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델리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던 길은 마치 영화 촬영을 위해 임시로 지은 시대극 오픈세트 같았다. 보이는 것이 현실 모습이라고 인정하기엔 너무도 낙후되어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인도, 첫날 아침 인터콘티넨탈 호텔 식당에서 만난 미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필자의 모습은 당시 3개 국의 대(對)인도 관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필자와 같은 날 델리에 처음 도착한 일본인은, 필자가 받은 충격 그 이상의 혼돈 속에서 지금 자기가 할 일은 당장 돌아갈 비행기 편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 흥분이 얼마나 컸던지 건너편 미국인이 빙긋이 웃었다. 심정을 알 만하다는 듯. 미국인은 이미 세 번째 방문이었다. 실제로 일본인은 그날 밤 비행기로 돌아갔다. 필자도 당황했지만 달리 생각할 틈도 없이 인도인과 함께 300㎞ 북쪽 루디아나로 나섰다. 그렇게 시작했다.

미국 등 서구 기업은 개방 이전부터 꾸준히 인도에서 경험을 쌓으며 기틀을 잡았다. 한국 기업은 1990년대 전후 사정을 모른 채 인도로 갔고, 기왕 갔으니 무작정 시작했다. LG, 삼성,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그랬다. 대우자동차는 중도 탈락하고 말았지만, 그 외 세 마리 호랑이(Three Tigers, 인도 언론이 붙인 한국 기업의 성공질주 별칭)는 일본이 없는 인도 시장에서 생존했고 이후 메이저 기업으로 성공했다. 개방 초기 인도에서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후 이정표가 될 만한 성공신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파급효과가 미미한 현대중공업 건설장비공장이나 YG-1 같은 중견기업 진출이 간간이 이어졌을 뿐이다. 포스코 제철소마저 좌절되면서 인도가 뭐 그렇지 하는 부정적 인식마저 생겼다. 투자진출이 사실상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인도에서 화들짝 놀라 도망갔던 일본은 영영 발길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질주하는 한국 기업을 보며 인도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초기에 인도와 합작으로 고초를 겪은 한국 기업이 이후 인도 FDI는 당연히 단독투자라는 등식을 세우고 있을 때에도 일본은 꾸준히 지분인수나 합작으로 직접진출 예비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2000년 초 대규모 투자가 있으면서도 요란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한국에서는 인도에서 일본은 한국에 뒤졌다고 여겼다. 실상은 달랐다. 2000년 이후 누적된 대(對) 인도 직접 투자에서 일본은 싱가포르와 영국에 이어 3위로서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금액의 7% 비중이다. 미국(6%, 4위)을 앞지른 것이다. 한국은 고작 16위이고 비중도 0.62%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인도 시장에 대한 근본적 평가 차이가 있었다. 단일투자로 최대라 자랑하던 포스코 프로젝트가 좌초되면서 모두가 인도 탓으로 비난을 퍼붓고 돌아섰지만 일본은 그때도 시장가치를 심도 있게 분석해 투자를 지속했다. 영역과 지역도 다양해져 일본 기업이 없는 인도 내 거점 도시를 찾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 2005년 일본 대장성 관리 사카키바라 에이스케가 저서 <인도를 읽는다>에서 ‘한국을 배우자’고 역설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상황은 반전됐다. 게스트하우스 같은 업종까지 망라해도 400여개에 지나지 않는 한국의 투자진출은 3000개 넘어선 일본과 비교된다. 한국 식당이 먼저 생겼지만 이제는 줄어들고 반면 일본 식당은 특급호텔에서도 생길 정도로 고급외식업으로 성장 중이다.

▲ 지난 10월 인도 MP주에서 개최된 글로벌 투자유치회. 조현 인도주재 한국대사가 축사하고 있다. 출처=김응기

인도 정부의 산업정책진흥국에서 매년 발표하는 FDI 정책은 개방 폭과 분야에서 갈수록 진취적이다. 최근에는 농업에서도 전략작물 기업농인 경우 100% 외국인지분을 허용했다. 소매업도 현재는 단일 브랜드 100% 허용이지만 복합브랜드 허용도 멀지 않았다. 인도 시장의 기회가 이처럼 열렸지만 초기 험로를 개척했던 한국 기업은 요즘 뭐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의 공격적인 행보가 주목된다. 아모레퍼시픽이 단일 브랜드 ‘이니스프리’로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 최근 5호점까지 판매망을 구축한 데 이어 6~7호점으로 확대할 움직임이다. 향후 멀티 브랜드 점포를 준비하는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 최근 삼성도 사내 인도 전문가를 모집하고 힌디어 학습을 기획했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인도 방문과 공장증설 투자단행에서 미루어 보아 삼성의 인도 재평가이자 밀착된 현지경영 준비로 판단된다.

이제 기아자동차 인도 공장 연내 추진과 더불어 인도 투자진출의 새 장이 열리는 것인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인도 외국인 직접투자 프레임에서 일본에 뒤지고 중국에 밀쳐지는 험한 꼴이 있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