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일종의 생태계 전략이 각 플레이어의 명운을 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기술이 발전하며 원천 생태계를 구성하면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이 고도화 과정을 거치며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성공 방정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글과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이 플랫폼 사업자를 자임하며 모든 프로세스의 수직계열화를 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출처=네이버

네이버의 변신, 글로벌과 기술

최근 네이버가 보여주는 행보는 그동안 포털 사업자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판을 짜던 과거의 행보와는 180도 달라졌다. 네이버가 이미 존재하는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적 가능성을 모색했다면, 더 정확히 말해 서비스적 관점에서 나름의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는데 주력했다면 최근 두 가지 화두가 극적으로 더해진 분위기다. 바로 글로벌과 기술이다.

글로벌의 관점에서는 이해진 의장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사실 이해진 의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ICT 기업의 수장이자 시가총액 톱5 후보군으로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거대기업 네이버의 최고 결정권자라는 중량감에 비해 공식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이 말하듯 이해진 의장은 일선에 나서지 않았으며, 그의 존재감은 대외적으로 강렬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라인 상장을 계기로 이해진 의장이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라인 상장 당시 춘천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으며 지난 9월 네이버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과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Antoine Dresch)가 설립한 Korelya Capital(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출자 기업으로 참여한다고 발표하는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라인 국적 논란에 있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인 현지 친밀감을 보여주는 한편, 라인과 스노우 등을 바탕으로 네이버가 일종의 글로벌 진출 화수분이 될 것이라는 공언을 하기도 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이해진 의장의 잦은 등장은 글로벌에 대한 네이버의 야심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다. 라인 상장 기자회견과 지난 9월 K-펀드 1 출자 기자회견은 모두 글로벌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심지어 이해진 의장은 내년 3월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글로벌 집중에 나설 것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술적 관점은 무엇일까? 24일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 ‘DEVIEW 2016’에 답이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해진 의장은 네이버의 미래가치가 글로벌과 더불어 ‘기술’에 있음을 명백하게 선언했다. “네이버는 앞으로 기술에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며, 국내 개발자들을 지원해나가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출처=네이버

기술, 그 복잡한 노림수

이해진 의장이 DEVIEW에 등장한 것도 이슈지만, 그의 등장을 기점으로 기술에 대한 야망의 행간을 읽어낼 필요성도 있다.

네이버는 어떤 기업일까. 포털을 계기로 삼아 인터넷 서비스에 주력하는 회사다. 통신사처럼 네트워크 망을 가지지 않았으며 당연히 망 중립성에 있어 철저한 중립을 요구하는 일종의 플랫폼 사업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는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네이버 카페 및 블로그를 연이어 히트시켰으며 지식in 서비스를 통해 사실상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지금도 일각의 비판을 받지만 네이버의 가두리 양식장 전략도 비슷한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DMC미디어가 24일 공개한 ‘2016 인터넷 서비스 이용 행태 및 광고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 이용자는 블로그(21.3%)와 웹툰(11.8%) 서비스를 주로 사용하는 반면, 구글 이용자는 검색(80.5%)과 소셜미디어(22.8%), 동영상(15.4%)이 대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네이버는 검색 기능 고도화를 사용자 경험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풀어내어 ‘예쁘게’ 구축한다.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넘어 의미있는 보물을 찾으려는 항해사들에게 구글은 말한다. “넓은 바다로 정확하게 나아갈 수 있는 항구가 되어주겠다”고. 하지만 네이버는 말한다. “넓은 바다로 나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의미있는 보물을 예쁘게 가공해서 제공하겠다”고.

구글이 대항해시대의 항구라면 네이버는 일종의 워터파크다. 그리고 이러한 네이버의 행보는 당연히 사용자 경험에 방점을 찍은, 확장보다는 서비스의 질적인 요소에 집중한 결과다. DMC미디어의 자료는 각각의 포털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성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기술이 있어야 서비스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네이버가 기술에 집중해 서비스 고도화를 꾀한적은 별로 없으며, 이미 현존했던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는 아이디어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네이버가 24일 DEVIEW 2016을 통해 풀어낸 아이템은 다소 충격적이다. 물론 네이버가 네이버랩스를 통해 블루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력을 제고하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그 성과물과 기술적 방향성이 유독 강조됐기 때문이다.

DEVIEW 2016을 통해 네이버가 규정한 기술적 베이스는 인공지능이다. 네이버의 송창현 CTO는 인공지능 기반의 연구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 ‘Ambient Intelligence(생활환경지능)’을 소개하며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랩스를 주력으로 삼아 인공지능 기술에 집중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뜻이다.

▲ 출처=네이버

대화형 AI 엔진인 아미카(AMICA)가 눈길을 끈다. 딥러닝, 음성인식, 음성합성 연구의 결과물이며 조만간 네이버는 기기와 메신저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발자용 API도 제공할 계획이다.

아미카는 이미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IoT) 칩셋인 아틱(ARTIK)에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인공지능 기반 플랫폼 사업자의 길을 따라가는 분위기다. 기술적 바탕으로 네이버로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쟁력이 연결될 수 있는 길까지 마련했기 때문이다.

▲ 출처=네이버

더불어 중장기적 프로젝트인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연구도 강조했다. 현재 자율주행의 경우, ‘인지’ 분야에 주목해 정밀한 물체 인식, 상황 판단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로봇을 통한 정확한 실내 지도 구축 기술에도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통역앱 파파고, 자연스러운 음색을 구현한 음성합성 기술과 수년간 축적해온 웹엔진 기술을 적용한 네이버의 브라우저 웨일(Whale)의 티저 등도 소개했다.

이들을 바탕으로 네이버의 야망은 한층 선명해졌다.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바이두처럼,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구글처럼, 포스트 스마트폰을 확보하기 위해 달리는 애플처럼 이제 네이버도 기술을 근간으로 플랫폼 사업을 전개해 의미있는 외부 인프라를 연결하려는 시도까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중심은 인공지능 기술이 낙점됐다.

▲ 출처=네이버

네이버의 야망과 생활밀착의 카카오

네이버는 서비스의 고도화를 바탕으로 기술적 진보를 통해 원천적인 생태계를,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수직계열화에 나설 전망이다. 스스로의 손으로 생태계를 창출하고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시가총액 등 실제적 규모로는 네이버에 미치지 못해도 나름 라이벌 구도를 가져가는 카카오와의 비교다. 현재 카카오는 O2O를 바탕으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 행보의 중심에는 카카오톡이라는 모바일 플랫폼이 존재하고 있다.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을까. 두 기업 모두 기술적 가치를 근원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다만 카카오는 네이버와 달리 서비스 고도화적 측면에서 이미 확보된 플랫폼 기술력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일에 열중인 분위기다.

이 자체로도 긍정적인 스탠스임은 분명하지만 사업의 외연적 행보는 다소 엇박자도 나고 있다. 기술이 아닌 서비스에 집중하면 현실세계의 다양한 문제와 규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카카오는 네이버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서비스를 무기로 삼아 새로운 사용자 경험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