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신생 벤처기업(Start-up)의 기업문화(Culture)를 통칭하는 ‘스타트업 문화(Start-up Culture)가 최근 국내 대기업의 변화를 위한 키워드로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통한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긍정·부정적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창업 당시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특정 업종에서만 실현 가능한 일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국내 대기업들은 ‘스타트업 문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체질을 변화시킬 것인가, 과거 다른 혁신 계획처럼 유행처럼 넘겨버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지적이다.

빠르면서 유연하게

21일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의 <Start-up Culture, 대기업에 과연 필수적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문화’는 늘 빠르게 변해야 하고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대표적인 성공기업의 문화는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평, 창의, 자율, 협력, 개방·공유 등 공통점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의사결정과 업무수행, 사업 추진 면에서 신속한 실행력을 보인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시장·고객이 불확실하고 빠른 변화 속도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경제를 살리는 주역으로서 구글, 애플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됐으며, 이들의 전략이나 사업은 물론 기업문화까지 배워보자는 붐이 전 세계적으로 조성된 바 있다.

▲ 출처 = POSRI

모바일, S/W 디지털, ICT 분야의 기업들은 디지털 다윈주의의 두려움, 즉 디지털 혁신에서 뒤쳐져 도태될 것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위험요소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지속적 혁신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의식 변화도 한 몫 했다. 최근 PWC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10~15년전 직원들은 보수와 안정을 중시한 반면, 요즘은 유연성·자율·독립성을 보다 핵심적인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기존의 권위주의 문화로는 향후 성장이 불가능 하다는 절박함 속에서 ‘스타트업 문화’를 여러 형태로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6년 초 대한상의-맥킨지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기업문화 진단을 통해 눈치 보기 야근, 리더만 말하는 회의, 불분명한 업무지시 등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가장 큰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현대차·LG·GS그룹 등은 수직적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기존의 문화를 창의·유연·소통이 잘 되는 문화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삼성은 창의력 제고 및 전고 역동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급·호칭·회의보고·제안방식·야근 및 휴가 관행 등을 개선 중이다. 현대차는 빠른 대응, 업무 효율성 및 직원 만족도 향상을 위해 문서관리·회의보고 개선, 정시퇴근·야근지양·업무집중시간 등의 ‘워크 스마트’를 추진한다.

LG는 직책·역할 중심과 절대평가 기반의 HR 구축, 야근 및 휴가·근무여건 개선 등을 통해 자유롭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GS의 경우 개방·유연·창의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소통공간 마련, 집중근무·휴가 개선 등을 시행 중이다.

스타트업 문화, 대기업에 적합한가?

‘스타트업 문화’ 도입을 통한 국내 대기업들의 혁신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부정적 의견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우선 도입 목적 중 하나인 수평적 문화로의 변화는 구성원의 전문역량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다. 스타트업 기업이라도 규모가 커졌는데 계속해서 수평적인 문화를 고수한다면 업무방향 혼란 및 조율 곤란 등으로 업무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실패로부터 학습하지 못하고 일상화될 경우 오히려 패배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충분하다.

또 수평적인 문화를 유지한다는 명분 하에 모든 사람과 컨센서스를 이루어 가면서 의사결정 하는 것은 오히려 대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저해할 수도 있다. 수평적인 문화는 전문역량이 높은 구성원 상호간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것이며, 이 상황에서 실질적인 권한위임도 가능하다.

대기업 도입 시 초창기 모습으로 돌아가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스타트업 문화’가 지금까지의 성공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그간 잘 운영해 온 내부 프로세스, 실제 투입할 자원의 제약, 기존 사업이나 업무와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과 조정 문제 등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오히려 백지에 새로운 것을 그려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타트업 문화’가 아직은 특정한 업종이나 상황, 즉 보다 민감하고 기술진화 속도가 매우 빠르며 신시장 개척이 중요한 ICT 관련 산업에만 입증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대로 ‘성공 사례’를 살펴 보면 다른 방향성에 제시된다. 전세계 기업 중 시총 1위, 직원 수 7만명에 이르는 초대형 기업인 구글(Google)은 창업 당시 ‘스타트업 문화’를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창업자의 지속적인 역할’과 제도·시스템 개선에만 머물지 않고 ‘지배구조까지도 혁신’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1998~2000년까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직접 경영을 했고, 2001~2011년까지 직원 수가 1면여명이 되면서 ‘에릭 슈미트’를 영입했다. 2011년 이후 직원이 2만명을 넘으면서 ‘래리 페이지’가 다시 창업정신을 재정착했다.

▲ 출처 = POSRI

삼성은 2016년 ‘스타트업 삼성 컬처 혁신’을 선포, 직급·호칭·승진 등 주요 HR 제도의 변화와 회의보고 문화의 개선에 초점을 둬 변신을 노력하고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및 자발적 몰입 강화 등의 목표를 추구한다. 직급체계 단순화, 직무·역할 중심의 HR제도 개편, 1시간 내 회의·e메일 동시 보고 등 회의보고 문화 개선, 휴가제·정시퇴근 등 직원 독려가 주 내용이다.

사업전개에 있어서도 기존사업의 신속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체개발이나 순혈주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해외 스타트업 기업을 대한으로 한 인수합병(M&A)을 추구할 방침이다.

어떤 선택이 필요한가?

결론적으로 국내 대기업들은 ‘스타트업 문화’ 조성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과거 다른 혁신 사례처럼 유행으로 넘겨버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문화’는 임직원의 자율성을 깨우고 창업 당시의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으로 조직 활력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구글의 사례는 이미 대기업임에도 창업 시의 문화를 유지하는 본보기로 부각되고 있다.

대상 영역을 HR이나 일하는 방식에만 국한하기 보다는 GE와 같이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Time to Market’이 중요한 특정 비즈니스 영역에서 신속한 추진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권위주의 문화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진행 중인 혁신 계획 중 유지할 것은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평가다.

POSRI 박준하 수석연구원은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속성 및 일관성을 고려해 직원들이 느낄 수 있는 혁신의 피로도를 줄여나가야 하며 다양한 계획 중 과연 무엇을 유지할 것인지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대기업에 생소한 ‘스타트업 문화’로의 변화는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 성공사례를 신속히 공유하고, 본사 위주가 아닌 사업부서 단위의 성공 사례를 역으로 본사로 확대시키는 접근법을 채택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