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세 가지 중요한 법칙이 있다. 첫 번째는 모두들 잘 아는 ‘무어의 법칙’이다. 트랜지스터 속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하는 현상이다. 다음은 메칼프(Metcalfe’s Law)의 법칙이다. 통신망의 가치는 연결된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생성되는 아이디어가 이용자 수의 제곱으로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크라이더의 법칙(Kryder’s Law)이 있다. 끝없이 증가되는 데이터를 저장할 메모리 용량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이젠 컴퓨터 속도보다 메모리 용량이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로 변해 버렸다. 이들 법칙이 가져오는 혜택은 지수함수적으로 불어나는 반면에 인류가 해결해야만 할 과제들은 더욱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현상을 막을 길 없다. 기업은 경쟁상대가 많아지고 기술의 독창성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 힘들어 졌다. 심지어 파괴적 혁신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 기존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들은 경쟁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시장을 상실하고 만다. 개인들도 급변하는 기술의 속성을 이해하고 업무 역량을 차별화시키지 못하면 도태될 위험이 크다. 기술발달이 제공하는 보편적 혜택의 수준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기술발달로 인해 경쟁사회에서 부딪히는 상대는 글로벌 강자들이고, 이들을 극복하지 않고는 그나마 유지하던 시장도 잃게 되고 개인의 일자리도 사라지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밀려오는 기술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결국 좋은 도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훌륭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란 표현은 자칫 인간지능과 같은 의미로 인식되기 쉬워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대체하거나 곧 초월하게 된다는 일부의 주장들이 대중에게 기술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역작용을 일으켰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역할이나 응용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깊어지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상당히 높아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주장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개발에 앞장선 미국의 선두 기술기업들이 기술개발 협의체를 구성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인공지능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쓰겠다는 다짐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인공지능의 윤리나 법률 그리고 표준을 정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관련 기반을 다져나가는 방향으로 정부가 기술개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을 직접 개발하는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의 기술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두뇌작용에 대적할 수 없는 기술적 편린(片鱗)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자율동작로봇의 지능으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을 자문하고 지원하는 기술로 발전시켜 인간의 인지능력을 강화하는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기계가 사람의 인지능력을 흉내 내는 기술이 인공지능이라면 증강지능은 사람의 지능이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향상되는 경우이다. 인공지능은 주판에서부터 계산기를 거쳐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정보처리 능력을 확장시켜 주었던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증강지능의 도구로 발전시켜야 한다.

증강지능은 실제로 모든 기술들의 작용을 포함한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증가시키고 진화시켜서 더욱 많은 잠재력을 갖게 한다는 의미이다. 미디어 이론, 인지과학, 뇌 과학, 심리학 분야에서는 증강 지능이란 표현을 사용해 왔는데 컴퓨터 기계 등에 의해 기억술 등 인간의 인지능력이 확장된 상태를 말한다. 동의어로는 증강된 인간지능, 기계로 증강된 지능, 또는 지능증폭이란 표현도 사용한다. 특히 확장된 마음, 확장된 인지, 외형주의, 분산인지, 사회적 두뇌 등도 인지과학이나 심리학에서 종종 거론하는 용어들이다. 증강현실, 가상현실, 원격이동 등의 기술들은 증강지능의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두뇌의 인지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술들이 증강지능 작용을 하며 두뇌-컴퓨터 상호접속기기를 이용해서 뇌신경세포의 전자기파를 감지하고 외부 기기를 이용해서 인지작용을 조정하는 엑소셀프(Exo-Self)나 엑소보디(Ex-Body) 기술들도 증강지능 기술에 속한다.

 

기술에 적응해서 지적판단능력을 높인다

기술발달로 인해 삶의 여건은 향상되고, 많은 사람들이 빈곤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나이는 증가해도 신체와 두뇌건강은 유지되니 언제 수명을 다하게 될지 짐작하기 힘든 세상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지식은 쓸모없어지고 직장에서 보고 들은 경험조차도 어쩌면 곧 쓸모없어진다. 비즈니스 무대가 온라인화되면서 지역 구분이 사라지니 온라인 중개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사회 변화에 따라서 행동양식을 적응해갈 수밖에 없다. 서점에서 책을 사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고 심지어는 전자책을 구매하여 태블릿으로 읽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으로 문서를 주고받고, 문서를 클라우드에서 작성하고 수정하고 저장하는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된다. 이제는 음성으로 문장을 입력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에서 메시지를 작성하느라 손가락 묘기를 부릴 필요가 없어졌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에 물어보고, 스마트폰은 검색결과를 말로 답해 주는 세상이다. 자질구레한 지식으로 유식한 척하던 시절은 지났다. 궁금해서 스마트폰에 물어보면 지체 없이 알려준다. 사고 싶은 상품도 스마트폰으로 조사한다. SNS에 도움을 청하면 정보가 쏟아지고 여기 저기 알아보면 사용자 후기가 즐비하다. 직접 시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간접경험이 풍부해진다.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조차 온라인에서 소비한다. 현재의 기분 상태, 아침식사를 무엇으로 했는지, 어떤 내용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지, 무슨 물건을 사고 있는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모두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소통하고 결정한다. 정보가 필요하면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아주 빠르게 찾아낸다. 우스갯소리로 눈치 빠른 젊은이가 스마트폰에서 검색한 정보가 대통령이 비서진으로부터 보고받는 정보보다 더 최신 정보일거라는 말이 있다. 현대 젊은이들에게 세상의 변화는 당연하며 세상을 앞서가려면 기술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민첩하게 사고해야 한다. 인터넷, SNS, 나아가서는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술은 인간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기술변화에 적응하면 할수록 지적 판단력이 높아지고 지능이 증강되는 효과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오래된 관행들을 파괴하고 사회의 작동 원리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기술발전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턴 기술이 드러나 보이지 않아도 생활의 도처에 기술의 작용이 스며들어서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물지능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2030년쯤 되면 강력한 기술 장치들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할 텐데 장치 크기가 너무도 작아서 구별해내기 힘들 수 있다. 새로운 기술들은 디바이스로 보이지 않고, 인터페이스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키보드나 마우스 또는 멀티터치 식의 입력장치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이 옷 속으로 침투하고,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자동차 속이나 사무실 또는 몸 속으로 침투하지만 우리는 특별히 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다. 이런 기술 장치들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 성능은 지금의 장치들이나 디바이스에 비해 수천 배 강력해질 수 있다. 이들 기술 장치 속에 삽입된 맞춤형 인공지능 비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한 주변 정보를 항상 실시간으로 혼합현실 안경 너머로 비춰주게 된다. 어쩌다 관심사를 질문하면 지식 클라우드에서 자료를 간추려 그래프 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인쇄해줄 수 있다. 지능능력의 증강효과는 항상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효과와 비슷해진다.

 

인공지능의 굴레를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인간성을 위협하게 될 거라고 전망했지만 오히려 인체의 지적판단 능력을 강화시키는 증강지능효과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두뇌는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그랬듯이 어려운 도전과제를 만나서 어렵게 극복할 때마다 성장하곤 했다. 그런 어려운 도전과제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지능은 감퇴할 수 있다. 지금은 인간이 뭘 모르는지도 모를 정도로 밝혀지지 않은 지식이 많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자문으로 당분간은 지능이 증강되는 효과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인공지능이 시시콜콜한 일까지 조언해주는 상황이 되면 인간의 두뇌는 할 일이 없어지고 끈질김도 없어진다. 조금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도 곧바로 인공지능에게 묻게 되고 기계의 판단에 의존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인공지능이 인체를 증강시킬수록 오히려 인간의 두뇌는 자생력을 상실해 가는 모순적 상황이 초래될 위험이 매우 높다.

증강지능 시대에 인재가 갖춰야 할 능력은 인공지능의 굴레를 벗어나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계적 통찰력을 인간의 지혜로 변환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의미를 주관적으로 의역하는 능력이다. 상황에 따라서 표현 방식도 바꾸고 상대에 따라서 느낌도 달리해서 전달하는 인간미를 가미할 줄 알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제를 벗어난 상상력을 가미할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실천력이다. 증강지능이란 인공지능이 주선하는 가치를 두뇌가 그대로 수용하는 능력이 아니고 인간의 지혜를 덧붙여서 가치를 새롭게 변환시키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