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개 가까이 되는 음식점 중에서 한식은 주부들이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고 도전하는 메뉴다. 하지만 대중적인 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부침도 심하다. 그런데 남들이 하지 않는 메뉴를 개발해서 도전해 그 분야에서 1등 브랜드를 키워내고 15년 이상 장수하면서 한식으로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중년 여성들이 나이 쉰만 넘기면 갱년기 타령을 하지만 가맹점 130여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CEO 역할을 하면서도 학업의 끈을 멈추지 않아 올해 초에는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 김영희 김영희강남동태찜 대표

바로 ‘김영희강남동태찜’의 김영희(사진) 대표다.

김대표는 지금도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CEO로서, 대학교수로서, 직영매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서 1인 다역을 훌륭하게 해내면서 열심히 뛰고 있다.

김대표의 성공은 풍요롭고 여유있는 환경이 아니라 수중에 단돈 8만원밖에 없던, 최악의 환경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뤄낸 것이라 더욱 값지다.

살림경험 밖에 없어 창업을 망설이는 주부들에게 ‘고민만 하면 누구나 사업가가 될 수 있다. 이란 시작하라, 하면서 고쳐나가라. 부딪쳐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말하는 김영희 대표의 말은 책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 본인의 절절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다.

전 재산 8만원으로 창업에 도전 
경북이 고향인 김영희 대표는 비교적 여유로운 부농 집안에서 자랐다. 옛날 어르신이 많은 보수적 집안이 다 그렇듯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꿈 많던 김 대표는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1974년 언니가 있던 서울로 상경한다. 나이 스무 살에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공부하는 재미, 일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직장 생활을 끝내고 결혼한 뒤 주부가 된 그녀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요리였다. 직접 만든 요리를 가족에게 주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액자 사업을 하던 남편의 공장 직원들을 대접하는 일이 있을 때 김 대표는 자신의 음식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김 대표가 만든 요리를 맛있다며 좋아했다.

그러나 평온하던 일상이 파문이 일었다. 남편이 하던 액자공장에 불이 나면서 수억 원의 빚더미에 오르는 힘든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도 없고 기술도 없이 깜깜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영희 대표는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자기 자신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요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막막했다. 지갑에 들어있는 8만 원이 그녀의 전 재산이었다. 평소 신의가 있던 그녀를 좋게 봐준 이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백만 원으로 곤지암에 20평 규모 사철탕 가게를 열었다. 1990년 5월이었다.

그녀는 도전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일반 보신탕이나 수육과는 달리 보신탕구이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다소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남들과 다른 차별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간판 이름에 ‘강남’이라는 글자를 넣은 것도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는 손님들의 발길을 가게로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생계유지 정도였던 매출은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빚도 차츰 줄어들었다. 하지만 너무 특수한 업종이라 겨우 유지를 하는 수준이지 큰돈을 벌기는 어려웠다. 빚을 언제 갚을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다. 그 때 남편 공장에 불이 난 후 생계를 위해 시장통에서 동태 자반을 만들어 팔았을 때 반응이 좋았던 것이 떠올랐다. 동태자반이 아니라 동태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서 음식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 김영희강남동태찜 잠실 본점 매장 내부 모습

여러 가지 방식을 시도해보다가 떠올렸던 것이 동태에 아구찜을 접목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성공적인 ‘완성품’이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콩나물 비린내를 빼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동태가 덜 익거나 부서지기도 했다. 이렇게 6개월을 시간을 공들였다. 식사를 하러온 손님들을 대상으로 맛을 테스트했다.

김영희 대표는 동태의 배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등 쪽으로 칼집을 내보았다. 그러자 맛에서도 비주얼 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이곳만의 특제 소스까지 개발하면서 완벽한 요리를 탄생시켰다.

단골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가게는 더욱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995년 가게를 양평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김영희강남동태찜’이라는 상호를 붙였다. 가게에 직접 페인트칠까지 해가면서 준비를 했다.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원칙은 끝까지 지켜나갔다.

동태찜이라는 블루오션 메뉴로 대박 행진에 오르다 
새로이 문을 연 김영희강남동태찜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2년 반 만에 공장 부도로 졌던 빚 4억 원을 다 갚을 정도였다.

동태찜이 히트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김 대표의 독특한 미각이 반영된 양념소스덕분이다. 동태찜 자체의 특성도 있었다. 밥과도 잘 어울리고 술안주로도 잘 맞아 점심과 저녁 시간대 매출 편차가 적다. 또 푸짐한 외양은 회식메뉴로 잘 어울려 단체 손님이 많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인데다 다양한 용도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동태찜의 큰 경쟁력이었다.

▲ 통문어코다리찜

장사가 잘됐지만 초심을 지키기 위해 김 대표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초심을 지켰다. 배달사업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가맹점을 내기를 희망해도, 특제 소스의 비밀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후배 한 사람이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고, 김 대표는 그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직접 동태찜 소스에 대해 몇 달 동안 교육했고, 강원도 홍천에 김영희강남동태찜 2호점을 오픈하도록 도와줬다.

그러나 남편의 후배는 이내 연락을 끊었다. 답답한 마음에 김영희 대표가 홍천으로 직접 가보니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본인 이름으로 요리 비법을 교육하고 있었다. 심지어 춘천에 분점까지 내놓고 있었다. 심한 배신감에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기가 찼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좀더 전문성을 갖춘 경영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독립적으로 점포를 운영하던 개인사업자가 프랜차이즈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양한 경로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상표 등록을 마치고 포장 기술을 접목해 배달사업도 키워갔다. 양과 가격이라는 강점에 포장 배달이라는 날개가 달인 것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 각지에서는 가맹점 문을 열기 위한 요청이 들어왔다. 김 대표는 소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본사가 소스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가맹점을 허가했다. 순식간에 전국 가맹점은 서른개로 늘어났다.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한 그녀의 공부는 계속 됐다. 가맹 조건이나 업계 사정에 대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공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의 20년 만에 다시 책상 앞에 앉은 것이다.

고객과의 소통을 확대해나기 위해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인터넷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의 외식업 온라인 마케팅은 아직 초기였기에 신선한 반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인터넷에서 반응은 더 폭발적이었다.

▲ 김영희강남동태찜 잠실본점 매장 외부 모습

그러나 김영희강남동태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소스 제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체력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너무 많은 양을 생산해내다가는 맛의 변질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경기도 하남 공장을 설립하고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보다 체계적인 물류망을 갖춰나가고 회사의 조직도 재구축해나갔다.

덕분에 본사에서 싱싱한 동태를 전국 가맹점으로 일시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맛과 질은 더욱 향상된 것이다. 그리고 진입장벽을 만들기 위해 소스도 특허 출원했다. 덕분에 가맹점주들은 초보자도 가맹본부의 특허 받은 소스를 이용해 다른 업소들과 차별화되면서도 한결같은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10평짜리 사무실을 얻어서 시작했던 프래차이즈 사업이 이제는 한식 대표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얻었던 가장 큰 의미는 재래시장의 작은 행상에서 출발했던 김 대표가 진정한 사업가, CEO로 거듭났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수많은 이들에게 성공의 롤모델로 자리 잡게 됐다.

사장이 매장을 지켜야 성공한다 
김영희 대표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공비결은 무엇보다도 ‘초심’이다. 처음의 그 절박했던 마음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달려온 것이 그녀 자신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꾸준히 노력한다. 그런 노력으로 메뉴 관리에서부터 직원 관리까지 아직도 그녀 스스로가 직접 꼼꼼히 살피고 있다. 김영희 대표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느낌이 오면 그 자리에서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구상하고 실행해보면 생각했던 그 맛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경영자인 동시에 여전히 ‘연구가’이기도 하다.

성공비결의 둘째로 그녀는 현실적 분수에 넘치지 않는 삶을 꼽았다. 과분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일을 순서대로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걸음에 앞서 세 번째 걸음을 딛을 수는 없다고 김 대표는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성공 비결로 그녀는 재무적 리스크를 만들지 않는 철칙을 강조했다. 새로운 투자도 운용 가능한 자금이 있을 때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절대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사업의 규모를 늘리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이에 앞에서 안정이 최고라고 말하는 김영희 대표. 그녀는 이 분야에서 사장이 잘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일찍 사업을 접는 일을 자주 봐온 것이다.

▲ 김영희강남동태찜 잠실본점 매장 내부 모습

또한, 식재료를 아끼지 말라고 말한다. 푸짐한 양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첫 번째 요소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아끼려는 행동이 나중에는 후회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녀는 김영희강남동태찜을 함께 하기를 원하는 창업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조언했다. 우선 주어진 매뉴얼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수익이 커지고 자신감이 생겨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면 망할 수도 있다. 본사의 오랜 노하우를 믿으라는 당부였다.

셋째로 직원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라고 말한다. 직원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키워주는 것이 바로 사장의 역할이고, 그렇게 키워낸 직원들이 사장에게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맹점주 스스로가 반드시 매장 운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 대해서 직접 공부하고 익히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권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복합 상권이 적합하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상권이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김영희강남동태찜이라고 그녀는 자부했다.

인생의 종합예술이 창업, 어려움 극복하면 짜릿한 기쁨이 
김영희 대표의 사업에는 철학이 있다. 동태의 재료가 되는 생선, 명태. 명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쓰이게 된다. 그대로 잡아낸 생태, 차가운 온도로 얼려낸 동태, 말려내어 포나 무침으로 활용되는 복어, 코다리까지. 이처럼 요리에 다양한 쓰임새로 쓰이는 동태처럼 그녀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게,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 대구지리탕

또 한 가지는 본인처럼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창업 전선에 나선 주부 창업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창업이란 한 마디로 인생의 종합예술이라고 정의 내리는 김영희 대표는 직원관리 고객관리 상품관리 경쟁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문제를 극복할수록 힘이 생기고 성장하는 게 창업이라고 강조한다. 김대표의 꿈은 동태찜이 중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층까지 즐기는 메뉴가 되어 전 연령대에서 사랑받게 되는 것이다. 동태찜이라는 블루오션 분야를 만든 만큼 ‘동태찜에 국민 요리’라는 타이틀을 달아가는 것이 목표다.

어려움이 닥쳐도 고민만 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면 힘이 나고 돈이 벌리는 짜릿한 기쁨을 맛보는 경험의 연속이 창업이라는 것이다 .

◆ 김영희 대표의 성공 비결 

1. 좋아하고 잘하는 요리 솜씨를 살려서 창업을 했다. 친정엄마에게 물려받은 손맛으로 승부를 걸었다. 
2. 메뉴가 완성된 후에도 맛에 대한 탐구는 끊임이 없었다. 음식점의 핵심인 맛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놓치지 않았다. 
3. 과욕을 부리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하며 안정적으로 기업을 키워나갔다. 
4. 핵심 노하우를 지키기 위해서 특허를 획득하고 소스 제조 공장을 설립했다. 
5. 품질유지를 위해서 식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6. 직원이 돈을 벌어준다는 생각으로 직원과의 관계 유지에 신경을 썼다. 
7. 무작정 하지 않고, 더 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8. 어려운 시기에도 동태찜에 대한 전문성을 놓치지 않았다. 
9. 뭐든지 남다르게 차별화하려고 노력했다. 동태찜이라는 메뉴도 남다르게 하려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10. 모르는 분야는 끊임없이 새롭게 배우려는 학구열을 지녔다. 

 

▲ ※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창업컨설턴트 및 칼럼니스트.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세종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렛비즈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협업상생위원장, 올바른창업포럼 대표회원이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KFCEO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Entrepreneur MBA 과정, 경희사이버대 호텔관광학과 MBA과정,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창업과 프랜차이즈 부문 강의를 맡았다. 지난 20년간 창업, 신사업 개발 및 유통 프랜차이즈 분야에서 아이템선정 및 사업타당성 분석, 마케팅 및 경영 전략 컨설팅 업무를 수행해왔다. 저서로 <탈샐러리맨 유망사업정보>, <맛있는 요리, 돈 되는 창업>, <실버정책과 창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