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마포 할머니 빈대떡’ 창업주 서문정애 할머니가 호박전을 부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막걸리와 어울리는 빈대떡과 각종 튀김, 전 등이 수북이 쌓여 있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시장’ 골목에는 언제나 고소한 내음이 감돈다. 원조마포할머니 빈대떡집을 찾았다.

5호선 공덕역 5번 출구로 나와 공덕시장 쪽으로 직진하다보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족발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이 나온다. 삼삼오오 모여 술안주로 먹음직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에 시선을 뺏기다 문득 밀려오는 고소한 냄새에 고개를 들어보니 너비 2m 정도의 넓지 않은 골목에 마치 뷔페처럼 즐비하게 튀김과 전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공덕동 빈대떡, 튀김 골목이다. 사실 튀김골목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과장된 감도 없지 않다. 원조마포할머니 빈대떡집과 맞은편 청학동 빈대떡, 두 집이 전부다. 그런데 워낙 쌍둥이처럼 같은 인테리어에 적지 않은 규모로 골목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장사를 하다 보니 이 두 집만으로도 빈대떡 골목이 성립이 된 것이다.

30년 한결같은 전라도 후한 인심
평일 저녁 6시의 공덕동 빈대떡 골목은 상당히 분주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튀김을 고르는 사람들부터 종류는 상관없이 주인장 마음대로 올려놓은 온갖 종류의 모듬전을 이미 막걸리와 함께 즐기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공덕동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어가요. 그 전에는 과일 장사, 꽃 장사, 아이스크림 장사 등 10년간 안 해본 게 없었죠.” 이곳의 창업주인 서문정애(76) 할머니의 말이다. 성이 ‘서문’이라 하니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성(姓)이라고 한다.

40년 년 결혼 초인 1970년대 중반, 그녀는 전주에서 남편과 함께 상경해 공덕동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리어카 과일장사 등 안 해본 일 없이 일을 했다. 그러다 그나마 장사밑천이 덜 드는 빈대떡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고, 말도 마요.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야. 하루 종일 부치고 지지고 나면 밤에는 다음 날 먹을 재료 준비에 김치 등 밑반찬도 만들어야 해요.”


그녀는 처음에는 술 손님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 5년간은 술을 팔지 않았다고 한다. 빈대떡에는 막걸리가 제격인데 그 술을 팔지 않았으니 술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어디 가만있었겠는가? 그들은 허리춤에 막걸리 한두 병씩 꿰차고 와서 “팔지 않으면 갖고 와 먹어도 되느냐” 물어봤고 그것까지 말릴 수 없었던 서문 할머니는 그 정도는 눈감아 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두 명씩 술을 갖고 와 마시기 시작했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두세 병째부터는 할머니에게 술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 결국 서문 할머니는 5년간을 이문 없이 술심부름만 해줬다.

말 그대로 후한 전라도 시장 인심을 아낌없이 발휘한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옆 가게를 사들여 점점 확장해 나갔고 전도 몇 가지만 부치던 것이 지금은 약 40여 종의 튀김과 전을 부치고 있다. 하루 부치는 전 개수만 100개에서 많게는 300개라 하니 이젠 할머니 혼자 할 수 있는 가게 규모를 거뜬히 넘겨버렸다.

입가심으로 매콤한 홍어회 강추
가게가 성행하자 2000년 정도부터 딸 이순애(48)씨와 아들 이수일(44)씨 부부도 함께 동참했고 현재는 아들, 딸, 며느리까지 24시간 연중무휴로 빈대떡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들과 딸들이 합류하며 할머니는 생각도 못했던 인터넷 홈페이지 주문도 받는다고 한다.

“전을 부칠 때는 불의 세기가 중요해요. 호박, 깻잎 등은 약한 불에 해도 되지만 동태전은 적당히 센 불에 부쳐야 고기 살이 흐트러지지 않아요. 너무 자주 뒤집어도 안 돼요. 노루크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집어야 힘이 있지. 자꾸 뒤집으면 전에 힘이 없어.”

맛있게 전을 부치는 요령에 대해 물어보니 불의 세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뭐니뭐니 해도 재료가 싱싱해야지. 전이란 게 야채도 싱싱하고 계란도 싱싱해야 맛이 나는 거예요. 계란 한두 개만 오래된 것을 넣어도 계란 전체 느낌이 달라져. 기름도 시커매지기 전에 버려줘야 하고.”

양질의 재료를 사용하며 아직도 모든 튀김과 전에 들어가는 소금 간과 재료들은 그 양을 직접 지휘한다는 서문할머니. 그래서일까? 적당한 간과 튀김의 부드러운 정도가 남다르다. 소의 허파전이 좋아 10년 전부터 이곳을 찾았다는 허순옥(42)씨가 추천해준 대로 한 접시 가득 찬 모듬전 중 허파전을 조심스레 먹어보았다. 보들보들, 고소한 맛이 전혀 비리거나 느끼하지 않다.

고추의 매운 맛과 깻잎, 호박 등 야채의 살아있는 맛을 느끼며 매운 고추와 생양파가 들어있는 간장에 찍어먹는 맛이 꽤 쏠쏠하다. 느끼하다 싶을 때면 반찬으로 나온 매콤한 홍어회를 곁들여 입 안의 기름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시원하게 막걸리 한 사발, 주욱!

참으로 기분 좋은 맛이다. 시장 한복판에서 소박하게 먹는 각종 전들과 막걸리 한 사발. 모듬전 대(大)자가 1만9000원이니 두세 명이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다. 밥을 곁들이고 싶다면 뚝배기 김치찌개나 전복라면 등도 별미다.

위치 : 지하철 5호선 공덕역 5번 출구 150m 직진
영업시간 : 24시간
문의 : 02-715-3775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