC’ 모델 조립라인을 멕시코로 이전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SNS에 공개한 바 있다.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트럼프의 리쇼어링 정책을 연일 비난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미국 제조업체들이 아시아에 아웃소싱을 하면서 아시아는 이제 압도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트럼프가 아무리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해도 미국이 아시아의 생산 시스템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막대한 자금 투자를 요구할 것이란 반론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제조업 일자리 증대책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 지대)’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또 트럼프의 회유나 협박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서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팀 쿡이 직원들에게 메모를 날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50년 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날지 못한다면 뛰어라. 뛰지 못한다면 걸어라. 걷지 못한다면 기어라. 어떻게 하든 앞으로 전진하라.’ 이 조언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오직 우리에게 주어진 훌륭한 일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임을 일깨워준다.” 뭔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이를 지켜보는 한국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