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하느라 ‘바빴다’. 현재는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이 발의되는 가운데 지배구조 개편에 ‘바쁘다’. 현 상황에서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여소야대’에 힘을 실어 기업들이 더욱 ‘바빠질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살리기에 기업들이 ‘바쁜 것’은 아니다.

지난 21일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사 설립·전환 시 판단요건 및 자회사 최소지분율 등을 변경해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기존에 발의된 다른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과 마찬가지로 입법화는 되지 않았으나 최근 ‘여소야대’ 국면과 함께 ‘최순실 사태’로 야당 쪽에 힘이 실리면서 내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충분히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개정안은 현 정부의 지주사 전환 및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제시됐던 정책과는 대치되는 것으로 그만큼 향후 지주사 전환 및 설립을 시도하려는 기업들에게 부담이 된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지주사 전환·설립을 시도하는 그룹뿐만 아니라 일부 전환이 완료된 지주사 내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한 부담이 증가된다”며 “지주사 판단기준 강화로 일부 회사의 경우 전환 의도와 관계없이 지주사 전환이 강제되는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개정내용이 뭐길래...분주해지는 삼성·SK

개정내용에 따르면 지주사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현행 자회사(최다출자자)로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 외에 보유하고 있는 계열회사 주식 전체를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변경한다. 이 때 주식가치 합계를 현행 장부가액이 아닌 공정가치를 기준으로 산정해 해당 회사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경우 지주회사로 규정한다.

▲ 지주회사 요건에 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발의 [출처:미래에셋대우]

이는 주식 소유를 통해 실질적으로 지주사임에도 불구하고 지주사가 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해 규제에서 빠져나가는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즉, 주식가액 산정 대상 및 기준을 자회사에서 계열회사로, 장부가액에서 공정가액으로 변경할 경우 지주사 요건에 해당되면 의도와는 관계없이 지주사 전환이 되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려면 계열사 지분 축소 혹은 자산증대를 위한 불필요한 부채 상승, 합병 등의 선택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이 그룹 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으나 현행 공정거래법 상 지주사 설립·전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지주사 전환의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그룹의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전환되는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삼성물산은 개정안 공정거래법 기준에 따라 삼성전자, 삼성SDS 등을 자회사로 보유한 일반 지주사로 전환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사 지분 보유가 허용되지 않아 삼성생명 지분 19.3%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게다가 삼성전자, 삼성SDS 등 비금융 자회사에 대해 상향된 지분율 요건(상장 30%, 비상장 50%이상)을 만족해야 한다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지분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 지주회사 판단요건 및 행위제한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 내용 [출처:미래에셋대우]

한편, 지주사 행위요건 강화는 지주회사 설립·전환 및 유지를 위한 재무적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지주회사의 경우 강화된 부채비율과 자회사 지분율 요건 충족의 동시 고려가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이미 지주사 전환을 완료한 그룹의 경우, 개정된 행위요건 충족에 대해 2년 이내에 적합하도록 유예 기간을 부여받는다.

부채비율의 경우 대부분의 지주사가 이미 강화된 부채비율 기준(100%) 이하를 충족하고 있어 이에 대한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나 자(손자)회사 최소 지분율 상향 조정은 일부 그룹에 대해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SK그룹의 경우 강화된 요건 충족을 위해 자회사인 SK텔레콤,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 등의 지분에 대한 직접적인 추가 확보 가정 시 그룹 내 약 3조9000억원 상당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빠른 지주사 전환을 하거나 혹은 개정안에 맞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넋 놓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은 전자에 모아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기업들은 ‘바쁘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혼돈스런 가운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업들이 기부금을 출연했다는 점도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23개 기업 이사회에 해당 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기부금을 출연한 이유와 결정 과정 등에 대해 질의한 바 있다. 기업들의 경우 ‘기부금’에 대한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은 스스로 사업을 제안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청와대가 개입해 전경련이 기업들에 강제로 할당한 것이라는 기업 관계자의 진술이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공개돼 논란이 됐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며 함구하고 있는 상태다.

▲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 출연한 기업 명단(단위: 원) [출처:경제개혁연대]

하지만 이에 대해 구구절절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정경유착’(政經癒着)은 이 나라에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어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를 보고 있는 외부의 시선은 ‘로비’라는 단어로 모아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26일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한화그룹을 대상으로 전경련 탈퇴 의향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아울러 전경련을 탈퇴하지 않거나 해체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쇄신 방향에 관한 견해를 달라고 질의했다.

만약, 이에 대해 기업들이 확답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로비’라는 이름으로 굳혀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이 사태는 더욱 확대되며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은 더욱 강해지고 장담하긴 어려워도 야당이 내놓은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어떤 이유에서든 기업들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놓기 ‘바빴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경제민주화 법안과 싸우기 ‘바빠질 것’이다. 또 일부는 그동안의 ‘방패막이’가 사라져 방어하기 ‘바쁘게 될지’ 모른다. 다만, 이 국면이 지속된다면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기업들은 ‘바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바쁘지 않은 것’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