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평범한 직장인 권기중(가명, 30세)씨는 고려대 인근 낡고 허름한 주택가에서 룸메이트와 보증금 없이 월 22만원씩 나눠내다가 최근 장한평역 인근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 40만원인 '반전세'로, 시설이 깨끗하고 역세권 입지가 가장 맘에 들었다. 모자라는 보증금 1500만원은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로 충당했다. 모아둔 돈을 보태 이자와 공과금 포함 한달에 월 60만원을 내야한다. 경제적으로 버겁지만 이제 살만한 느낌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부동산 11.3대책 여파에도 타격을 받지 않는 세대가 있다. 분양 시장과 별개로 보증금도 여유 없는 2030 사회초년생들은 대학가 원룸촌에서 벗어나 역세권 오피스텔로 주거공간의 상향을 꿈꾸고 있다.

임대로 도시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빠듯한 월급으로 매달 내는 월세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서울 청년 3명 중 2명이 소득의 30% 이상 주거비로 부담하고 있다는 여러 통계자료에서 보듯 말이다.

청년들의 주거난 문제가 커지면서 '월세세대' '청년난민'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이들이 그래도 살아남는 법은 전세자금대출을 끼고 회사와 가깝거나 이동이 편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청년 임대족, 학자금대출에서 전세자금대출로

'청년난민'들이 좀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결국 전세자금대출이다. 보증금 500/50만원, 1000/45만원을 수준의 원룸 자취방에 '제2의 월세'로 불리는 관리비, 전기세, 수도세 등 각종 공과금 등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보증금이 높은 전세에 관심을 두고 거주환경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무성(가명, 33세)씨도 6개월 전 노후한 다세대주택에서 보증금 없이 월 55만원에 살다가 회사 주변 1억 5000만원짜리 전세로 이사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놨던 자금 8000만원을 보태서 모자란 돈은 대출받았고, 전세금 반환보증까지되는 '안심형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했다고 한다.

올 봄에 출시된 '안심형 버팀목 전세대출'이 깡통 전세를 보호하면서 3% 이하 저리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도가 1인 기준 수도권은 최대 1억 원, 그 외 지역 8000만 원까지 가능하고 대상주택은 도시지역 기준 전용면적 85㎡ 이하의 전셋집까지 가입할 수 있다. 주택도시기금 수탁은행인 우리·KB국민·신한·KEB하나·NH농협의 전국 지점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출처=hug 홈페이지

하지만 2년 일시상환으로 기한 연장시 최초 대출금의 10% 이상 상환해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환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 0.1%금리가 가산된다. 때문에 학자금 대출과 전세대출이 함께 있는 사회초년생들의 어깨의 짐은 무겁기만 하다.

대기업 직장생활 4년 차에 접어든 김동성(가명, 32세)씨는 “학자금대출 갚고나니 전세자금 대출로 옮겨왔다”라며 “일반 아파트를 빚내는 경우에는 시세차익이라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전세라서 그런 것도 없다. 자동차도 사고 싶고 대학원도 가고 싶어 결혼을 가장 후순위로 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DB

행복주택은 태부족…2030역세권 청년주택은 ‘고가월세’ 오명

청년들을 위한 주거정책 혜택이 한정돼 있는 건 분명하다. 수요는 많은데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젊은계층의 80%가 이용할 수 있는 '행복주택' 역시 사회초년생들의 관심이 높은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6월 행복주택 첫 모집지구인 서울가좌, 서울상계장암, 인천주안, 대구혁신도시 4곳에는 2만 3000명 입주지원자 가운데 절반이상의 57.2%(1만2039명)가 사회초년생이었다는 것만 봐도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사당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자취하고 있는 직장인 임세리(가명·27세)씨는 “행복주택에 들어가고 싶어도 해당지역에 직장이 있지 않아 입주요건이 되지 않았다”라며 “직장동료는 입주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관문을 뚫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행복주택 가좌역 지구의 사회초년생 우선공급분(전용 29㎡) 1가구에는 2012명이 몰리기도 했다.

또 행복주택은 해당지역에 신청자의 직장이 있어야 하고, 사회초년생의 경우 본인소득이 평균소득 80% 이하, 5년 10년 공공임대주택 자산 기준 충족해야하는 등 경쟁률을 떠나 자격요건도 만족해야 거주할 수 있다.

이에 사회초년생들의 시선이 서울시 청년거주 지원책 ‘2030역세권 청년주택’에 쏠리고 있다. 내달 첫삽을 뜰 예정인 청년주택은 서울 삼각지·충정로·신논현 역세권 등에 지어질 예정이다.

직장인들이 선호할만한 지역이지만, 이 역시 임대료가 주변 시세의 90% 수준인 민간주택으로 고액 월세주택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지역 공인중개 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용산 삼각지 원룸의 대략적인 시세는 보증금 1000/50~60만원선이다. 충정로 3가의 대략적인 원룸은 보증금 1000/55만원이나 10000/20만원 수준이다. 청년주택이 입주할 시점인 2019∼2020년께 주변시세 대비 임대료 책정수준이 어느정도 일지, 또 청년의 주거비 부담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을 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올 1분기부터 본격적인 공급이 시작된 행복주택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청년들의 주거의 질이 다소 나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14만호 행복주택 입지를 확정했으며, 이번 4분기에는 인천서창2(680가구), 파주운정(1700가구), 의정부민락2(812가구), 익산인화(612가구), 김해진영(480가구) 등에서 공급될 예정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행복주택, 2030 역세권 청년주택 등 공공주택 건설은 집값 하락 등의 이유로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데다 건립부지 부족, 공공에서 댈 수 있는 비용의 한계가 있다"라며 "그래도 임대료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청년 주거난해결에 핵심포인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