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운 새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1958년 농촌 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참새떼가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장면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로는 전격전. 그의 한 마디에 당시 중국 정부는 ‘참새 섬멸 총지휘부’를 개설하고 전국의 참새를 포획하는 작전을 펼쳤다. 오랜 내전을 거치고 새롭게 탄생한 중국의 식량문제 해결에 고심하던 마오쩌둥이 내린 결단이었다.

당장 1958년 4월 19일 새벽 4시를 기해 베이징 시민 400만명이 동원된 참새 포획작전이 시작됐고 이후 작전은 중국 전역으로 번져 무려 2억1000만 마리의 참새를 죽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참새가 줄자 먹이사슬이 파괴되어 해충들이 창궐해 식량문제가 더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1958년 한 해에만 무려 170만명이 아사하는 대기근이 일어났고,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소련 정부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공수하는 기막힌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나라가 온통 난리다. 비선실세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100만개의 촛불이 타올랐고, 아직도 어둠 속에 숨어 부를 축적했던 이들의 새로운 혐의가 마치 양파 껍질처럼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창조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또 다른 비선실세 차은택이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부터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그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인 창조경제가 시작부터 부정당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 부흥을 위해 472억원의 예산을 요청했으나 이미 대폭 삭감될 조짐이며, 지방정부차원의 예산 삭감도 불가피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일각에서는 ‘창조경제 간판을 내리더라도 창업 정책은 힘 있게 끌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국정 철학에 비선실세의 한탕주의가 도사리고 있지만, 근본적인 방향성은 옳기 때문에 지금의 스타트업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꿈을 꾸는 스타트업 창업자는 죄가 없다. 지킬 것은 지키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 상황에서 창조경제와 스타트업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등장한 미래창조과학부와 더불어, 창조경제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 해석이 롤러코스터를 탔던 지점을 살펴보자. 당시 정부는 창조경제를 두고 국정 철학이라는 거창한 패러다임을 걸었으나 그 누구도 개념을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과학일까? ICT일까? 문화와의 융합일까? 정부는 “왜 이해를 못하나, 답답하다”고 발을 굴렀고 반대편에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해를 하나”고 분통을 터트렸다. 블랙코미디다.

그렇게 표류하던 창조경제는 느닷없이 스타트업의 끈을 잡았다. 2000년대 초 버블닷컴의 공포를 여전히 기억하는 상황에서 모바일 혁명과 더불어 기존 대기업의 영역을 넘나드는 스타트업 열풍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여겨지자, 정부는 ‘창조경제=스타트업’이라는 패러다임을 황급하게 붙잡았다는 뜻이다. 구글 캠퍼스 서울 개소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고, 엄청난 정책지원금이 중소기업청과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백화점 바겐세일처럼 업계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래서 ‘창조경제라는 간판을 내리고 창업 정책은 힘 있게 끌고 가자’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창업정책을 힘 있게 끌고 가려면 창조경제라는 간판을 내리는 선이 아니라, 아예 산산조각 내어 부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뜻도 제대로 모르는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스타트업에 어색하게 연결한 원죄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엇인데 창업 정책에 연결했나? 창조적인 경제가 창업만 해당되는 것인가? 100만 촛불시위를 통해 광화문 일대 양초 판매가 급증한 것도 창조경제다. 애초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고 개념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그저 ‘창조경제는 창업이다’는 정부의 말에 우르르 따라갔을 뿐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한, 미국에서 스타트업 20만개를 공수해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창조경제가 ‘악(惡)’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창업 정책에 있어 무리하게 창조경제를 말하지 말고, 전혀 다른 독립적이고 투명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창업만을 위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흑묘백묘(黑猫白猫)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개방을 끌어냈던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을 다녀와 한 말이라고 한다. 창업 정책에 창조경제라는 말이 없으면 어떤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