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그 그레이 6500’을 찬 오바마의 뒷모습. 출처=onthedash.com

"시계는 시계회사가 만들지만 시계의 품격은 그 시계를 찬 사람이 만든다" 2007년 1월 20일.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어느 날 갑자기 들어본 적도 없는 시계를 차고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오바마가 찬 시계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의 시계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블랑팡의 모델일 거야.” “아니야, 저건 특수주문한 시계 제작자의 시계일 거야.”

사람들은 오바마의 시계 모델이 무엇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이어갔고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지어 사진 분석가들까지 대동되어 시계의 모델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애틀랜타의 변호사 제프 스테인이 면밀한 분석 끝에 오바마의 시계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아냈다. ‘조그 그레이(Jorg Gray)’라는 생소한 시계회사에서 만든 '조그 그레이 6500'이라는 모델. 그것은 겨우 325달러의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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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선택

▲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는 시계를 즐겨 찼던 버락 오바마(左), 로스쿨 졸업 당시 기념촬영. 출처=onthedash.com

미국 44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 재임에 성공하며 역사에 남을 지지율을 보여준 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는 시계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사진에도 오바마의 손목에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고, 하버드 로스쿨 졸업 기념사진에서도 전자시계를 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태그호이어 투-톤 다이버 워치 1500을 착용한 오바마. 출처=onthedash.com

하버드 로스쿨 졸업 이후 1992년부터 오바마는 시카고 로스쿨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오바마는 태그호이어의 투-톤 다이버 워치 1500을 착용하기 시작했고, 당선 직전까지 무려 17년 동안이나 줄곧 같은 시계를 착용했다. 연설을 할 때에도, 사석에서도 항상 이 시계가 목격되었다. 스트랩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같은 시계를 착용하는 소위 ‘줄질’을 하는 모습에서 시계라는 물건 자체에 대한 오바마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는 장소에 따라 과시용이 아닌 실용의 목적으로 시계를 바꿔 차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오바마는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건 현장에서는 등산용 전자시계를,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몸 쓰는 일을 할 때에는 뉴발란스 스포츠 워치를 착용하며 합리적이고 소박한 시계 마니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의 시간 조각

▲ 오바마 대통령이 선물로 받은 주문 제작 ‘조그 그레이 6500’. 출처=onthedash.com

오바마는 2007년 8월, 자신의 생일을 맞아 미 국토 안보부 소속의 비밀 경호국(Secret Service)요원에게 ‘조그 그레이 사(社)’의 ‘조그 그레이 6500’ 모델을 선물로 받았다. 언제나 깍듯한 예의로 요원들을 대했던 오바마를 향한 요원들의 작은 성의 표시였다. 이 시계는 비밀 경호국에서 주문한 기념시계로 시계의 다이얼에 경호국 마크가 찍혀있는 모델이다. 정식 가격은 325달러지만 기념품 제작으로 210달러에 공급된, 말하자면 판매도 할 수 없는 시계다. 놀랍게도 오바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 그레이 6500’을 손목에 찬 뒤 태그호이어의 시계를 서랍 안에 넣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 오바마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현장. 출처=onthedash.com

서로의 신뢰가 담겨있는 시계가 소중했던 것인지, 단순히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인지는 알 수 없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고 2009년 대통령 취임식 당시 오바마는 왼손에 링컨 바이블을, 손목에는 '조그 그레이 6500’을 차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조그 그레이 6500’만 착용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오바마가 그 시계를 선택한 이유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담하지 마시오

‘조그 그레이 사(社)’ 회장인 트레버 그네신(Trevor Gnesin)은 작은 시계회사를 운영하는 소박한 사람에 속했다. 무브먼트를 개발해 시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도 없었고, 그렇다고 잘 나가는 디자인을 카피해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트레버 그네신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시오,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이 당신네 회사의 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농담하지 마시오”

트레버 그네신은 전화 넘어 모르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그는 그 사람의 말을 강제로 믿어야만 했다. 애틀랜타 변호사 제프 스테인이 오바마의 시계가 ‘조그 그레이 6500’이라는 것을 알아낸 이후 폭발적인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 잘 나가던 시계가 아니니 당연하게도 재고는 순식간에 동이 났고 시계는 품귀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존과 다양한 시계 중고 사이트에는 ‘오바마 시계’라는 이름으로 시계를 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325달러의 시계는 순식간에 중고시장에서 1,500달러라는 가격으로 재판매되었다.

▲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조그 그레이 6500’ 오바마의 시계와 로고 위치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출처=조그 그레이

급기야 모든 공식 석상에 ‘조그 그레이 6500’을 차고 등장한 오바마의 만행(?)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조그 그레이로 울고 웃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오바마가 런던에 방문하면 영국에서의 홈페이지 접속이 폭주했고, 베른에 방문하면 스위스에서의 접속자가 트래픽을 차지했다. 결국 미국의 작은 시계 회사였던 ‘조그 그레이’는 하루아침에 전 세계에서 판매량이 가장 빨리 늘어난 시계회사가 되었다. 오바마의 긴 임기가 마무리되고 45대 미국 대선을 앞둔 지금까지도 ‘조그 그레이’는 ‘오바마 시계’라는 이름 아래 베스트셀러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미국인들의 눈에는, 아니 세계인들의 눈에는 패셔니스타를 앞세워 멋진 사진과 영상으로 광고를 하는 럭셔리한 시계보다 오바마의 소박한 시계가 더욱 빛나 보였다.

 

시계의 품격

▲ 오바마의 손목에 올려져 있는 ‘조그 그레이 6500’. 출처=onthedash.com

조그 그레이 시계는 오바마를 닮았다. 검은 다이얼에 합리적인 가격과 정확히 필요한 기능을 가진 부담 없는 시계. 이 시계는 사람들이 수수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지극히 그에 맞는 시계로 묵묵히 제 기능을 했고, 사람들이 오바마 시계라 부르며 프리미엄을 붙이는 동안에도 역시 대통령의 손목 위에서 묵묵히 시계로의 제 기능을 다 했다.

그와 그의 시계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이지만 저렴한 가격의 시계를 착용해서? 그건 아니다. 부시도 클린턴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30달러짜리 타이맥스를 찼지만 타이맥스의 판매량은 여전히 그대로다. 오바마의 시계가 유난히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한 해답은 오바마 자신이 남긴 말에 들어있다.

"인생을 돈벌이에만 집중하는 것은 야망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이다. 너 스스로에게 너무 적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야망을 가지고 더 큰 뜻을 이루고자 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2016년 현재, 45대 미국 대선이라는 큰 이슈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영향력을 가진 나라라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쥐게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 때문이기도, 혹은 민주당의 힐러리와 공화당의 트럼프 사이의 격전이 좋은 팝콘 거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버락 오바마’의 다음이 누구일지에 대한 걱정과 그에 대한 그리움이 이번 대선을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석1) 오바마의 ‘조그 그레이 6500’은 비밀경호국의 주문 제작 시계이기 때문에 원래 조그 그레이의 마크가 인쇄되어있는 곳에 경호국 마크가 새겨졌고 조그 그레이의 마크는 왼쪽 하단에, 시계를 착용하는 사람이 육안으로 보아도 힘들 정도의 작은 크기로만 새겨져 있다. 때문에 사진 복구와 전문가를 대동해서까지 이 시계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참고문헌>

onthedash.com / Barackswat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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