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무대에서 가장 핵심적인 플레이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협력해 적극적인 퍼즐게임에 나서는 한편, 영국의 ARM 인수처럼 필요하다면 과감한 인수합병 전략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기도 한다. 나아가 소위 ‘판 짜기’에도 능하다. 큰 그림에서 하나의 최종목표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아래부터 차근차근 계획된 로드맵을 전개하는 방법론이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동맹과 대립의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손정의 회장은 반(反) 우버 전선의 핵심이다. 미국의 리프트, 중국의 디디추싱, 싱가포르의 그랩택시, 인도의 올라택시 등은 각자의 협력과 투자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손정의 회장의 투자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디디추싱의 원류인 디디콰이디가 등장하기 전, 손정의 회장은 알리바바가 투자한 콰이디다처에 5억 달러 이상을 배팅한 바 있다. 싱가폴의 그랩택시도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으며 인도의 올라에도 2억1000만 달러를 배팅했다. 이들은 각자의 시스템을 연동하는 것도 고려했을 정도로 촘촘한 인프라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확인된 손정의 회장의 기본적인 블록전술이다. 한 때 인도의 스타트업 스냅딜과 중국의 알리바바, 한국의 쿠팡을 연결해 일종의 전자상거래 그물망이 큰 관심을 받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손정의 회장의 투자는 이제 기업이 아닌, 블록의 형태를 가질 수 있는 특정 업계에 단행되는 수준이다.

여기서 손정의 회장이 중동의 오일머니와 만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소프트뱅크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와 함께 1000억 달러 규모의 첨단기술 펀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최소 250억 달러, 투자 파트너인 사우디 공동투자펀드는 최대 450억 달러를 5년에 걸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oftBank Vision Fund)에 집중해 투자한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영국 런던에 거점을 둘 예정이며, 다른 대형 투자자들도 관심이 많아 추후 전체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13조 원)에 이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펀드 동맹군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최근 UAE의 아부다비 정부계 펀드인 아부다비 투자청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출자한다는 소식을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카타르 국부펀드 출자설까지 더하면 사실상 중동의 오일머니들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셈이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오일머니가 소위 데저트밸리를 꿈꾸며 손정의 회장과 함께 국부펀드를 꾸린 가운데, 사우디 국부펀드가 우버에 투자한 대목도 재미있다. 공유경제 온디맨드 기업 우버가 사우디 국부펀드부터 35억 달러(4조2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상황에서 손정의 회장과 우버의 연결고리가 흐릿하지만 확인된다. 우버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 GM의 투자를 받았던 리프트, 그리고 각지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겟(Gett) 등 많은 경쟁자들이 전선을 넓힌 상태에서 사우디 국부펀드의 투자는 든든한 후원이다. 그리고 그 후원자의 중요한 파트너가 바로 손정의 회장이라는 점은 결국 시장의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도체 시장에서 보여주는 손정의 회장의 행보도 재미있다. 현재 인텔이 파운드리는 물론 메모리 반도체, 나아가 뉴메모리 반도체 시장까지 거침없이 진격하는 상황에서 손정의 회장이 인수한 ARM이 삼성전자와 반(反) 인텔 전선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AP 영역에서 긴밀하게 협조했던 ARM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거인 인텔의 공습에 대비해 더욱 돈독한 협력을 추구할 방침이다. 최근 손정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전격적 만남의 배경에도 이러한 복선이 깔려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ARM이 보유한 비휘발성 메모리(Non-volatile memory: NV램) 기술과 인텔의 3D 크로스포인트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생산성을 가진 삼성전자가 ARM과 어떻게 연대하느냐가 핵심이다. 나아가 양사는 사물인터넷 및 인공지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의 간격을 좁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이 마냥 ‘삼성전자의 좋은 친구’인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껄끄러운 상대와도 거침없이 손을 잡기 때문이다. ‘타도 삼성’을 외치며 일본의 샤프까지 인수했던 폭스콘이 소프트뱅크와 빠르게 가까워지는 대목이 극적이다. 노골적인 삼성타도를 외치며 한국인을 가오리방쯔(高麗棒子/고려몽둥이)로 폄훼하는 궈타이밍 회장은 국내 SK그룹과는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삼성전자에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애플 아이폰 제조의 대부분을 맡으며 삼성전자와 각을 세우는 폭스콘은 화웨이와 더불어 삼성전자를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이해하고 있다.

최근 폭스콘은 ARM과 공동으로 중국 남부 선전에 반도체 설계 거점을 만들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애플도 큰 관심을 보이는 해당 거점에 소프트뱅크의 입김이 닿았다는 뜻이다. 현재 폭스콘은 소프트뱅크의 로봇인 페퍼를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폭스콘이 알리바바와 함께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소프트뱅크로봇홀딩스(SBRH)에 각각 145억엔(약 1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손정의 회장에게 상대방이란 ‘활용의 가치가 있으면 함께 서며, 그렇지 않으면 철저하게 대립하거나 이용하는 대상’이다. 투자 및 인수합병에 있어 대척점에 선 진영과 각을 세우기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손을 잡는 방식이다. 이제 하나의 전략과 하나의 기업, 하나의 업에만 천착해 살아갈 수 없는 시대며, 변화무쌍한 합종연횡의 냉엄한 정글이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