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대한민국 온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두 번이나 발표했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까지 던졌지만 민심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급기야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합의로 추천한 총리에 내각을 통할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야 3당은 박 대통령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권한을 이양할지가 불분명하고, 2선 후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면서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간지 등 주요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살라미 전술을 구사한다고 논평했다.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이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의 소시지 '살라미(salami)에서 따온 말로, 하나의 과제를 두고 이를 부분별로 세분화해 쟁점화 함으로써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전술을 말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목표를 단숨에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최대한 잘게 나누어 차례로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해나가는 전술이다.

2007년 7월 한국인 23명으로 구성된 선교단체가 아프간으로 선교 활동을 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피랍되었다. 탈레반의 요구조건은 아프간 주둔 한국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고, 우리나라에 US달러 10만달러와 아프간에 잡혀있는 탈레반군과 피랍된 인질과 맞교환을 요구했다. 납치된 지 14일 째, 탈레반 세력은 故 배형규 목사를 살해한 뒤 닷새 만에 故 심성민 씨를 살해했다. 무장단체세력은 수감자 맞교환이라는 목표 달성에 성과가 없자 남자 인질을 중심으로 한 명씩 살해하며 목표를 계속해서 달성하려 했다.

텔레반군 사례처럼 살라미 전술은 상대에게 한 단계씩 요구할 때 수위를 높여서 제안한다. 첫 번째 제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두 번째 제안은 더 쎄고, 더 강한 제안을 던져 상대가 결국 꼼짝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협상 전술은 살라미 전술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젠다를 추가하는 전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의 추가 제안에 야당과 국민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분노를 더 크게 키웠기 때문이다.

2013년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금지할 때에도 ‘살라미 전술’을 구사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의 근로자 철수를 지시하고 그 다음엔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하고 개성공단 내 우리 측 자산 동결 및 몰수 등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밟아갔으며,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대량살상무기를 최대한 활용하며 잘게 나누어 사용해왔다. 그 후에도 북한은 현안의 단계를 잘게 나누어 단계별로 이슈화하고 이를 빌미로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최대로 얻어내는 전술을 활용해 왔다.

살라미 전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북한이나 텔레반군처럼 막강한 협상력 우위에 있어야 한다. 소위 ‘갑’의 입장에 있을 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거나 잃을게 많은 ‘을’은 갑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즉, 북한이나 텔레반군처럼 ‘갑’의 입장이 아니면 신뢰의 틀 속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협상에서 실패한 이유는 위 두 가지 모두 해당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지만 신뢰를 상실했다.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의 제안은 어떤 협상과 전술을 활용하더라도 통하지 않는다. 여러 단체의 시국선언과 대규모 집회, 중·고등학생조차 거리에서 하야를 외치는 상황에서 절대 권력의 힘은 무력화되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협상에서는 상대의 욕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의 욕구를 제대로 읽고 국민이 요구하는 그 이상을 제안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대통령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동정심이 확산되면서 사태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제안은 진정성이 동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