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또 축제가 끝났다. 매년 연말이면 열리는 글로벌 게임축제 지스타 얘기다. 지난 17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개막해 20일에 폐막했다. 지스타 조직위원회는 여지없이 역대 최대 성과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역대 최대 성과’라는 표현은 정확한 숫자로 측정 가능한 요소로부터 비롯된다. 방문자 집계도 그 항목 중 하나다. 조직위에 따르면 행사 마지막날 오후 5시 기준 총 21만9267명이 지스타를 참관했다. 지난해 20만9617명보다 약 4.6% 증가한 수치다. 또 다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다만 지스타의 성과를 단순히 숫자로만 나타내기엔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게임업계가 지스타를 통해 제시한 화두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지스타는 게임시장의 가까운 미래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다가올 기회는 물론 위기까지도 앞서 감지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넥슨에 의한, 넥슨을 위한?

넥슨이 작정을 했다. 지스타 2016을 넥슨의 색깔로 물들이기로. 일단 BTC관에 400부스나 차렸다. 역대 최대 규모다. 신작도 잔뜩 쏟아냈다. 무려 35종을 출품했다. 여러 플랫폼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물량공세를 펼쳤다.

시작부터 가뿐했다. 개막 전날인 지난 16일에 열린 ‘2016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은 ‘히트(HIT)’ 품으로 돌아갔다. 넷게임즈가 개발하고 넥슨이 서비스 중인 모바일 액션 RPG(역할수행 게임)다. 글로벌 1300만다운로드를 기록한 히트 게임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이번 수상은 뛰어난 개발사와의 협업을 통해 이룬 성과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즐거움과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습니다.” 넥슨코리아 박지원 대표의 말이다.

BTC관 정중앙에 위치한 대형 부스엔 게이머가 가득 찼다. 신작 체험을 위해 줄을 서면서 마치 놀이공원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준비한 라인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다만 확실한 한방의 부재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넷마블게임즈‧웹젠‧룽투코리아가 각각 100부스를 차려 넥슨을 포위했지만 존재감에 있어서는 넥슨을 뛰어넘지는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스타 2016은 넥슨에 의한, 넥슨을 위한 행사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남은 문제가 하나 있다. 넥슨 없는 지스타를 상상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지스타가 넥슨 없이도 지금의 콘텐츠 볼륨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넥슨은 지스타 단골이자 기둥이자만 이는 영원할 수 없다. 일례로 또 다른 단골인 엔씨소프트가 올해 지스타에 불참했다.

익숙한 것들의 귀환

올해 지스타 풍경은 유독 낯설지 않았다. 눈에 익은 슈퍼 IP(지적재산권)가 곳곳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톰과 스타워즈, 드래곤볼과 레고가 게이머들을 반겼다. IP 트렌드는 지스타에서도 이어졌다. 기존 IP를 재해석해 개발한 신작이 대거 출품됐다.

먼저 룽투코리아는 인기 만화 캐릭터 아톰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톰 IP를 기반으로 제작한 모바일 RPG ‘아톰의 캐치캐치’를 선보였다. 레고 IP도 등장했다. 최대 규모 부스를 차린 넥슨은 모바일 RPG 신작 ‘레고 퀘스트앤콜렉트’를 공개했다. 넥슨이 TT게임즈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개발 중인 게임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넷마블게임즈 부스에서는 대형 스타워즈 피규어 군단을 만나볼 수 있다. 신작 ‘스타워즈: 포스 아레나’를 홍보하기 위한 피규어다. 이 게임은 스타워즈 IP를 활용한 모바일 신작이다. 18년 역사를 지닌 리니지도 모바일 게임으로 나왔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 IP를 활용해 개발 중인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 시연 버전을 선보였다.

글로벌 IP 강자인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도 지스타에 모습을 보였다. 참관객들은 반다이남코 부스에서 드래곤볼, 원피스, 건담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경쟁력 있는 IP 홀더로 평가받는 웹젠은 뮤(MU) IP를 계승한 PC MMORPG ‘뮤 레전드’ 시연 공간을 마련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올해 게임업계에서는 IP 활용을 ‘흥행 치트키’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IP 활용이 사업적인 가능성을 주목받으면서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IP 활용과 확장 작업에 몰두 중이다. ‘꺼진 IP도 다시 보자’는 분위기다. 다만 신규 IP를 창안하는 대신 기존 IP 활용에만 집중하는 추세는 업계의 매너리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게임쇼의 두 얼굴

그간 지스타를 ‘글로벌 4대 게임쇼’로 키우려는 많은 노력이 있어왔다. 그러나 매년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무늬만 ‘글로벌 게임쇼’이고, 실제로는 지역 축제 느낌이 짙다는 악평이 따라붙곤 했다. 굵직한 글로벌 게임사의 참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한국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글로벌 게임사의 참가가 줄을 이었다. 기존에 참가하던 해외 업체들은 부스를 키워 참가했다.

먼저 모바일 MMORPG ‘검과마법’을 국내에서 흥행시킨 중국 룽투는 이번 지스타에 프리미어 스폰서로 참가해 BTC관에 100부스를 차렸다. 첫 참가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앞서 언급한 반다이남코도 BTC관에 처음으로 부스를 차렸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C)을 앞세운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도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해 존재감을 알렸다. 단독 100부스 외에 지스타 조직위원회와 함께 40부스 규모의 ‘지스타 VR 특별관’을 차렸다.

▲ 출처=엔비디아

2009년부터 줄곧 지스타에 참가하고 있는 글로벌 GPU(그래픽 처리 장치) 강자 엔비디아도 부스를 키워 참가했다. ‘게임레디(Game Ready)’를 주제 비주얼 컴퓨팅 기술력을 과시했다. HTC‧오큘러스와 협업해 운영한 ‘지포스 VR 체험관’이 특히 주목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스타 글로벌 미디어 파트너로 선정된 트위치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지난해 BTC관에 40부스를 차렸던 트위치는 올해 100부스로 대폭 확대 참가했다. 현장에서 다양한 e스포츠 대회를 운영하는 한편 콘텐츠 스테이지를 마련해 국내 게임을 해외에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지스타에 대한 트위치 본사 인식도 달라졌다. 일례로 지난해 지스타엔 아시아권 지사 직원들만 한국을 찾았는데 올해엔 미국 본사 직원들도 한국을 찾았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난생 처음 오는 이들이 한국의 현황을 직접 보고 배우려고 찾았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미국과는 다른 한국 상황을 확인하고 놀라워하고 있다고 한국사업을 총괄하는 알버트 김 트위치 코리아 GM은 전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그는 트위치가 한국 시장에서 기본적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미국보다 개인 방송 플랫폼 서비스를 오래 운영했으며 경험 많은 스트리머도 다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스트리머를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유저를 잘 모을 수 있는지 가르쳐야 했어요. 한국에서는 경험 많은 분들이 많다보니 교육이 필요 없더라고요. 반대로 방송에 대해 우리가 배우고 있죠.”

지스타가 글로벌 게임쇼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세계 무대에서도 경쟁력 있는 게임쇼로 인정받는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해외 업체의 득세가 국내 게임 산업의 경쟁력 상실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방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는 목소리다.

더 치명적인 ‘가상현실로의 초대’

참관객들은 특히 VR 체험에 만족을 표했다. 아직 VR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생소한 경험에 호기심과 놀라움을 표했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VR 체험공간이 대폭 확대됐는데도 불구하고 인파가 몰려 북적북적했다.

VR 체험을 주도한 업체는 소니다. 올해 출시한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 PS VR로 VR 게임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PS VR은 PS4와 연동되는 기기다. 부스 한쪽에서는 PS VR을 50대 한정 판매했는데 순식간에 매진됐다는 후문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엔비디아의 ‘지포스 VR 체험관’도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특히 국내에서 최초 시연되는 최신 VR 콘텐츠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오큘러스 리프트 관을 통해 ‘디 언스포큰’과 ‘로보리콜’을, HTC 바이브 관에서 ‘VR 펀 하우스’를 선보였다. 매일 두 차례 진행된 VR 체험 현장 선착순 예약은 30분만에 마감됐다.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용덕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은 VR 산업이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충분히 무르익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직 VR 콘텐츠가 부족하며 시스템의 발전도 100%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설명이다.

“내년에는 VR이 대중에 조금 더 많이 알려지는 단계가 될 겁니다. 2018년엔 무르익어갈 것이며 2020년엔 완전히 활성화될 것으로 봅니다.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VR은 2020년에 85조원짜리 시장이 됩니다.” 그의 설명이다.

▲ 출처=엔비디아

다만 국내 VR 산업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지스타 현장에서도 해외 업체가 VR의 인기를 주도했다. 이용덕 지사장은 VR 시장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국내 업체에 콘텐츠 분야에서 승부를 볼 것을 주문했다. HMD와 같은 하드웨어를 개발하려면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콘텐츠의 경우 국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노려봄직하다는 얘기다.

고개 든 토종 콘솔 타이틀

지스타 2016 ‘핫플레이스’인 소니 부스에서는 토종 콘솔 타이틀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국내 게임업계는 콘솔게임 플랫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국내 시장에서 그 비중이 극히 미미한 까닭이다. 대부분 모바일 게임 혹은 PC 온라인 게임에 몰두했다. 그런데 몇몇 업체가 콘솔 게임 시장에 과감히 도전했다. 성과와는 별개로 유의미한 시도로 보인다.

먼저 조이시티는 첫 콘솔 진출작 ‘3on3 프리스타일’을 소니 부스를 통해 선보였다. 길거리 농구를 모티브로 한 인기 PC 온라인 게임 ‘프리스타일’을 PS4 플랫폼에 맞춰 다시 개발한 게임이다. 네오위즈게임즈도 소니 부스에서 PS4에 맞춰 개발 중인 비디오 게임 ‘디제이맥스 리스펙트’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한편 ‘2016 대한민국 게임대상’ 다관왕에 빛나는 로이게임즈도 만나볼 수 있다. 로이게임즈는 PS VR 버전으로 개발 중인 로맨틱 호러 게임 ‘화이트데이: 스완송’ 시연 버전을 공개했다. 또 로이게임즈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을 PS4 버전으로 리메이크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콘솔게임 사업에 도전하는 이유는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국내 게임시장은 지난해 매출 기준 10조원 규모로 성장한 반면 콘솔게임 시장은 1661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영향력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해외 시장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디오 게임 시장 규모가 가장 크다.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 매출 규모를 합산한 것과 맞먹을 정도다. 콘솔게임이 국내 시장 트렌드와는 맞지 않지만 이들이 과감히 도전하는 이유로 짐작된다. 이들의 도전이 내년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