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상당히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메모리 반도체도 도래할 4차 산업혁명의 미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치킨게임도, 약탈적 제로섬 게임도 없이 향후 5년간 장기 호황이 예상되기 때문에 장래성도 밝다. 하지만 시장이 호황이라고 현재의 플레이어가 마냥 콧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는 것이 좋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현재 불의 고리에 버티고 섰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언제든 대규모 지진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출처=삼성전자

태평성대...하지만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와 4분기 모바일 D램 매출은 29억6000만 달러에 달해 지난 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22.4%나 급증했다. 시장 점유율도 64.5%에 달한다. 전체 D램 시장에서 모바일 D램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D램 전반의 기술력은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시장 자체가 호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 모바일 D램의 경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장 낸드플래시와 더불어 모바일 D램에 대한 수요가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파괴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10나노 D램 기술과 48단 양산까지 진격한 낸드플래시를 필두로 기술우위도 단단히 점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체 D램 시장에서 점유율 50.2%를 기록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올해 3분기와 4분기 모바일 D램에서 매출 10억4700만 달러를 올리며 점유율 22.8%를 기록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내년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사업 흑자전환, D램 수요 증가를 발판으로 삼아 두 자릿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시장도 호황이고 당분간 이러한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모바일 D램에 비해 다소 존재감으 흐릿하던 PC 메모리 반도체와 차량용 반도체 등이 조금씩 살아나는 지점도 고무적이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은 공급 부족에 따른 재고 소진의 영향을 받아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 프리미엄 PC 게임이 각광을 받으며 나름의 수요가 발생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와의 접점이 크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오는 2021년 관련 시장이 4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가운데, 커넥티트카 및 차세대 플릿폼 전략의 새로운 바람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통해 전장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보안, OTA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량용 반도체의 역할론이 강조되며, 삼성전자의 선택지도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 출처=하만

SK하이닉스는 아직 차량용 반도체에 있어 초기단계지만 해외 부품사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시장이 당분간 호황을 이어갈 것은 분명하지만 일순간 '게임 체인저'가 등장해 기존 시장의 패러다임을 파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 리스크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메모리 시장 경쟁력은 단기적으로 무시할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협"이라며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중국은 국가 주도의 반도체 육성 전략을 메모리 시장까지 끌어오고 있다. 불발로 끝났지만 칭화유니그룹의 샌디스크 우회인수 시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방법론 자체가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부터 중국 정부는 막강한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기반 인프라를 착실하게 구축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존재감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 수요를 무기로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얼어붙으며, 그 반대급부로 기술발전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보여줬던 일시적 박리다매 전략이 재연될 경우, 장기적 평화를 누리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자체가 출렁일 수 있다. 물론 기술력에 있어 큰 차이가 있지만 물량을 앞세워 반도체의 단가를 떨어트리는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칭화유니그룹은 한 때 SK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했던 전력도 있다. 대규모 자금과 인수합병, 나아가 막강한 내수시장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겹쳐지면 급격한 변화의 바람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종의 방어전략을 치밀하게 구축할 때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존 경쟁자의 '절치부심'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D램의 경우 나름 삼성전자 천하가 장기화될 조짐이지만, 낸드플래시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낸드플래시의 존재감이 D램을 서서히 압도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2위 사업자 도시바의 야망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도시바는 일본 시가(滋賀)현 요카이치(八日)에 3D 낸드플래시 설비를 대대적으로 증설한다는 방침이다. 낸드플래시에서 3D의 비중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확실하게 노리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2분기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6.3%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도시바는 20.1%에 불과한 2위다.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올 연말 4세대 64단 적층 낸드플래시까지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나 도시바의 '한 칼'은 경계해야할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실상 내년을 기점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은 3D를 중심으로 치킨게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지난 3월 중국 시안에 3D 낸드 생산 설비를 증설했고, 경기 화성 16라인 일부를 3D 낸드로 전환한 삼성전자는 평택라인 완공에 화성 17라인 전환을 덧대어 물량공세에 나설 전망이며, SK하이닉스도 48단 양산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글로벌 기업의 공세도 상당하다. 칭화유니는 XMC 지분을 인수해 3D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도시바은 웨스틴디지털과 손을 잡았다. 마이크론도 공장 확충을 통해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SSD 시장의 판세도 미묘하다.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샌디스크를 인수한 웨스틴디지털 등이 나름 전열을 가다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SSD 제품을 공개했던 웨스틴디지털은 기존 HDD 시장의 존재감과 샌디스크를 통한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HDD와 SDD 원천기술을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나름의 공격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다.

결론적으로 D램 시장은 호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지만 시간이 갈수록 낸드플래시 시장이 더욱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낸드플래시 시장을 향한 각자의 전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존재감이 여전하지만 합종연횡을 통해 판을 새롭게 짜고 있는 기업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출처=WD

가장 큰 위협은 인텔...삼성의 선택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낸드플래시를 중심으로 격변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반도체 거인 인텔의 행보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 파운드리로의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3D 크로스포인트로 메모리 시장의 진격까지 시작했기 때문이다. 3D 크로스포인트는 기존의 낸드플래시보다 1000배 빠르면서도 D램처럼 전원을 끈다고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반도체 칩인 ‘레이크 크레스트(Lake Crest)’도 눈길을 끈다. 내년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라고 IT 전문매체 벤처비트가 보도했다. 메모리와 시스템을 아우르는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상태에서, 그 보폭을 넓히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출처=인텔

이에 맞서는 삼성전자는 ARM과 손을 잡았다. 차세대 메모리 개발 컨소시엄인 'Gen-Z'를 공식 출범시키는 한편 비휘발성 메모리 기술을 점점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스토리지클래스메모리(SCM) 표준제정으로 3D 크로스포인트에 대항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만남에도 이러한 합종연횡 가능성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생산공정에 집중해 파운드리의 역할을 수행하던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에도 조금씩 진출하는 상황에서, 시스템 반도체는 물론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ARM은 큰 우군이 될 전망이다. 특허는 물론 글로벌 판로 등 다양한 협력이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협력은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천착'이라는 패착에서 일정정도 거리를 두어야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안드로이드 동맹군의 하드웨어 일원으로 하드웨어 스마트폰만 판매하던 삼성전자의 로드맵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ARM과의 협력에도 반복되면 그 이상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노리는 과정에서 양사가 손을 잡았지만 최고의 가치는 소프트웨어, 즉 사용자 경험의 '끝'에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ARM과 함께 노려야 할 미래는 완전히 평등해야 한다.

이러한 충돌은 뉴메모리 시대의 경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만 취합하고 단점을 버리는 P램과 M램, Re램이 그 주인공이다. D램은 전원을 끄면 기억이 사라지지만 낸드플래시는 보존된다. 하지만 낸드플래시는 집적도가 아주 높으나 속도는 느리다. 이런 상황에서 P램과 M램은 집적도가 중간이며, 속도는 빠르다. Re램은 집적도가 높고 속도가 중간이다.

P램은 비정질 물질을 이용해 전하를 가둬서 데이터를 기억하며 M램은 금속의 자성(磁性)을 이용한 저항에 따라 0과 1을 기억한다는 설명이다. Re램은 실리콘 옥사이드를 이용한다. 현재 인텔은 P램을 주력으로 삼아 로드맵을 전개하고 있으며, 향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3가지 모델을 선택해 나름의 비전을 짜야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속도가 과거와는 달리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현재 호황도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당장의 급진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