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들의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잘 내려오는 일이 더 중요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여기 지난 11월 19일, 바레인에서 열린 6시간의 레이스를 끝으로 은퇴한 한 드라이버의 이야기가 적잖은 여운을 남기는 것도 시국이 어수선한 탓일지 모르겠다.

 

 
▲ 출처=포르쉐AG

F1(포뮬러원) 그랑프리 통산 9승을 올린 베테랑 마크 웨버(Mark Webber)가 2016년 FIA 세계 내구 레이스 챔피언십(이하 WEC)에서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포르쉐 특별 대표’라는 새 명함을 갖게 되었다. 그는 랠리계의 전설인 발터 뢰를(Walter Rohrl)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된 포르쉐 특별 대표이다. 뛰어난 레이싱 경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평소 열렬한 포르쉐 마니아로 정평이 난 그여서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향후 웨버는 포르쉐를 대표해 각종 글로벌 행사에 참석함은 물론 스투트가르트에 적을 둔 포르쉐 모터스포츠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또한 인재 발굴은 물론 유망한 프로 드라이버와 전 세계 포르쉐 아마추어 레이서의 훈련을 전담하게 된다. 모두가 꿈꾸는 화려한 제2의 인생이지만,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크다. 아직도 정상급 랩타임을 보여주고 있고, 무엇보다 그의 풍부한 경험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포르쉐 LMP1부사장 프리츠 엔칭어(Fritz Enzinger) 역시 웨버의 은퇴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가 기억하는 레이서 마크 웨버는 대충 이 정도다. 치열한 레이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파이터인 동시에 매우 전략적이며, 항상 팀을 우선시하는 드라이버!

웨버는 2015년 출판된 자신의 자서전 <오지 그릿: 나의 포뮬러 원 여정>에 레이서로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그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프로 드라이버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향인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주 퀸베얀을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당시 그는 스폰서 없는 수많은 레이서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영국 브랜드 해치에서 열린 포뮬러 포드 대회에서 우승했고, F3와 F3000에 출전해 기량을 뽐냈으며, 메르세데스의 스포츠카 프로그램에 초청받기도 했다. 1999년 르망 24시에서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해 마크 웨버가 탄 머신과 팀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신이 예선 주행과 웜업 세션에서 백플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행 중 머신이 뒤집혀 공중에서 돈 것이다. 치명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했지만, 웨버의 레이서 커리어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1년 베네통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그의 F1 데뷔 무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가 2002년 고향인 호주 멜버른 열린 그랑프리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미나르디 팀 소속으로 출전해 5위를 기록한 것. 2005년에는 전 소속팀인 BMW 윌리엄스 F1 팀으로 출전해 첫 포디움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9년 독일 그랑프리에 레드불 레이싱 팀 소속으로 131번째 그랑프리에 출전하여 마침내 첫 F1 그랑프리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여세를 몰아 2010년과 2012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4년, 마크 웨버는 베테랑 드라이버가 되어 사르트 서킷(Circuit de la Sarthe)에 15년 만에 복귀했다. 그러나 르망 24시 트로피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2위로 달리던 웨버는 결승까지 2시간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갑작스런 파워트레인 문제로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2015년에는 티모 베른하르트, 브렌든 하틀리와 함께 포르쉐 919를 타고 출전, 초반 3분의 1지점까지 선두를 달렸으나 타임 패널티로 인해 결국 2위로 대회를 마쳤다. 2016년에는 워터 펌프 파손으로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그의 가장 완벽한 승리는 2015년 11월 바레인에서 열린 대회에서였다. 당시 양쪽 스로틀 배럴 레버가 고장이 난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르쉐 919의 빼어난 엔지니어링 성능과 드라이버의 초인적인 감각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현재 마크 웨버의 차고에는 포르쉐 918 스파이더, 911 R, GT3 RS(991), 911 GT2 RS(997), 911 GT3 RS 4.0, 1954년식 포르쉐 356 카브리올레, 1974년식 포르쉐 2.7 카레라 등이 도열해 있다. 포르쉐를 향한 그의 애정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친구에게 포르쉐 911를 빌려 몰고 다녔고, 자신의 첫 포르쉐로 포르쉐 911 터보를 택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그가 아는 포르쉐 911은 우아함과 성능, 그리고 절제의 미학을 다 갖춘 스포츠카의 아이콘이다. 모든 주행 시나리오에 최적인 자동차라는 평가도 과장이 아니다. 마크 웨버는 “내가 속해야 할 곳에 드디어 왔다. 포르쉐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내게 가장 잘 맞는 브랜드다. 엄청난 속도, 다운포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이 그립겠지만 새 미션 역시 매우 기대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신구 레전드 마크 웨버와 재키 스튜어트. 출처=포르쉐AG

 

     
 

마크 웨버가 F1에서 받은 최고의 성적표는 시즌 종합 3위였다. 한때 무관의 제왕이란 소리까지 들을 만큼 불운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달린 끝에 은퇴 후 자신에게 꼭 맞는 완벽한 잡(Job)을 찾았다. 열심히 해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긴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마크 웨버야말로 진정한 승자고 행운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