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세상이 바뀌었다. 세계 경제의 작동원리가 고장 난 것 같은데 여전히 원인불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온갖 처방이 시도되고 있으나 대부분 무위에 그치고 있다. 급한 마음에 세계 각국은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마치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새로 찍어낸 돈을 시중에 공급하는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라는 경기부양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U와 일본 등에서는 금리를 제로 금리나 마이너스 금리로까지 낮추는 비전통적 금융정책까지 동원됐다. 그러나 이 같은 금융-재정적 극약처방조차 과거와 달리 별 약발이 없다. 이런 막막함을 틈타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았다는 성급한 주장마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해법도 제시되고 있다. 몇몇 단편적인 정책대안으로서만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제대로 틀을 갖춘 경제학이다. 이 경제학에서는 지금 세계가 겪는 혼돈은 시장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바로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이다.

마크 라부아 캐나다 오타와大 경제학 교수가 저술한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 입문>(후마니타스 펴냄)에 의하면,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은 주류 경제사상의 주요 교의를 비판하고 부정한다. 예를 들어, 주류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환율을 방어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규제 완화와 민영화, 긴축정책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경제성장을 위해 무제한적 경쟁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반해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은 이와 상반된 명제를 내놓고 있다. 과거 같으면 말도 안 되겠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현실 속에서 쉽게 목격되는 명제들이다.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가격이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 최저임금이나 실질임금이 높아지더라도 실업은 늘어나지 않는다. ▲ 실질임금이 상승해도 이윤은 감소하지 않는다. ▲ 저축률이 하락해도 투자는 감소하지 않고, 경제성장률도 하락하지 않는다. ▲ 신축적인 가격 체계는 경제가 균형(혹은 최적) 수준에 도달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 재정 적자는 물가 상승이나 이자율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듣고 있는, 이들 포스트케인스학파 경제학의 대안 가운데 하나가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경제성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유효수요부터 높임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끌자는 발상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은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이다. 특히 최저임금 상승이다. 최저임금 상승은 노동자 임금의 하한선을 끌어올려 전체 임금상승에 기여하게 된다.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이 크므로, 친노동자적 소득분배는 유효수요를 증대시켜 경제성장을 이끈다.

실질임금이 상승하려면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 상승분이 상품 가격에 얹히지 말아야 한다. 자칫 임금상승과 가격상승이 동반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노동조합법이 개선되고 단체협약 범위가 확대되는 등 친노동자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안전망도 확충되어야 한다.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될 경우 각 가계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게 마련이다. 과잉저축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더구나 기대수명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물론 소득주도 성장론도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소득 주도 성장’을 경제정책 방향으로 삼았다. 이에 맞춰 근로소득 증대 세제, 배당소득 증대 세제, 기업소득 환류 세제 등 이른바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최 전 부총리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겉과 속이 달랐다. 배당소득 증대 세제와 함께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가 추진되었는데, 이는 고소득층인 기업가에게는 유리하고 노동자에게는 불리한 방향이었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역행한 셈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 민주당 대선후보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경제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적극 지지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이 20년에 걸친 디플레이션 극복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기대에 매우 적극적이다. 아베 총리는 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직접 독려할 정도다. 엊그제 외신은 일본 아르바이트의 시급이 평균 1000엔(한화 1만843원)대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일자리를 찾지 못한 한국의 젊은이들의 일본 취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일면 씁쓸한 소식도 전해졌다.

한국은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6470원이다. 월급으로는 주 40시간(유급 주휴 포함, 월 209시간) 기준 135만2230원, 주 44시간 기준 146만2220원이다.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일부에서는 영세기업의 부담이 증대된다고 우려하지만 이는 정부의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에서는 정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저임금을 영세기업에 전적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직접 보조를 해줘야 한다.

차기를 노리는 대선주자들이라면 경제 이념의 좌우를 떠나, 낯설겠지만 포스트 케인스학파의 주장을 한 번쯤 경청했으면 한다. 세상이 바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