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뒤숭숭합니다. 며칠째 충격적인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어요. 덩달아 허접쓰레기 같은 뉴스도 판을 치고 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요.

이런 상황에도 현대자동차 그랜저는 고객들의 이목을 잘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6번째 완전변경 모델 출시를 앞두고 이곳 저곳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으니까요.

별다른 광고·홍보가 필요 없습니다. 성능·특징 등을 강조하지 않아도 돼요. “그랜저가 새롭게 돌아왔다.” 이거면 충분해요. 그랜저니까요.

아직도 ‘그랜저 = 고급차’라는 등식은 성립되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그랜저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때가 1986년이에요. 30년 동안 쌓아온 명성인 셈이죠.

문득 ‘이름이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이 가진 이미지가 세월을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현대차 쏘나타·그랜저 등이 그렇고 폭스바겐 골프·비틀 등도 마찬가지죠. 브랜드 인지도, 시장 상황 등 변수는 잠시 접어둘게요.

이름(名)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단체·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호’죠. 자동차 역시 이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차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슬란이 떠올랐어요. 2014년 10월 출시된 현대차의 전륜구동 플래그십 세단이죠. 수입차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태어난 내수 전략 차종입니다. 그랜저와 G80(당시 제네시스 DH) 사이에 자리 잡았는데,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제네시스 브랜드 독립 이후 현대차의 플래그십 모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존재감은 미미합니다. 상품성 개선 모델을 출시했음에도 월 판매가 100대를 넘기지 못하고 있어요.

관련한 ‘굴욕’ 일화는 차고 넘칩니다. 출시 초기 현대차 영업점끼리 돌려보는 내부 연락망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아슬란’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전시차 처분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고 해요. 각자 전시장에 마련된 전시차가 팔리질 않아 고민이었다는 얘기죠.

국내 대표 포털 사이트 ‘네이버’도 아슬란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10월28일 현재 검색창에 ‘아슬란’을 치면 자동차 정보 대신 인물 정보가 상위에 표시되고 있어요. 베식타스 JK 소속 ‘톨가이 아슬란(Tolgay Arslan)’의 이름이 먼저 나오죠.

▲ 현대차 2017 아슬란 / 출처 = 현대자동차

‘다이너스티’가 떠올랐습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생산·판매된 현대차의 고급 리무진 모델이죠. 그랜저의 페이스리프트 차종으로 탄생했고요. 아직도 종종 시내를 달리고 있는 다이너스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슬란의 차명이 다이너스티 였다면 어땠을까요? 브랜드의 역사와 국내 소비자 성향, 인지도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이름을 부활시킬 이유는 충분해 보였어요. 차량에 대한 설명도 쉬워졌을 테고(특히 중·장년층에게) 관심도도 높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차량에 역사적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었죠.

2년이나 지난 시점이긴 하지만 분명 아쉽긴 합니다. 아슬란이 차별화에 성공해 수입차 공세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GT·스포츠 세단 등 이미지를 입고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국내 자동차 시장 판도가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슬란이 ‘실패한 차’이긴 하지만 성능이 나쁜 차는 아니라는 점이 환기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