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홀릭(Confessions of a Shopaholic)
- 장르 코미디·드라마
- 상영시간 104분
- 개봉일 2009.03.26
- 감독 P.J. 호건
- 출연 아일라 피셔, 휴 댄시, 조앤 쿠삭
- 등급 12세 관람가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갑 안에 필수품처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물론 신용카드. 참, 이 신용카드란 묘한 존재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소비의 쾌락을 소유자에게 별 어려움 없이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에 책임이 따르듯 소비의 즐거움 뒤에는 뼈를 깎는 카드 요금 결제일이 버티고 있다.

다음 달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언제나 승자는 신용카드의 차지다. 카드 쓰기와 카드 값 메우기.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현대인의 일상을 표현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일 게다.

<쇼퍼홀릭(Confessions of a Shopaholic)>의 레베카(아일라 피셔 분)의 삶이 딱 그렇다. 아니, 정도가 더 과하다. 근검절약을 집의 가훈으로 여기는 부모님 덕분에 그럴듯한 쇼핑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레베카는 성인이 되자마자 덜컥 신용카드부터 만들고 쇼핑의 즐거움을 맘껏 누린다.

그런데 이를 어째. 레베카가 다니던 원예잡지 회사는 문을 닫고, 이제 그녀는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할 처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레베카는 우연한 기회에 경제지 에디터로 일할 기회를 얻지만, 경제와는 담을 쌓은 그녀와 이 일이 어울릴 리 만무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담아 경제에 패션을 접목시킨 경제 칼럼을 쓴 레베카는 단숨에 이 경제지의 루키로 떠오른다. 다분히 과장되고 희화화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레베카의 좌충우돌기에 공감할 것이다.

대책 없이 긁어댄 카드 덕분에 한 달 후 날아온 카드 명세서를 앞에 놓고 골머리를 앓은 경험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영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과 <뮤리엘의 웨딩(Muriel’s Wedding)>을 연출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감독 P.J. 호건의 신작 <쇼퍼홀릭>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 이야기의 보편성에 있다. ‘칙 릿(Chick lit, 젊은 여성을 겨냥한 대중소설)’ 열풍을 전 세계에 일으킨 소피 킨셀라의 동명 소설 원작의 <쇼퍼홀릭>은 쇼핑광인 여자 레베카의 개과천선기다.

이 영화의 제작에 큰 역할을 한 히트작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쇼퍼홀릭>의 의상 감독인 패트리샤 필드가 이 두 영화에서도 의상을 담당했다)처럼 화려한 볼거리는 <쇼퍼홀릭>에서도 여전하다.

하지만 여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아낸 두 영화와는 달리 <쇼퍼홀릭>은 전적으로 쇼핑에 빠진 현대인의 마음에 집중한다. 매장 쇼윈도에서 레베카를 유혹하는 마네킹의 장면이나 그다지 필요도 없는 스카프를 산 후 이는 어쩔 수 없는 소비라며 자기최면을 거는 레베카의 모습을 보면 절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화려한 눈요기에 재미, 거기에 교훈까지 안겨주고 있으니 <쇼퍼홀릭>은 상업영화로서는 뭐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완벽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단점은 엄연히 존재한다.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레베카가 그 난관을 풀어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판타지에 가깝다는 것.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자신을 끝까지 보듬을 부모님과 친구가 레베카의 옆에 버티고 있고, 게다가 백마 탄 왕자님까지 등장해 그녀의 갱생을 돕는다. 다분히 무책임하면서 편리한 설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쇼퍼홀릭>이 할리우드 오락 영화의 귀재인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영화라는 사실을 떠올릴 것. 〈쇼퍼홀릭>은 ‘터무니없음’으로 요약되는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그 수많은 액션 블록버스터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가깝게 인간 세상에 내려온 ‘현실적’인 영화다.

태상준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