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는 물질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물질경제에 기반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경제성장 공식은 물질의 유통량 증대에 있다. 상품을 저렴하게 많이 생산해서 박리다매로 팔면 매출액이 높아진다는 논리이다. 물질경제의 핵심기반은 에너지, 물류시설, 생산 능력, 제품의 표준 규격, 원가 절감 등이고 자원, 공장규모, 시장 점유율 등이 경쟁요소들이다. 시설자본을 공급하고 대규모 공단을 조성하며, 전력 및 용수를 충분히 공급하는 일이 정부의 경제부흥정책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의 효과가 사라졌다. 시중 자금이 풍부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던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경쟁적으로 화폐량을 증가시켰지만 생산설비투자로 자금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급속한 기술발달과 경쟁격화로 상품의 성능개선은 빈번하지만 물질 상품에 대한 시장 수요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은 상품의 성능이 훌륭하다고 바로 구매하지 않는다. 물품을 소유하는 대신에 공유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상품의 성능은 향상되어도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성장원리

이런 디지털 경제의 특징을 간파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제3차 산업혁명>(2011)을 통해 에너지가 공짜가 되는 시대, 그리고 물질 상품이 사라지고 디지털 상품이 서비스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시대의 핵심인 물질과 에너지의 가치는 점차 저렴해지는 데 반해 정보 즉 아이디어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라메즈 람(Ramez Raam)은 그의 저술 <무한자원: 유한자원에 미치는 아이디어의 힘>(2013)에서 아이디어를 통한 혁신이 부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며 인구 증가는 무한한 혁신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보사회에선 산업의 으뜸가치가 아이디어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보사회의 경제성장은 아이디어의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더 많이 공유될수록 증가한다. 자원은 공유할수록 몫이 줄어들지만 아이디어는 공유할수록 몫이 증폭되는 특성이 있다. 아이디어의 유통속도를 높이는 기반은 정보 네트워크이다. 네트워크 경제의 핵심 기반은 모바일 인구, 원활한 지식유통망, 빅데이터, 클라우드, 통신 연결망이며 지식, 혁신, 지적재산권, 인재 등이 경쟁요소이다. 정부는 통제하는 힘을 빼내고 지원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기존 산업구조를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마음껏 비즈니스를 일으킬 수 있도록 모든 법적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아이디어 교류를 지원하고, 공공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새로운 데이터 세트를 발굴하여 시장에 공급해야 한다. 통신기반시설은 정보사회의 에너지 망이다.

독일의 산업 4.0 정책을 기반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저술(2015)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디지털 혁명을 세분하여 컴퓨터 등장부터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 디지털 혁명기인 20세기 말까지를 제3차 산업혁명 기간이라고 규정하고, 이와는 달리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모바일 인터넷과 센서망이 기반이 되고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으로 정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차원 높은 디지털 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네트워크가 핵심이 되는 디지털 기술을 제3차 산업혁명의 특징으로 분류한다면, 제4차 산업혁명은 이들이 더욱 복잡하게 얽히어 사회적 관행과 글로벌 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변혁시킨다는 점에서 따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에릭 브리뇰프슨(E​rik Brynjolfsson) 등이 저술한 <제2차 기계시대>(2014)에서 언급한 인공지능 기계시대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계시스템의 지능화에 국한시키지 않고 범위를 확장해서 물리적 현상과 디지털 시뮬레이션, 그리고 바이오기술이 상호작용하여 일으키는 기술의 충격을 포함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했듯이 디지털 상품의 복제, 저장, 이송 비용이 제로(Zero)로 수렴하는 특성을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제레미 리프킨의 생각과 같다. 다만 제레미 리프킨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풍요로운 미래를 주로 설명했다면 크라우스 슈밥은 디지털 혁명이 초래할 위협을 주로 거론하고 이에 대응하는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경제는 모든 산업에 디지털기술과 정보기술이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분석력에 기반을 둔 디지털 기술력에 달렸다. 슈밥이 우려하는 점은 모든 산업의 시장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통합되면서 부가 편중되고 지역 간 발생하는 격차가 심해지는 문제이다. 소비자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공급받는다는 점에서 혜택을 누리게 된다. 반면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비즈니스 기회가 한두 개의 플랫폼에 빨려 들어가는 극도의 기회 불균형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가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을 반복하는 시스템 속에서도 여러 기업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조체제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글로벌 1등 기업이 아니면 비즈니스 장벽을 피해갈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플랫폼에서 생존하는 전략은 자명하다. 비즈니스 영역이 같다면 글로벌 플랫폼을 벗어나서 별도로 생존하기 점차 힘들기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해야만 한다. 디지털 경제 하에서 상품은 디지털 데이터가 삽입되거나 서비스를 수반하는 맞춤상품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서비스를 내장하고 나만이 공급할 수 있는 고품격 상품을 공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들이 모두 만들 수 있는 상품은 시장가치가 제로로 바뀐다. 고객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미래 문제들을 고객과 함께 또는 고객보다 앞서서 발굴하여 해결하는 상품을 개발해 공급해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디지털 산업혁명의 네 가지 특성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속도(Speed)혁명, 융합‧결합(Combined)혁명, 시스템(System)혁명,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Identity)혁명 등 네 가지로 요약하고 특히 개인의 정체성 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디지털혁명이 일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자문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일을 감당할 때는 자아성찰, 정성적 가치, 신념, 마음가짐, 열정, 동정심 등과 같은 감정적인 요소에 의해 동기부여가 된다. 일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정량화시킬 수 없는 행복, 자아실현, 만족, 감흥, 즐거움, 편안함 등이다. 반면 기술은 데이터나 알고리즘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며 재현, 시뮬레이션, 속도 증강, 기능향상 등을 추구한다. 그런데 기술의 작용이 인간의 능력에 근접할수록 기계가 추구하는 목표가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윤리나 규범 그리고 신념에 어긋나는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흔히 디지털 장비를 편리하게 사용하는 대가로 사적인 정보를 일부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세세한 신상자료를 남들에게 알리는 건 대부분 원치 않는다. 인터넷은 모든 자료나 데이터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혜택을 주지만 개인의 신상자료는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기술이 인간에게 서비스하는 환경이 되어야 하며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면 곤란하다. 기계가 인간을 앞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아마존이나 넷플릭스는 내가 어떤 책과 어떤 영화를 볼지 미리 짐작하고 추천하는 기능이 있다. 물론 이런 추천 내용이 꼭 들어맞지 않는다 해도 추천 작용이 사람의 잠재의식에 작용하여 가치판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누군가 기계를 이용해서 의도적으로 사람의 판단을 조종하는 시도가 있더라도 기계의 추천이나 판단을 세심하게 점검하는 개인과 조직의 역량이 필요하다.

 

기술변화에 잘 적응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지금까지 기술은 일처리를 쉽고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하는 도구였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술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판단을 유보하거나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많은 경우 기술을 채택할지 여부는 본인이 선택하게 된다. 끊임없이 바뀌는 기술변화에 잘 적응해야만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결국은 기술변화를 수용하는 사람들과 거부하는 사람들로 극단적인 분리가 일어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은 승자가 되고, 거부하는 사람은 패자가 된다. 예를 들면 첨단 바이오 기술을 적극 활용한 사람은 건강한 노후를 보내지만 기회를 놓치면 패자로 전락한다. 디지털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세대와 산업사회의 영광을 고집하는 세대의 가치관이 서로 달라 사회적 이슈마다 세대 간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윤리적 문제들에서 갈등의 소지가 높다. 기술발전이 윤리적 판단의 기준을 바꿀 수 있다. 바이오기술이 질병치료에만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증강시키는 용도로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유전공학이 인체 증강의 목적에 활용된다면 새로 태어날 아이의 특성 변화를 거래할 위험이 있다. 아이에게 원하는 특성이 수명연장인지 아니면 두뇌 증강인지 그것도 아니면 물리적 외모인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서 필요한 핵심역량은 탐구력이다.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고 이를 따라서 ‘빨리 빨리’ 학습하는 일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필요한 역량은 창조자(Creator) 역량이다. 고객에게 필요한 미래 도전과제들을 탐구하고 그 과제들을 해결해내는 독창적인 방법을 남보다 앞서서 창조해내는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