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 2년간 비밀리에 추진해온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인 '타이탄 프로젝트'(Titan Project)가 전략을 수정하며 사실상 전기차 개발을 포기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1000명 이상이었던 프로젝트 타이탄 소속 직원 중 수백 명이 회사를 떠나거나 다름 팀으로 옮겨간 상태다.

블룸버그는 최근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던 120명가량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이동했으며, 프로젝트를 이끌던 스티브 자데스키도 물러났다고 지난 17일(현지시간) 밝혔다. 또한 해당 매체는 "멘스필드가 책임자가 되며 전기차 차체 개발보다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 주된 이탈 이유"라고 알렸다.

지난 8월 타이탄 프로젝트의 새 책임자로 선정된 밥 맨스필드 수석 부사장은 타이탄 프로젝트 팀원들에게 “애플은 전기차를 자체 개발하는 게 아니라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애플이 지난 2년간 추진해오던 전기차 개발을 사실상 중단한다는 선포나 다름없다. 그 간 애플이 야침 차게 꾸려오던 자동차 프로젝트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짚어보자.

애플은 지난 2014년 차량용 운영체제(OS) '카플레이'를 개발했고, 2014년 '타이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포드 출신의 디자이너 스티프 자데스키를 프로젝트 책임자로 영입했다. 2015년에는 테슬라 직원을 연봉 60% 인상 조건으로 스카우트했으며, 유럽의 자동차 연구가 폴 퍼게일을 영입한 바 있다.

당시 애플의 '테슬라' 인수 얘기가 흘러나왔으나 엘론 머스크 CEO가 애플의 인수설을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애플은 그 해 7월 크라이슬러의 품질관리 부사장 더그 베츠를 영입했으며. '주요 프로젝트'(committed project)로 2019년에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선정하기도 했다.

▲ 출처=H3LLOWRLD

지난 2016년 애플은 자동차 관련 인터넷 도메인 3개를 등록한 바 있다. 애플닷카, 애플탓카즈, 애플닷오토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애플 전기차 개발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던 애플은 그 해 4월 테슬라 엔지니어링담당 부사장 크리스 포릿을 영입했다. 그는 당시 모델S와 모델X의 설계에 참여한 바 있다.

또 애플은 고(故) 스티브 잡스의 총애를 받는 하드웨어 기술 담당 부사장인 밥 멘스필드를 '타이탄 프로젝트' 책임자로 임명한 바 있다. 최근 정확한 내막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계속 발전을 거듭하던 타이탄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애플은 기존 자동차 업체와 손잡고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할지 아니면 스스로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할지 미정이지만 내년 안으로 결정해 통보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블룸버그는 애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해 말부터 자율주행차 팀에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특히 형편없는 리더십과 경영진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을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대형 IT기업들은 왜 완성차 시장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할까?

애플은 지문으로 운전자를 인식해 버튼만 누르면 스스로 주행하는 전기차를 꿈꿔왔다. 2007년 아이폰으로 모바일 산업의 향로를 바꿨듯이 완전한 자율주행차로 자동차 업계를 들었다 놓겠다는 꿈이었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은 왜 고전할수밖에 없었을까?

우선 쟁쟁한 기존의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들이 IT기술과 자율주행 기술을 기존의 기술과 빠르게 융합하며 발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반이 탄탄한 전통 기업과 경쟁하기엔 아무리 거대한 IT 기업들이라도 진입장벽을 높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한 복잡한 자동차 부품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는 자동차 부품 등에 이제 막 시장 진입을 노리는 기업 등이 초기에 소량으로 물량을 생산하려 하면 좀처럼 부품을 공급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동타 부품 업계의 텃세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도 직접 완성차 시장에 뛰어들기보다 완성차 업체인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하이브리드 미니밴에 구글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바 있다.

▲ 출처=아이폰인포머

노선 바꾼 '타이탄 프로젝트', 그 다음은? 

애플은 안주하지 않는다. 단지 노선을 변경했을 뿐이다. 수많은 자금과 인적 자원을 투자하였던 타이탄 프로젝트는 사실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프로젝트였다. 애플은 독자적인 차량 개발을 포기했을 뿐 기존의 전통 자동차 업체와 손잡고 '자율 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는 오히려 양사 모두에 좋을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경험이 없던 애플이 지난 2년간 자동차 업계를 배우고, 제작을 시도하는 등 기초를 닦았으니 이제 가장 잘 하는 부분에 시동을 거는 셈이다. 독자 기술을 개발한 후 자동차 회사와 손잡고 새로운 제품 라인으로 탄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이를 원하는 자동차 제조사에 기술을 공급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현금 보유량 최고인 애플이 기존의 자동차 기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실리콘밸리는 '실패'를 권장하는 곳이다. 어려움을 겪으며 그만큼 더 성숙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기초를 잘 다졌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사훈은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ly)다. 애플이 타이탄 프로젝트의 경험을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또 미래를 그리고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