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금융시장에는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플레이션 기대감에 따른 주식시장 상승과 금리상승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주식시장은 폭락하고 이러한 공포분위기는 저금리 기조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예측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달러 강세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회복 기대감에 주식 및 채권시장이 반응한 것과 비교하면 달러 강세 현상은 분명 이상하다. 인플레이션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면 대표 안전자산인 달러는 그 가치가 하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 기준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다는 점은 달러 강세를 지지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달러강세는 여타 요인보다 금리인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코노믹리뷰>는 지난 12일 ‘트럼프의 ‘달러약세’...그 퍼즐은 아직 맞춰지지 않았다’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달러 강세 기조가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달러 강세가 지속될수록 향후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될 수 있음을 뜻한다.

한편,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18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당선 이후 나타난 가파른 달러 강세, 정말 기대감 때문인가”라고 물으며 이에 대해 “달러 초강세는 기대요인 때문이 아닌 시장의 내재된 공포의 발현일 가능성”이라고 언급했다.

달러는 대표 안전자산으로 강세를 보일 경우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본다. 반면, 주식시장의 상승과 채권시장의 하락은 위험선호현상을 뜻한다. 현재 시장에서는 안전자산 및 위험자산 선호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어 혼돈스러운 것이다. 한편, 또 하나의 대표 안전자산인 금은 트럼프 당선 이후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금가격 하락은 달러 강세에 반응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정리하면, 주식·채권·금시장은 위험자산 선호를 말하지만 달러는 강세를 보이며 ‘나홀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틀린 것일까. 달러인가. 아니면 여타 자산시장인가.

▲ 출처:한국거래소

<이코노믹리뷰>는 지난 3월 9일 ‘'안전자산' 상징 금(金)...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의 성격이 안전자산보다는 투자대상 중 하나로 바뀌었음을 설명했다.

이어 S&P500 지수와 금가격 추이를 비교하며 2012년 이후 금가격의 하락은 지수대비 오버슈팅의 결과로 해석했다. 반대로 S&P500 지수의 상승세가 두드러지면서 향후 금 투자 시 단기적으로 상대적 수익률은 높을 수 있으나 ‘영원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3월 이후 금가격은 7월까지 상승세를 보였으나 이후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역사적 고점을 돌파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이 안전자산의 성격보다는 투자대상 중 하나로 바뀌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일부 퍼즐이 맞춰진다. 금가격 하락은 ‘글로벌 유동성 축소’에 대비하는 것이며 달러강세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이라는 뜻이다. 다만, ‘유동성 축소=위기’라는 판단은 현 시점에서 섣부르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의 역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내리고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QE)를 실시한다. 이로 인해 달러는 시장에 그 어떤 통화보다 풍부해졌으며 그만큼 달러의 가치는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정책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인위적으로 억제한 요인이 됐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달러는 위험선호 및 차입수요와의 연관성이 높아졌다. 달러 강세는 은행 대차대조표에 축소압력을 가하고 은행의 위험감수능력을 약화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달러는 차입/위험회피를 암시하는 지표로서 변동성지수(VIX)보다 더 적합한 공포지수가 됐다고 분석했다.

▲ 출처:동부증권

이를 방증하는 것이 CCBS(Cross-Currency Basis Swap) 스프레드 역전 괴리현상의 지속이다. CCBS 스프레드는 달러 리보 금리와 외환스왑에 내재된 달러금리 차이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0’에 수렴해야 한다. 두 달러조달 금리가 다르면 차익거래가 가능해 괴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CCBS 스프레드는 만성적인 마이너스다.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 차익거래는 은행을 통한 차입과 대출을 수반하는데 현재 CCBS 스프레드 역전괴리 상황의 지속은 차익거래에 투입할 은행의 가용자본 부족 또는 대차대조표 압박에 의한 은행의 위험감수능력 저하를 의미한다.

이중 문홍철 연구원은 “현재 주요 대형은행들의 높은 자본수준을 감안하면 후자의 설득력이 높다”고 주장했다.

VIX지수만 보면 현 시장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이는 현재 주식·채권·금시장의 방향성이 옳다는 점을 지지한다. 반면, 달러가 VIX지수를 대신할 새로운 공포지수라면 여타 주식·채권·금시장의 방향성은 이전과 다르게 급변할 수 있다. 달러는 ‘위험선호’가 아닌 ‘위험회피’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요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 출처:동부증권

지난 14일(현지시간) 짐 폴슨 웰스캐피탈매니지먼트 투자전략가는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그 속도가 인플레이션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는 연준의 늦장 대응이 자산버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폴슨의 지적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에 미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달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달러가 약세로 반전된다 해도 그 의미가 ‘위험회피’에서 ‘위험선호’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 글로벌 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만약 오는 12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다면 시장참여자들은 주식·채권·금시장이 이전과 반대로 움직이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달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는 시장에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을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