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세계의 패권은 ‘서쪽’으로 이동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 유럽의 패권이 현재 미국으로 넘어왔고 또 다시 ‘서쪽’으로 이동한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바로 중국이다. 이에 위안화의 SDR편입과 중국의 금 보유량 확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중국 위안화가 지난 1일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Special Drawing Right) 구성통화가 됐다. 이에 위안화는 달러화, 유로화에 이어 통화바스켓에서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통화가 됐으며 이는 엔화와 파운드화 비중을 단번에 넘어선 규모다.

SDR은 IMF가 1969년 금본위제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준비자산이다.당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과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세계 무역이 확대되고 금융시장이 발달하자 금과 달러의 공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이에 IMF는 금과 달러를 대신할 수 있는 대외결제 자산인 SDR을 만든 것이다. SDR은 유동성 위기 시 IMF 회원국이 출자비율만큼 바스켓 내의 통화로 교환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위안화 SDR 편입의 의미

위안화의 SDR 통화바스켓 편입이 아직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서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다만, 위안화의 국제화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중국은 수출규모에서 세계 1위로 도약했으며,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5년 기준 유럽연합(EU)과 대등한 수준인 15%까지 성장했다. 그만큼 중국은 과거 대비 수출입 거래에 있어서 달러화로 결제할 필요성이 낮아지고 위안화로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세계 각국과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 비중을 늘려갈 것으로 예상돼 향후 위안화의 수요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으며 또 바꾸고 있다. 그중 하나가 위안화의 국제화로 불리는 위안화 SDR 편입이다.

SDR편입 이전 '금 사재기' 역시 위안화 기축통화 전환 의도?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한 중국의 또 다른 준비는 바로 금이다.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은 2014년 한 보고서에서 달러와 유로화 가치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위안화는 아직 국제통화로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며 향후 10년간 금이 국제 화폐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중국은 위안화 SDR편입 이전부터 금 보유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작년 말부터 중국이 중국 및 글로벌 경기둔화의 지속과 위안화 가치 절하로 인해 전략 자산인 금 보유 규모를 지속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또한 세계 금 위원회(WGC, World Gold Council)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개인 부문용 금 소비량은 3% 줄어들었지만 투자용 금은 달러 강세와 위안화 하락으로 안전자산을 추구하는 움직임에 따라 21%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 인텔리젼스>는 각종 금 거래 지표를 분석한 결과 중국의 2015년 금 보유량은 3500t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인 미국(8000t)에는 못 미치지만 2위인 독일(3384t)을 웃도는 수치다.

출처=WGC, Bullionstar

이는 중국의 금 보유 발표치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식적인 중국의 금 보유량은 지난 1월 기준 1788t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대외적 발표치보다 더 많은 금 보유량 확보를 통해 달러에 맞서 위안화의 국제적 안정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기축통화로서의 위안화 입지를 확보할 때까지 향후에도 금 매입을 지속적으로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여기에 중국은 지난 4월 상하이(上海)황금거래소에서 사상 처음 위안화로 책정한 금 가격인 상하이금기준가(Shanghai Gold Benchmark Price)를 발표했다. 상하이황금거래소는 4월 20일 발표한 백서에서 “현재 금은 달러로 가격을 매겨 다양한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은 세계최대의 금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위안화로 금을 거래하는 것은 금시장에서 위안화의 존재감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은행 금융시장사 부사장 쉬종(徐忠)도 최근 중국 금시장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지난해 중국의 금 관련 파생상품 거래량은 2200t이 넘는다”며 “중국은 거대한 금 생산·소비시장의 배경이 있는 만큼 위안화 표시 금 파생상품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는 금을 시작으로 관련 파생상품과 다른 원자재의 가격도 위안화로 책정해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는 한편, 화폐가치의 안정을 보장하는 금을 확보해 국제 금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면서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도 함께 높이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보인다.

쿠스 잔센 불리언스타(Bullionstar) 전문 연구원은 "금은 통화의 기초 자산이 되기 때문에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대량의 금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위안화 약세, 달러 역전 신호?

한편 SDR 편입 이후 위안화 약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겹치면서 지난 연말 연초와 비슷한 우려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중국 자본유출과 비교하기에는 다른 점이 많다.

▲ 출처=investing.com

당시와 크게 다른 점 중 하나가 당국의 개입 강도다. 지난 연말 연초엔 외환보유고를 동원한 강력한 위안화 안정화에 나섰고, 위안화 숏베팅 세력에 대한 경고도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엔 달러가 약세인데도 위안화가 약세였으니 이상했지만, 지금은 달러가 강세이기 때문에 위안화가 약세라고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당시 달러는 약세였는데, 신흥국 통화는 더 약세였다. 지금은 반대로 달러가 강세인데, 신흥국 통화는 더 강하다.

출처=SK증권

최근 위안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중국 증시는 올해 초와는 다르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물론 지난달 급락이 있었고, 최근의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 한 투자자들이 안도한 영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엔화의 이런 모습은 문득 엔화와 일본 증시의 관계가 연상된다. 엔화가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경우, 아시아 국가들은 값싼 엔화 자금을 차입(yen-carry trading)해 자금난을 해소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작용한 점도 있다.

이는 엔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은 데 그 이유가 있기도 하다. 물론 엔화의 이런 지위는 '저금리'가 큰 역할을 했다. 여타국 대비 엔화 차입 시 금리 수준이 현저히 낮아 경기 호황 시 엔화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려는 주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기 호황은 일본 증시를 밀어 올렸고 이 때문에 '엔화 약세=증시호조"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이러한 관계는 달러와 미국 증시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데 달러는 '제 1의 기축통화', 엔화는 그 뒤를 잇는 기축통화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위안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물론 통화와 해당국의 증시 상관관계 만으로 이를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위안화의 SDR편입과 중국의 금보유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위안화와 중국 증시의 이전과는 다른 관계는 간과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 제품의 달러 표시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으므로 중국 상품 수출확대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국제무역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한편 중국 외환관리국은 9월 외환 순매도가 284억 달러로 전월 대비 3배 급증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중국은 예상치 못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조작과 탄탄한 경상수지라는 '믿는 구석'이 있다. 어쩌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환율보고서까지 동원한 미국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금 보유량을 확대하고 위안화를 SDR에 편입시켜 세계 금융 패권을 잡으려는 중국의 의도가 들어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위안화 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중국 당국의 행태와 연말에 외화수요가 많은 중국의 특성상 위안화는 연말까지도 의미있는 강세전환이 없을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과 유로존의 양적완화 연장 가능성 등이 달러 강세를 유도하며 추가적으로 위안화 약세환경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세계의 패권은 ‘서쪽’(중국)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