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다 HR-V / 출처 = 혼다코리아

혼다 CR-V가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꿰차고 렉서스가 강남 도로 위를 점령하던 시대가 있었다. 닛산 큐브가 ‘박스카’의 개념을 처음 들여오고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의 대명사로 취급받았다. 2000년대 초중반 ‘일본차 전성시대’ 얘기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차는 디젤 세단을 앞세운 독일차 공세에 밀려 그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표 브랜드 혼다 역시 ‘암흑기’를 보냈다.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이는 상황. 혼다코리아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 완성’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때마침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디젤 게이트’에 대응해 주력 가솔린 세단 모델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혼다코리아, 반전 드라마를 쓰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등 ‘독일 4사’가 수입차 시장을 점령하던 시절 혼다코리아는 그 명맥만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2014년 판매량은 3601대로 점유율 1%대에 머물렀다. 2015년 4511대로 실적이 소폭 개선되긴 했으나 브랜드별 판매 순위는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 혼다코리아 동대구 서비스센터 전경 / 출처 = 혼다코리아

업체 입장에서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상황. 혼다코리아는 국내 시장에 SUV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시장의 흐름을 파악한 것이다. 1년여 사이 대형 SUV 파일럿과 소형 SUV HR-V를 연이어 들여오며 라인업을 강화했다. 할인 프로모션과 홍보 영상 제작 등 마케팅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혼다코리아는 2016년 10월 국내 시장에서 917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2015년 10월(132대) 대비 594% 급증한 수치다. 수입차 브랜드별 판매 순위 4위 자리를 꿰차고 점유율도 4.45%로 끌어올렸다. 올해 1~10월 누적 판매도 5626대로 선전하고 있다. 전년 동기(3802대) 대비 판매가 48% 늘었다.

폭스바겐이 ‘디젤 게이트’와 판매 정지로 주춤하는 사이 반사이익도 일부 누렸다. 국내 시장에서 SM6, 말리부 등 세단 모델들의 부흥기가 열리면서 어코드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한 결과였다. 혼다의 글로벌 베스트셀링 세단 어코드는 2016년 10월 한 달간 561대가 팔리며 수입차 베스트셀링 모델 순위 7위에 올랐다.

▲ 혼다 CR-V / 출처 = 혼다코리아

업계 한 관계자는 “2016년 들어 수입차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디젤차에 대한 절대적 수요가 줄고 가솔린차가 그만큼 약진한 것이다. 폭스바겐의 주력 모델이 판매 정지 처분을 당하며 강제로 일어난 변화이긴 하지만 고객들이 가솔린차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며 “이 같은 상황에 가솔린·하이브리드를 주력 모델로 삼는 일본차 점유율이 많이 높아졌고 혼다 역시 SUV 라인업 강화 등 적절한 공략법을 내놓으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분석했다.

SUV ‘삼총사’ 고객 心 잡는다

혼다코리아는 소형부터 대형까지 SUV 풀 라인업을 갖춰 국내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고 있다. 가장 먼저 출시된 중형 SUV CR-V는 1995년 글로벌 출시 이후 160여개국에서 700만대 가량 팔린 인기 차종이다. 국내에는 2004년 처음 출시,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TOP 3’에 들며 선전했다.

▲ 혼다 CR-V / 출처 = 혼다코리아

4기통 2.4ℓ 직분사 엔진을 얹고 무단변속기(CVT)를 조합해 승차감을 향상시켰다. 최고출력 188마력, 최대토크 25.0㎏·m 수준의 힘을 발휘한다. 공인복합연비는 11.6㎞/ℓ를 기록했다. 가격은 3890만~4070만원이다.

혼다코리아는 2015년 10월 CR-V에 이어 8인승 프리미엄 SUV 파일럿을 선보였다. 이 역시 북미에서 매년 10만대 이상 팔리며 상품성 검증을 마친 차다. 국내에 들어오는 차량은 3세대 모델이다. 제원상 전장 4955㎜, 전폭 1995㎜, 전고 1775㎜, 축거 2820㎜의 크기를 지녔다. 기존 모델 대비 전장이 80㎜ 길어지고 전고가 65㎜ 낮아졌다.

▲ 혼다 파일럿 / 출처 = 혼다코리아

프리미엄 SUV인 만큼 공간 활용성이 훌륭하다. 1·2열은 물론 3열의 탑승 공간도 넉넉하게 확보했다. 3열 시트에 3명이 앉을 수 있는 구조로 8명을 태울 수 있다. 3열 뒤 트렁크 공간은 기본 456ℓ를 제공한다. 3열을 접을 경우 1325ℓ, 2열까지 폴딩할 경우 2376ℓ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V6 3.5ℓ 직접 분사식 i-VTEC 엔진을 품었다. 최고출력은 284마력, 최대토크는 36.2㎏·m에 이른다. 운전 조건에 따라 기통 모드를 변환하는 가변 실린더 제어 기술 ‘VCM’이 적용됐다. 6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8.9㎞/ℓ의 연비 효율을 보여준다. 가격은 5460만원이다.

▲ 혼다 HR-V / 출처 = 혼다코리아

최근 출시된 소형 SUV인 HR-V는 ‘작지만 알찬 매력’이 강조됐다. 2열에 ‘매직시트’라는 기능을 추가해 개성을 살렸다. 시트를 최대 126㎝까지 높인 뒤 고정시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뒷좌석에 화분, 유모차 등을 유용하게 실을 수 있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2열을 통째로 접을 경우 최대 1665ℓ의 적재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HR-V는 1.8ℓ 4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CVT와 조화를 이뤄 6500rpm에서 143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4000rpm에서 17.5㎏·m의 최대토크를 낼 수 있다. 1340㎏의 가벼운 차체를 바탕으로 날렵한 달리기 성능을 보여준다. 가격은 3190만원이다.

혼다코리아는 11월 한 달간 HR-V 구매 고객에게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연장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40만원의 추가 할인을 적용하거나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골자다. 신차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 혼다코리아 동대구 서비스센터 / 출처 = 혼다코리아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혼다의 ‘SUV 전략’이 시장에서 먹히고 있는 분위기”라며 “향후 네트워크 확장과 더불어 국내 시장에서 이미 한 차례 실패를 맛본 소형차(시빅), 대형차(레전드) 등을 성공적으로 다시 들여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